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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언론도 ‘공범자’였다

기사승인 2018.07.16  0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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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 한겨레 등 일부언론은 ‘북풍 의혹’ 제기…당시 ‘정부 발표’ 받아쓴 조선·동아

“나는 국정원의 협력자였고, 그 사람들이 나보고 종업원들을 데리고 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한 뒤 동남아에 국정원 아지트로 쓸 수 있는 식당을 하나 차려줄 테니 종업원들과 같이 식당을 운영하라고 꼬셨다. 대다수가 동남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서야 한국행을 알았다.” 

기획탈북 의혹이 제기된 류경식당 지배인 허강일씨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입니다. 지난 10일 류경식당 일부 종업원을 면담한 후 기자회견을 통해 관련 내용을 언급한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주장과도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킨타나 특별보고관은 “(종업원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면서 “이들이 중국에서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서 납치된 거라면 범죄로 간주될 수도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범죄 가능성을 조사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북한 인권보고서 작성을 위한 방한 결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점점 커지는 박근혜 정부 ‘기획탈북’ 의혹 … 당시 언론 보도는 어땠나 

사실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한국행 때부터 한겨레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기획탈북 의혹은 제기돼 왔습니다. 최근 들어 이 문제가 다시 주목되고 있는 건 △류경식당 지배인이었던 허강일씨가 지난 5월 JTBC와의 인터뷰에 이어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도 기획탈북 의혹을 주장하고 나섰고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일부나마 이를 공식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의아한 것은 ‘문재인 정부’ 국정원과 통일부가 여전히 자의에 의한 탈북이란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근혜 국정원’ 탈북공작을 ‘문재인 정부’가 감싸는 듯한 모습 - 미묘한 시기, 남북관계·북미관계 등을 고려한 정무적 판단과 입장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태도가 적폐청산과는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오늘자(16일) 한겨레가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지난 2016년 4월 사건 직후부터 국정원의 ‘기획 탈북’이란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 데다 최근 당사자들까지 비슷한 주장을 하고 나서 더는 진상을 덮어두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획탈북에 가담한 국정원 관계자 등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기획탈북’ 쪽으로 방점이 찍히는 모양새지만 저는 류경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과 관련해선 언론도 공범자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등을 비롯한 일부 언론은 당시 △탈북민들의 입국 사실을 하루 만에 통일부가 나서 공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점 △4·13 총선을 닷새 앞둔 사전투표 첫날 전격적으로 탈북 사실을 공개한 것은 총선 판세에 영향을 미치려는 이른바 ‘북풍’일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기획탈북’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통일부의 발표를 일방적으로 받아썼습니다. 심지어 조선·동아일보 등은 일방적으로 받아쓰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당시 이들 언론의 보도를 한번 살펴볼까요. 

   
▲ 북한에서 집단 탈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지난 2016년 4월 7일, 총선 직전에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국내 모처의 숙소로 향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통일부/뉴시스>

조선일보 “국제사회 제제와 압박이 북 해외노동자 집단이탈 불렀다” 

“정부는 8일 ‘해외에서 근무하던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지난 7일 한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국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해외 식당 종업원이 집단 탈북한 것은 처음이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탈북 동기와 관련, 정 대변인은 ‘해외에서 생활하며 한국 TV, 드라마, 영화,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실상과 북한 체제 선전의 허구성을 알게 됐다고 한다’며 ‘한 종업원은 한국에 오는 것에 대해 서로 마음이 통했으며,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또 국제 사회의 제재로 북한 해외 식당도 타격을 입은 가운데 5월 당 대회를 앞두고 ‘외화 상납’ 요구 등이 가중되면서 탈북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2016년 4월9일자 1면) 

“북한 당국은 해외 식당 종업원으로 당·정·군 간부 자녀와 친·인척 가운데 가무에 소질이 있거나 예술학교 출신인 20대 여성을 주로 선발해왔다. 고위 탈북자 A씨는 ‘성분을 따지는 건 외부 사조(思潮)에 노출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이들은 춤, 노래, 연주 실력에 따라 매달 150~500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팁 수입은 별도다. 노동 착취를 당하지만 일반 해외 노동자들에 비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젊은 여성들 가운데선 선망의 직업으로 꼽힌다.” (조선일보 2016년 4월9일자 2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가 시작된 이후 해외 북한식당에서 나온 첫 탈북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국제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해외 돈줄을 옥죈 것이 해외 노동자의 집단 이탈까지 불렀다는 얘기다 … 지난 2월 이후 한·미의 독자 제재와 유엔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 9개 중 6개가 문을 닫았다. 중국에서도 상당수 북한 식당이 영업난을 겪거나 폐업하고 있다. 이번 집단 탈출도 이런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 이들이 연쇄 이탈하거나 내부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일보 2016년 4월9일자 사설) 

같은 날(2016년 4월9일) 한겨레가 기획탈북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4월11일 1면에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을 발표한 것이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점” 등을 언급하며 “총선을 앞두고 정부 주도의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내부 동요 분위기를 강조해 보수 표를 결집하려는 목적”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것과는 정반대 보도입니다. 

