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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고 기사’ 이젠 바뀌어야 한다

기사승인 2020.01.20  10: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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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읽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별세 … 한국 언론의 평가는 왜 천편일률적인가

<껌으로 시작해 123층 월드타워까지… 맨주먹으로 롯데 키워> 

오늘(20일) 동아일보 2면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어제(19일) 별세한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부고 기사’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한국의 ‘부고 기사’가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고인에 대한 객관적인 조명보다 호평 일색의 ‘천편일률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고인에 대해 추모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부고 기사로 다룰 정도의 인물이라면 저널리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온당한 태도 아닐까요. 그게 언론 본연의 역할과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 <이미지 출처=동아일보 홈페이지 캡처>

언론의 ‘부고 기사’ … 단순 추모 넘어 저널리즘 영역으로 끌어 올려야 

그런데 한국 언론의 ‘부고 기사’는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거의 비슷합니다. 특히 대기업 총수 등에 대해서는 거의 대다수 언론이 ‘집념의 경영인’ ‘맨손으로 성공신화 쓰다’와 같은 호평 일색의 평가만 내립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관련해서 오늘(20일) 주요 언론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대략적으로 한번 살펴볼까요. 간략히 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83엔 들고 일본행… ‘롯데껌’으로 시작, 115조 기업 일군 巨人> (조선일보 14면)
<[만물상] ‘마지막 거인’ 신격호> (조선일보 34면) 
<껌으로 시작해 고국에 123층 타워까지···거인 신격호가 지다> (중앙일보 4면)
<신격호, 123층 월드타워까지… 맨손으로 ‘롯데 왕국’ 일궈 재계 5위로> (한국일보 2면)
<‘껌에서 롯데타워까지’ 韓日 재계거인 떠나다> (매일경제 1면) 
<83엔 들고 일본行…65년 모국 돌아와 ‘기업보국’ 기틀 다져> (매일경제 5면) 
<맨손으로 ‘롯데 신화’…신격호 명예회장 타계> (한국경제 1면) 
<83엔 들고 일본行…껌에서 백화점·화학으로 영토 넓힌 ‘미다스 辛’> (한국경제 2면)
<신격호의 지극한 고향·동포사랑…사재 털어 매년 울산서 잔치> (한국경제 2면)
<잠실벌을 관광 메카로 바꾼 상상력…신격호는 ‘최고 디벨로퍼’였다> (한국경제 3면)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주주인 한국경제신문은 오늘(20일) 2·3·4면을 모두 ‘신격호 명예회장 추모 기사’로 채웠습니다. 어떻게 보도했는지 간략히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제과사업과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고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해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일궈냈다. 동시대에 한국과 일본 양국 산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재계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좋은 것은 뛰어난 상상력 때문이란 게 롯데 안팎의 평가다. 신 명예회장의 어린 시절 꿈은 작가였다. 스무 살 때인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우유, 신문 배달로 끼니를 이어갈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학 전공은 응용화학(와세다대)이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문학책이었다. 틈만 나면 도쿄 간다거리의 헌책방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선 채로 문학전집을 훑었다.”

이런 평가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롯데그룹과 신격호 명예회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가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닌데 한국경제는 ‘일방적 호평’으로만 지면을 배치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전경련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의 지면 배치는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롯데그룹 제공, 뉴시스>

왜 한국 언론의 대기업 총수 ‘부고 기사’는 똑같은 걸까  

물론 위에서 언급한 매체 가운데 한국일보는 조중동·매경·한경과는 ‘궤’를 좀 달리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과 고인의 경영방식에 비판적인 의견을 기사에서 소개하면서 사설에서도 최소한의 균형은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맨손으로 시작해 한국과 일본에 ‘롯데 왕국’을 세웠지만, 무한증식을 가능케 한 폐쇄적 경영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 많은 비판도 쏟아졌다. 그는 기업공개(IPO)를 극도로 꺼리면서 일부 회사를 빼곤 비상장 상태를 유지했고, 일본 롯데 계열사는 아예 한 곳도 상장하지 않았다. 현재 롯데지주와 함께 그룹의 한 축을 이루면서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호텔롯데의 경우도 여전히 비상장 기업이다.” 
(한국일보 2면 <신격호, 123층 월드타워까지… 맨손으로 ‘롯데 왕국’ 일궈 재계 5위로>)
 

“2000년대 들어 롯데가 국내 재계 5위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규모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기보다는 신 명예회장 일인 경영 체제를 고집하면서 여러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후계 구도를 둘러싼 장남과 차남의 갈등 와중에 신 명예회장의 판단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말에는 가족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증여세 포탈 등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사설 <‘롯데 신화’ 일군 신격호 별세, 그룹 거듭나는 계기 되길>) 

   
▲ <이미지 출처=한국일보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오늘(20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다룬 언론 보도에서 ‘이런 정도의 균형성’을 갖춘 기사를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언론의 평가는 비슷합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 차원이라고 하기엔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런 식의 ‘부고 기사’는 문제가 많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대다수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 명예회장은 30살 이상 차이 난 미스롯데 출신인 배우 서미경씨를 만나 막내딸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을 낳았다. 맏딸 신 이사장과 신 고문은 롯데그룹 계열사의 영화관 매점과 백화점 식당 운영권 등을 독점 운영해 ‘일감 몰아주기’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 (중략) 

특히 일본롯데가 사실상 한국롯데를 지배하는 지분구조가 드러나자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여기에 검찰까지 나서 롯데가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일본으로 빼돌리고 있다는 국부 유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반롯데 감정에 불을 지폈다.”
(경향신문 8면 <얽힌 지분구조·황제경영…두 아들 경영권 분쟁으로 씁쓸한 말년>)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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