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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장관 울린 ‘군 의문사’ 장병 엄마의 한마디

기사승인 2018.08.16  15: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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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첫 번째 국방부 장관님’.. 고맙습니다”.. 軍 유족들, 송영무에 감사패 수여

1998년의 일입니다. 일단의 어머니들을 만났습니다. 군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의 말씀은 한결 같았습니다. 내 아들이 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그런데 엄마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착한 내 아들이 이 엄마를 두고 그렇게 자살할 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들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엄마들의 눈물을, 그 한을 지울 수 없어 함께하려 노력했습니다. 어느덧 20년 전의 일입니다. 그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98년 겨울의 일입니다.

그때,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은 국가 책임’이라는 주장을 처음 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방부에 공개 토론을 요청했는데 그때 모 대령에게 들은 말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대령은 “그렇게 할 일이 없냐”며 단박에 면박을 주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장군들도 팡팡 나가떨어지는데, 그깟 군인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난리냐”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당시만 해도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은 국가 책임’이라는 제 주장은 ‘또라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국방부의 인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천만의 주장입니다. 징병할 권리가 있다면, ‘그렇게 징병한 군인의 죽음은 국가 책임’입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군 인권입니다. 그러나 군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억울하다고 한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한 잘못은 아들을 낳아 군대에 보낸 것”이라는 한 어머니의 절규는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이걸 바꾸고자 싸운 것입니다. 그래서 20년간 이어온 군 인권 캠페인에 일대 획을 긋는 도전을 준비한 것이 연극 <이등병의 엄마>였습니다. 그간 만나온 군의문사 피해 유족들의 사연을 대본으로 써서 무대에 올린 것입니다.

연극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그 힘으로 군의문사 피해 유족에 대한 새로운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박근혜 탄핵 국면으로 조기 대선이 실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새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5월부터 지난 1년간 있었던 또 다른 기적입니다.

   
▲ 군 의문사 문제를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 중 한 장면.

“국방부 장관 내정자” 깜짝 놀란 한 통의 전화

생각지도 못한 한 통의 전화였습니다. 2017년 6월 어느 날, 낯선 번호가 휴대폰에 떴습니다. 그래서 받게 된 전화 저 편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저, 국방부장관 후보자 송영무입니다.”

그야말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방부장관 후보자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다니. 사연은 이랬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내각을 구성하면서 국방부장관 내정자도 발표되었습니다. 해군 참모총장 출신의 송영무 국방부장관 후보자였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그 분에 대한 기대가 없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저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전화를 받기 전에 모처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국방부장관 내정자가 군의문사 유족을 만나고 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국방부로부터 처음 들어본 제안이었습니다. 군 유족이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장관이 먼저 연락하여 만나자고 하다니, 그저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시와 장소를 알려 달라고 하니 장소가 뜻밖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국군 수도통합병원 장례식장 내 영현 안치실’이었습니다. 자살로 처리된 사인에 반발하여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군인 시신 안치실에서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쇼’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군의문사 유족을 만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국민에게 보여주고자 소위 언론 플레이를 하자는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요?

   
▲ 지난해 6월 26일, 내정자 신분이던 송영무 국방장관이 군의문사 피해 군인에게 분향‧헌화하고 있는 모습.

결국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2017년 6월 26일 수도통합병원 장례식장 내 안치실. 군의문사 피해 유족이 한 분 한 분 도착할 때마다 송영무 후보자가 손을 잡아 줬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군 역사상 최초로 국방부장관 내정자가 자살로 처리된 군인을 향해 헌화와 분향을 했습니다. 그 모습에 오열하는 어머니들.

그리고 이어진 간담회. 솔직히 10~20분 정도 모양새를 갖춘 후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무려 1시간 30분.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송영무 후보자는 참석한 모든 유족의 말을 일일이 들어 주었습니다. 그때 제가 본 하나의 장면.

송영무 후보자가 내내 울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 큰 눈에 하나 가득 눈물을 담은 채 후보자는 어머니들의 말씀을 들으며 내내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저는 오해를 풀었습니다.

‘그랬구나. 쇼가 아니라 진심이었구나.’

그날 어머니들은 그런 송영무 후보자의 진심에 조심스럽게 세 가지 약속을 부탁했습니다. 이제야 말하는 그 3가지는 이랬습니다.

‘군 의문사 장병’ 엄마들이 송영무 후보자에 요구한 세 가지

첫째는 후보자 신분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장관 취임 할 때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초대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사연을 장관으로서 들어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군의문사 피해 유족들이 만든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장관 자격으로 직접 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억울하다고 하는 것인지, 뭐가 그리 억울하다는 것인지 직접 찾아와 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군 사망사고의 진실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밝힐 국가기관의 출범을 군이 반대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즉,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국방부가 반대하여 법안 통과가 안 되니 이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송영무 후보자는 이런 어머니들의 부탁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들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공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묵시적으로 어떤 약속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 현장에서 이를 따지는 이는 없었습니다. 내정자 신분인 상태에서 어떤 약속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날 자리는 끝났습니다. 유족은 그날 송영무 후보자가 보여준 진심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가시적인 약속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후 장관으로 임명이 되면 조금은 우리 심정을 감안하여 대하지 않겠나’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송영무 후보자가 연극 <이등병의 엄마> 제작자인 제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뜻밖의 전화에 당황해 하는 저에게 송영무 후보자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날 어머니들을 뵈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저도 피상적으로만 여겨왔던 군의문사 문제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머니들이 그날 저에게 세 가지 약속을 요청하셨는데 아마도 제가 그 자리에서 시원한 답을 드리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순간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 과연 어떤 답이기에 전화를 하신 것인지 언뜻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세 가지 요구, 제가 장관이 되면 지키겠습니다. 그래서 군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장관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유족분들께 대신 좀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송영무 후보자는 그 후 국방부장관에 취임했습니다. 과연 그 분은 유족과 했던 자신의 약속을 지켜 주셨을까요?

