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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 감독은 왜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에게 죄송했을까

기사승인 2019.11.22  15: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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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대기업 멀티플렉스 눈치보는 국회 압박해 영화법 개정해야

‘제가 배급에 그렇게 관여할 수 있는 입장 아니라 죄송합니다만, 50% 이상 안 넘게 노력해보겠습니다.’ 
‘빨리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제도적으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기생충>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이 영화계 대선배인 정지영 감독에게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이는 22일 ‘<겨울왕국2> 개봉에 따른 스크린독과점을 우려하는 ‘영화다양성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영대위)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나선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이 공개한 내용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반독과점영대위는 “특정영화가 스크린수를 과도하게 점유하는 스크린독과점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며 “이는 다양한 영화 관람을 원하는 관객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라며 <겨울왕국2>로 재점화된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반독과점영대위는 “지속 가능한 한국 영화 생태계를 위하여 정부, 국회, 영화진흥위원회가 함께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화를 진행해 줄 것으로 요구해왔다”며 “그러나 <겨울왕국 2> 개봉에 따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한 번 재점화 되고 있고, 개선되지 못하는 현실에 또 한 번 동시기 개봉한 한국영화들은 무너지고 있다”며 기자회견의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뉴스1>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이날 기자회견은 부산영화협동조합 황의환 대표, 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 C.C.K픽쳐스 최순식 대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안병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이은, 반독과점영대위 운영위원 권영락, 반독과점영대위 대변인 배장수 등이 참석했다. 그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이는 최근 140만 관객을 돌파한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이었다. 

   
▲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가 22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스크린 독과점을 우려하는 영화인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법 개정, 규제와 지원 정책 병행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겨울왕국2>만의 문제가 아니다 

“<블랙머니> 제작진이 여기에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정 감독의 안타까운 목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회견에 나선 것 만으로도 자칫하면 <겨울왕국2>를 보고자 하는 관객들의 ‘악플’에 시달릴 수 있다. 그걸 감안하고 언론 카메라 앞에 나선 정 감독에겐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겨울왕국2>의 개봉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블랙머니>의 스크린 수가 반토막을 넘어 눈에 띄게 줄은 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겨울왕국2>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영화 <극한직업>도, <엑시트>도, <기생충>도 역시도 스크린 독과점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완벽하게 장악한 한국 극장가의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시장이다. 시장주의는 독과점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 극장가는 엄밀히 따져 자유 시장이 아니다. 독과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촉구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타당하다.

다만, 나는 딴죽을 걸고 싶다. 왜 극한직업이 그랬을 때, 기생충이 그랬을 때는 가만히 있었나. 왜 하필 할리우드 영화의 독과점 앞에서만 목소리를 높이나. 이렇게 되면 관객들은 한국 영화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동업자 정신 때문에 한국영화의 독과점에 대해선 조직적으로 비판하지 못한 건가?”

필히 천만에 도달하는 한국영화들 역시 대기업 멀티플렉스 영향 하에 스크린 독과점의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겨울왕국2>와 같은 할리우드 직배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영화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독과점영대위 역시 성명에서 이러한 현실을 분명히 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일부 특정 영화들이 나머지 대부분의 영화들을 압사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승자독식·약육강식이 당연한 것이라면, 우리들의 삶과 우리네 세상만사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진정 그런 것일까요. 

시장이 건강한 기능을 상실해갈 때 국회와 정부는 마땅히 개입해야만 합니다. 영화 다양성 증진과 독과점 해소는 프랑스의 사례에서 배워야 합니다.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영화진흥위원회는 한시라도 빨리 ‘영화법’을 개정하고, 실질적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합니다.” 
    
결국 제도의 문제다 

결국 피해는 누가 볼까. 박스오피스를 들여다보자. <겨울왕국2>는 개봉일인 21일 하루 2,343개 스크린에서 무려 12,998회 상영,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날 전국 극장 매출의 81.8%를 <겨울왕국2>가 거둬들였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에도 좌석 판매율은 26.9%(좌석수 225만, 점유율 70%)에 그쳤다. <겨울왕국2>가 멀티플렉스 극장의 규모와 좌석이 큰 상영관을 싹쓸이하는 동안, 여타 영화들은 나머지 18%의 매출을 나눠 가져야 했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 포스터

그 중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한 <블랙머니>의 경우 21일 하루 852개 스크린에서 2,799회 상영, 6만 9천 명을 동원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18.5%(좌석수 38만)란 좌석판매율. 예매만 120만 장을 팔아치운 <겨울왕국2>와 비교해 크게 뒤지지 않은 수치라 할 수 있다. 

뒤늦은 장기 흥행으로 900만을 돌파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고 싶은 영화, 화제성 있는 영화라면 뒤늦게라도 찾아 보는 관객들에 비해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의 영업 전략은 지나치게 탐욕적이다. 

결국 작금의 스크린 독과점은 관객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에 어마어마한 스크린을 몰아준 뒤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는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의 흥행 만능주의, 탐욕적인 영업 전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확연히 드러난 수치가 이를 입증한다. 반독과점영대위가 예로 든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프랑스의 경우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는 CNC(국립영화센터)는 영화법과 협약에 의거 강력한 규제·지원 정책을 영화산업 제 분야에 걸쳐 병행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15~27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가 점유할 수 있는 최다 스크린은 4개이며 11~23개 스크린에서는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CNC의 규제·지원 정책에 기인합니다.”

어디 <블랙머니> 만의 문제일까. 독립다양성 영화 1위를 달리고 있는 <윤희에게>도, 각각 2만과 1만 돌파를 목전에 둔 <대통령의 7시간>과 <삽질>과 같은 사회파 다큐멘터리 역시 스크린 수가 눈에 띄게 쪼그라든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제도의 문제다.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눈치를 보며 영화법 개정에 소극적인 국회를, 보수야당을 관객들이, 언론이 압박해야 할 때다. 보고 싶은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 즉, 문화 향유권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겨울왕국2>가, 마블이, 예비 천만영화가 점령하는 극장 풍경을 막아내기 위해서.   

   
▲ 영화 <블랙머니>·<대통령의 7시간>·<삽질> 포스터

하성태 기자 

고발뉴스TV_이상호의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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