“이들의 망명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동아일보

당시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비슷한 보도를 했습니다. 2016년 4월9일자 1면에서 정부 발표를 중심으로 기사를 게재한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6면에 <“北제재 효과… 해외 근무자들 동요”>라는 제목의 관련 기사를 싣습니다. 인터넷에는 ‘단독’이라는 타이틀도 달려 있습니다. 내용을 한번 보시죠. 

“북한의 해외 공관원, 주재원, 식당 종업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정부는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 1곳의 지배인과 종업원 13명 전원이 7일 동남아시아를 통해 한국에 망명한 사건뿐 아니라 해외 근무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 다른 당국자는 특히 ‘한국 TV 등을 통해 한국 실상을 접해온 이들은 대북 제재 이전부터 탈출을 고려하고 있다가 제재 이후 결심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와 문화 등 정보를 접하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꿀 중요한 열쇠임을 보여준 것. 한 소식통은 ‘이들의 망명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북한으로서는 심각한 체제 운영의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6년 4월9일자 6면) 

“이들의 집단탈출은 한 달 전 한국 정부가 해외의 북한식당 이용 자제 등 독자적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한 뒤의 첫 성과라 할 수 있다 … 해외 식당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은 북한 내에선 중산층 이상이고 출신 성분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의 중산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회의가 번져 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 대한 단속을 크게 강화하면서 탈북자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집단탈북이어서 의미가 깊다 … 대북제재의 파급 효과가 주민들의 민생에까지 미칠 경우 아무리 공포통치를 한다 해도 김정은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탈북 행렬이 다시 늘 수도 있다.” (2016년 4월9일 동아일보 사설 ‘北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출, 김정은에 등 돌린 민심이다’) 

동아일보는 류경식당 종업원의 한국행을 ‘김정은에 등 돌린 민심’이라고 단정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사설을 어떻게 평가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당시 정부가 공식발표한 내용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변명은 접어두기 바랍니다. 같은 날 한겨레 지면을 한번 펼쳐보면 전혀 다른 내용과 관점이 실려 있으니까요. 

조선·동아일보의 2016년 4월9일자 보도와 사설…지금은 어떻게 평가할까 

저는 류경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과 관련해선 언론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상당수 언론이 의문이 드는 부분이나 제기해야 할 의혹은 접어둔 채 정부 발표만 일방적으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조선·동아일보 등은 정부 발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김정은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탈북 행렬이 늘어난다는’ 식의 근거없는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관련 보도에서 등장하는 ‘소식통’과 ‘고위 탈북자’ ‘당국자’ 등의 멘트를 바탕으로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언론도 기획탈북 의혹과 관련해 ‘공범자’ 역할을 한 셈입니다. 당시 한겨레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통상 탈북자가 한국 정부에 보호를 요청하면 해외공관 등에 임시 수용한 뒤 입국시키고, 입국 뒤에는 국가정보원 등의 합동신문을 거쳐 탈북민으로 보호할지 여부를 결정”하지만 류경식당 종업원들은 이런 과정이 대부분 생략된 채 집단 탈북 사실만 먼저 공개됐습니다. 그것도 ‘청와대 지시’에 의해서 말이죠. 

언론이라면 충분히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아니 품어야만 했던 사안이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가진 언론은 당시 일부에 국한됐습니다. 

조선·동아일보 보도와 매우 유사한 브리핑했던 박근혜 정부 통일부 

‘묘한’ 것은 2016년 4월9일(토요일) 조선·동아일보 보도 이후 당시 정부 부처들이 휴일에도 ‘집단 탈북과 대북제재를 연관지어’ 홍보하는데 적극 나섰다는 점입니다. 당시 통일부와 외교부는 4월10일(일요일) 한국 정부의 독자 대북제재와 관련한 비공개 기자간담회를 이례적으로 동시에 열었는데요. 당시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브리핑에서 “집단 탈북은 우리 정부의 단독 대북제재(3월8일 발표)의 파급효과이고, 북한 주민들과 내부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2016년 4월9일자 조선·동아일보 기사와 사설을 그대로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비슷한 내용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확실한 진상규명과 함께 당시 ‘언론책임론’을 제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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