2018년 8월 3일이었습니다. 2017년 6월 26일 처음 수도통합병원에서 송영무 장관을 만나고 어느덧 1년하고도 두 달이 지나가던 그날, 군의문사 피해 유족단체인 <군 사상 유가족협의회> 김순복 회장과 회원 37명이 국방부를 찾아왔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국방부 정문 앞에서 철문을 부여잡고 울며 “장관 나오라”고 절규하던 군의문사 유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현수막과 유인물 대신 정성껏 준비한 물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감사패’였습니다. 그리고 이 감사패를 받을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송영무 국방부장관’ 이었습니다.

   
▲ 지난 3일 군 사상 유가족협의회 김순복 회장이 송영무 국장부 장관에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약속 지킨 송영무 국방장관님.. 고맙습니다’

송영무 장관이 취임한 직후는 매우 복잡했습니다. 북한 핵무기 위협으로 전쟁 위기감이 고조되어 가던 그때, 군의문사 유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연 국방부가 우리들 문제를 생각이나 할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송영무 장관은 군 고유의 업무는 업무대로 하면서 군의문사 유족과 했던 약속을 지켜 나갔습니다. 제일 먼저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20일, 국방장관 자격으로 군의문사 유족 200여명을 초대하여 그들의 한을 장관 신분으로 다 들어 주었습니다. 사상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이날 송영무 장관은 점심을 먹지 못했습니다. 오찬을 겸한 자리였는데 유족의 사연을 들으며 차마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장관의 모습을 보며 처음엔 원망으로 가득했던 간담회가 나중에는 장관을 붙잡고 유족이 눈물 흘리는 치유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장관이 되면 다시 만나달라’던 유족의 첫 번째 요구가 지켜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9월 29일, 서울 금천문화재단 초청으로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이 이뤄진 날. 이날 송영무 장관은 국방부 고위 관계자와 함께 연극을 관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제일 먼저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며 어머니들의 연기에 극찬을 보냈습니다. 그런 장관의 모습에 유족들은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을 향해 똑같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욕설과 비난을 보내던 국방부장관을 향해 군의문사 유족이 보낸 ‘첫 번째 박수’입니다. 이것이 송영무 장관의 두 번째 약속 이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18년 2월 28일, 국회에서 유족이 염원하던 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습니다. 바로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었습니다. 즉 <군의문사 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 법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법안이 처리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그동안 반대만 해오던 국방부가 오히려 이 법안의 처리를 적극적으로 국회에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후보자 시절, 군의문사 유족이 부탁한 세 가지 요구를 송영무 장관이 완벽히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 덕분입니다. 송영무 장관 취임 이후 비순직 군인에 대한 심의 결과는 더욱 놀랍습니다.

지난 1년간 군인 순직 처리 비율은 무려 98%에 달합니다. 이전에 절반에도 도달치 못했던 기준에 비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러한 순직 비율 변화는 군인사법 시행령을 두 차례나 개정해 준 송영무 장관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한 달에 6명씩 이뤄지던 순직 심사를 20명으로 대폭 확대한 것 역시 큰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에 유족은 뭐라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8월 3일, 유족들은 그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송영무 장관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군의문사 피해 유족이 드리는 감사패를 전했습니다. 그날 유족도 울었고 감사패를 받아든 송영무 장관의 눈시울도 붉어졌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감동적인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 4분짜리 동영상을 보던 때였습니다. 지난 20년간 군의문사 유족들이 싸워온 기록 영상이었습니다. 그때 1999년 6월에 있었던 한 장면이 영상으로 나왔습니다. 군의문사 유족들이 처음 국방부에서 관 세 개를 놓고 10일간 단식하던 장면이었습니다.

   
▲ 지난 20년간 군 의문사 유족들이 싸워온 기록 영상이 국방부에서 상영되고 있다.

그러자 송영무 장관이 물었습니다. “저때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인데, 왜 국방부 앞에서 유족들이 단식을 했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국방장관이 유족을 만나 함께 방법을 찾아야 맞을 것 같은데, 왜 저때는 그러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참석자 중에 한 명이 말했습니다.

“흔히 지금까지 민주정부가 세 번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세분 대통령 밑에서 많은 국방부장관이 있었으나 우리말을 들어주는 국방부 장관은 그동안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관님이 우리에게는 ‘첫 번째 국방부 장관’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찬장은 순식간에 유족들이 치는 큰 박수와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으로 넘쳐났습니다. 일부 유족은 울먹였고 송영무 장관 역시 얼굴이 상기 되었습니다. 군의문사 유족에게 있어 ‘첫 번째 국방부장관’ 송영무.

   
▲ ‘군 의문사’ 유족들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유족들은 송 장관을 자신들의 ‘첫 번째 국방부 장관’이라고 했다.

그 분에게 드리는 감사패가 우리나라 국방부에 영원히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고상만 국방‧인권전문기자

고상만 국방‧인권전문기자 rights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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