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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서해성] 네 멋대로 해라

기사승인 2022.12.20  09: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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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뤽 고다르를 추모하며

고다르가 죽었다. 지난 가을. 장뤽 고다르 Jean-Luc Godard 말이다. 한 해 전 가을 장폴 벨몽도 Jean-Paul Belmondo가 죽었다. 고다르는 연출이었고 벨몽도는 필름에서 고다르의 분신이었다. 

그보다 더 오래 전 FBI에 쫓기던 진 세버그 Jean Seberg가 죽었다. 1979년 여름이었다. 영화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는 원래 뜻이 ‘마지막 숨’이다. 머리를 뒤에서 바짝 깎은 여인으로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진은 마지막 숨결마저 편치 못했다. 위대한 조국 아메리카에 맞선 죄였다. 그는 인종차별, 반전, 성차별문제에 나섰고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미행이 따라붙었다. 도청은 일상이었고 협박은 수식어였다.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을 쓴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 Romain Gary와 혼인하였지만 둘 다 자기 앞의 생을 알지 못했다. 

‘네 멋대로 해라 : 장 뤽 고다르’는 고다르의 예전 아내로 소설가이자 배우 안 비아젬스키 Anne Wiazemsky가 쓴 글을 바탕으로 찍은 영화다. 안은 모리악 François Mauriac의 외손녀였다. 그는 2017년에 죽었다. 두 해 뒤인 2019년 겨울에는 고다르의 뮤즈 안나 카리나 Anna Karina가 죽었다. 그는 배우, 가수, 소설가, 연출가로 한때 고다르의 아내였다. 

   
▲ 장 뤽 고다르 감독(1930~2022) <이미지 출처=나무위키>

그리고 고다르가 죽었다. 이제사 누벨 바그 Nouvelle Vague 한 편이 끝났다. 그 출발선에는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영화 공책)가 있었다. 고다르 자신이 그 잡지 출신이었다. 누벨 바그 운동은 전후에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영화 연출가들을 일정하게 해방시켰고, 그에 따라 작가의 시선으로 자본체제 이면과 모순을 뛰어가면서 기록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를 포함하여 영화 제작 현장 ‘종합 기술자’에 가까웠던 연출자들은 누벨 바그 영향으로 비로소 작가 auteur가 될 수 있었다. 이 때는 프랑스 낱말을 쓰는 게 맞다. 누벨 바그의 가치는 영화 자체에도 있지만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작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걸 결코 뺄 수 없다. 

누벨 바그 작가들을 관통해간 것은 68혁명이었다. 이들은 68 이전부터 68로 가고자 했고 68 이후에도 68을 재창조하고자 했다. 한국에 그 68은 너무 늦게 당도했다. 그것도 그냥 영화로만, 장발과 청바지와 맥주로만. 그 무렵부터 캠퍼스 낭만 어쩌고 하는 말들이 널리 유통되었다. 억압된 한국사회에서 자유는 어쭙잖은 일탈이나 소비에 가까웠다. 그 68년에 1.21사태가 있었고 이틀 뒤인 23일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가 북으로 끌려갔다. 10월에는 울진삼척에 북에서 침투한 무장대가 대거 출현했다. 한국군을 파병하고 있던 월남에서는 1월30일 설Tết(구정)공세가 시작되었고, 2월에는 퐁니 퐁넛학살, 3월에 유명한 미라이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68혁명은 5월3일 파리에서 시작되었고 8월에 프라하의 봄이 진압 당했다. 68이라는 세계사의 격동 속에 한국사회만 뒷걸음질하고 있었다. 

누벨 바그는 혼자 온 게 아니었다. Nouvelle Vague 새 물결은 숱한 물결들과 함께 오고 여러 파도들을 만들어낸다. 어떤 예술 장르도 세상이라는 물결과 더불어 움직인다. 누벨 바그가 남긴 중요한 가치는 작가주의다. 이는 작가가 현실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세계에만 몰입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자본 권력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 곧 이들을 향한 작가로서 비판 정신을 뜻한다. 따라서 앙가주망engagement 없는 작가주의란 한낱 맹랑한 노릇이다. 

누벨 바그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한 편이 끝났을 따름이다. 시장에 충성하는 오락물을 찍을 것인가, 권력의 폭압과 지배를 거스르기보다 침묵하고 아부할 것인가,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영화인들이 ‘네 멋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개봉할 때 붙인 수입 영화 제목이 원작 제목보다 나은 경우는 ‘À bout de souffle’가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다. 영화인들이여, 시인이여, ‘네 멋대로’ 해라. 장뤽 고다르만 그저 칭송하지 말고 어느 가을엔가는, 어느 겨울엔가는 네 멋대로 해라. 누벨 바그 두 번째 편은 그 날 시작될 터이다. 

   
▲ 서해성 작가

고다르들의 영화와 작업정신에 청년시절을 크게 빚졌다. 해를 넘기기 전에 그를 기리는 까닭이다. 고다르는 ‘네 멋대로’ 출현했다. 그에게 할 수 있는 조사도 한 줄이면 충분하다. 네 멋대로 살았고 네 멋대로 찍었지만 네 멋대로 죽지는 못하다. 이것이 묘비의 법칙이다. 적어도 그는 영화 만큼은 ‘네 멋대로’ 찍었다. 이것이 바로 자유다. 

서해성 작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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