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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시/서해성] 임재해의 방

기사승인 2017.09.19  11: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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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재해 선생의 정년퇴임에 

<임재해의 방>
-임재해 선생의 정년퇴임에 


나는 안다. 
그가 떠난 연구실 구석 먼지들이 중씰한 한 사내를 그리워하면서 
가을 햇살 아래 떠다니고 있다는 걸. 

작년 또 작년
부러진 연필심 하나가 
책장 밑에서 숨어서
눈썹 검게 칠한 채 중얼거리고 있다는 걸. 

그날 나는 금관 밑에 줄을 쳤고
까마득한 삼십 몇 년 전 겨울밤에는
구비구비 입말로 쓴 옛 이야기를 세로로 타고 오르내렸지.

안동 사과밭 바람이 
닳고 닳아서 
귀처럼 내놓은 한 사람. 
잊힌 백성들의 삶과 일에 관솔불을 비춰
모국어를 입힌 사람. 

한 뼘만 비어도 
안동 한 자락이 바다처럼 비고 마는
林在海가 비어서 
오늘 천등산은 높고 갈라산 골은 물소리 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삼껍질 벗겨내듯이 
후배들이 지혜를 빌려가고 
빌려가고
거기 ㅁ자만 남은 방. 
그 방은 호랑이를 피해 온 송아지 두 마리는 들여놓고 살 수 있게끔 넓었다는 것을. 
까치구멍집 사내 
임재해. 

빈, 
그 방에게 안부를 묻는다. 

* 임재해 선생께서 여름에 연구실을 떠났다. 
나는 우리로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자 했을 때 임재해를 읽었다. 
읽어야 했다. 
선생이 앞서 들고간 등불을 따라 오래 걷고 난 밤은 아늑했다.
그의 연구실에서 이름 없는 자들의 삶과 일은 이름을 얻었다. 
세상은 이를 ‘민속문화’라고 한다. 
내게 임재해 선생을 사람으로 꼽은 분은 권정생 선생이다.
안동 일직 조탑동 한 칸 흙집에서 나는 찾아뵐 때마다 권 선생에게 빚을 졌다.
임재해 선생도 그 빚 중에 하나다.
어느 해인가 임재해 선생 댁에 불려가서 늦도록 차 한잔을 마시던 날을 기린다.

   
▲ 지난 2009년 '제1회 아시아생태문화국제컨퍼런스'에서 임재해 안동대학교 교수가 '전통 마을 문화에 갈무리된 생태문화의 가치 인식'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서해성 작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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