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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학의 ‘불복’과 인권위의 사형제 폐지 권고

기사승인 2018.09.13  16: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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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한국사회가 인권국가로 도약하느냐 논란의 서막

“사형 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을 국무총리와 외교·법무장관에게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공식적인 사형제 폐지를 위한 첫 삽을 떴다. 지난 11일 인권위는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사형제 폐지와 관련한 국제연합(UN) 의정서 가입을 정부에 권고했다고 알렸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이 (제2선택) 의정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향상시키고 인권의 발전을 도모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형 집행을 금지하고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을 위한 국제적 약속”이라며 “인권위는 앞으로 정부가 이 의정서에 가입하고 비공식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중단) 상황의 공식화, 향후 사형제 폐지를 위한 단계적 조치 마련을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7년 12월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돼 왔다. 인권위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 4일 임명된 최영애 위원장의 첫 주요 결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인권위 역시 “신임 최영애 위원장이 처음 주관하는 전원위원회에서 국민의 법 감정, 우려 등을 논의·숙고한 끝에 11명 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20년 넘게 지속돼 온 사형제 폐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중요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헌데, 한쪽에선 여전히 사형제 폐지에 반대 목소리를 잔존케 하는 사건들도 꼬리를 무는 중이다. 이른바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영학 씨 재판이 그러하다. 심지어 이 씨는 최근 항소심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까지 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예로서 신하를 섬기는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최영애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최 위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공분 일으킬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불복’ 

12일 법원에 따르면, 이영학 씨는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9부에 상고장과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것에 자진해서 불복한 셈이다. 

앞선 지난 6일 2심 재판부는 중학생 딸의 친구를 성추행한 뒤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반면과 1심과 2심 모두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도 이날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로써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이영학 씨의 최종 처벌 수위는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재판부는 감형 이유에 대해 “피고인은 어려서부터 정서적,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탓에 왜곡된 사고와 가치체계를 갖게 됐고, 여러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인을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 사형을 선고한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일관되게 사형을 구형한 검찰이나 이 씨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고 잔혹하게 계획한 것으로 판단한 1심 재판부와 달리 우발적 범행인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12일 <뉴시스> 따르면, 1심 당시 이씨 측 국선변호인은 “사건 초기 변명에 급급했지만 현재는 변명하지 않고 다 인정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의 공분이 크다고 해도 그만큼 되받아치는 게 형벌은 아닐 것이다. 사형은 부당하니 유기징역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딸의 친구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사형제 폐지라는 논란의 서막 

“아주 역겨웠고 제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러웠습니다. 누구나 다 재판장에서 울면 감형 사유가 되는 겁니까? 아니요. 죽이고 싶었습니다. 제 손으로 못 죽인 게 한스러웠죠.” 

지난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힘겹게 인터뷰한 피해자 여중생의 아버지는 이 씨의 항소심을 지켜 본 감상을 위와 같이 털어놨다. 이어 2심 재판부의 판결에 의구심을 던지며 “2심에서는 이영학의 성장 과정을 알 수가 없는데 조사한 바도 없고. 어떻게 그 성장 과정을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저는”이라며 “2심 판단을 믿을 수가 없어요”고 호소했다. 

무기징역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까지 한 가해자 이 씨와 고통을 호소하며 2심 판단에 반박하는 피해자의 아버지. 그 둘 사이에서 국민 여론이 요동치고 있다. 2심의 감형에 이어 이영학 씨의 불복은 그러한 여론에 기름을 붓는 행동임이 자명하다. 이 사이에서 인권위의 사형제 폐지를 위한 단계적 조치 촉구는 어떤 기준으로 바라 봐야 할까. 

1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10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도 이 같은 논란이 격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고 한다.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는 한 위원은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았다고 해서 그것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보상일 수 있겠느냐를 따져야 한다”며 “사형제가 있어야 살인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인간의 생명을 범죄 예방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또 다른 위원은 “이영학의 감형에 대한 피해자 아버지의 인터뷰 기사 댓글을 보니 ‘자기 자식이 당했다면 판사가 이런 판결 내리겠느냐’는 것도 있더라”며 “이처럼 여론의 기저에는 응보(應報)주의적 관점이 있다. 살인범에게 사형을 내리는 것만이 응보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형도 응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 법 감정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처럼 사형제 폐지는 여전히 쉽사리 일단락 내릴 수 없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에 흉악범들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선진국이나 인권 국가일수록 살인 범죄 억제책으로서 사형제라는 전시 효과의 효용성과 국가 차원에서의 제도적 살인이 갖는 반인권적 시각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다. 그 사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은 후퇴를 거듭했다. 

결국 사형제 폐지는 인권위의 결정으로 다시금 진지한 논의의 장에 오를 것이다. 이영학의 불복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킬 사안이고, 감형 역시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이 사이에서 인권위가, 또 정부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가 중요하다. 최초의 '여성'이자 '비법률인 출신'이며 수형제도 전문가인 최영애 인권위원장의 향후 행보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인권위의 결정 하나 하나들이 사형제 폐지의 논란에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사회가 다시 인권국가로 도약하느냐 하는 논란의 서막이 이제 시작됐다.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실에서 열린 제13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해 개회를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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