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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했던 노회찬, 그가 만들어갔던 ‘진보의 역사’

기사승인 2018.07.25  15: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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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줄잇는 조문행렬, ‘진보’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절실함

   
▲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그때는 특수활동비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냥 저한테 용돈 주신 것으로 알고 고맙게 쓴 거죠….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위축된 모습이었다. 2주 전인 지난 9일 ‘특수활동비’와 관련해서 JTBC <뉴스룸>과 인터뷰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회 특수활동비를 “받은 적 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놀랄 만한 고백이 아닐 수 없었다. 지인의 유학비라며 개인적으로 썼다는 용처도 밝혔다. 

“제가 처음 국회의원 됐을 때, 17대 국회의원 2004년도에 해외에 쓰나미 피해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서 나가게 됐는데 의장께서 불러서 봉투를 하나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열어보니까 달러로 100달러짜리가 10장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액이기는 했지만, 의장님께서 특수활동비라는 것은 제가 그 당시에는 죄송스럽지만 몰랐습니다. 몰랐고 그냥 의장님 판공비로 이렇게 의원들에게 나갈 때 주는 게 관례인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특수활동비구나 이렇게 알게 됐습니다.”

놀라기는 시청자들도, 손석희 앵커 역시 놀란 눈치였다. “그것은 어디다 쓰셨습니까?”라며 물으면서도 “너무 솔직하게 말씀하시니까”라며 머뭇거리기도 했다. 이러한 솔직함이야말로 정치인 노회찬의 가장 큰 무기이자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국민들이 노회찬을 가장 신뢰하게 만든 강점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신뢰는 노동운동가 출신이자 오랜 진보정당 정치인으로서의 믿음이기도 했다. 

“비통한 자들, 즉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는 진보한다.”

그로부터 2주 후인 지난 24일 손석희 앵커는 앵커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소개하며 고 노회찬 원내대표를 추모했다. “진보는 현상 유지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평범한 사람들,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의 동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파머의 통찰과 함께. 

   
   
▲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노회찬이 남긴 ‘진보의 역사’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고백은 그러니까 손 앵커의 말마따나 “현실과 열망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의 그 시도들은 패배로 점철되고는 했기에 마음은 부서지고 무너져서 그들은 언제나 비통하다는 것”이란 진실을 암시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차마 가족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말 못하고 떠난 정치자금과 관련된 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말이다. 

손 앵커가 “반올림…그리고, KTX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라던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서면 발언을 소개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비단 한 '정치인'이 아닌 평생 노동과 약자, 진보를 위해 싸워왔던 노회찬과 그의 마지막 길까지 함께하는 그의 동지들을 위한 어떤 위로.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전하려 했던 메시지 또한 계란을 쥐고 바위와 싸웠던 무모한 이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어온 그의 소망 또한 허황되거나 혹은 미련해 보였을 것이며…. 결국 그는 스스로 견딜 수 없었던 불명예로 인해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뒤에 남게 된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사회학자 파커 J. 파머는 부서져 흩어지는 마음이 아닌 부서져 열리는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의 말처럼 비록 마음은 부서졌지만 부서진 마음의 절실함이 만들어낸 진보의 역사. 그렇게 미련하고…또한 비통한 사람들은 다시 계란을 손에 쥐고 견고한 바위 앞에 서게 될 것인가.”
 
“멈추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자던 마지막 당부 

오늘(25일) 오전까지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만여 명의 조문객이 방문했다는 소식이다. 5일장으로 진행되는 장례는 오늘가지 정의당장으로, 내일부터 발인인 27일까지 국회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식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은 노 원내대표가 학생운동에 뛰어든 고등학생 이후 평생 만들어왔던 ‘진보의 역사’에 공감하는 이들의 마음의 절실함이 반영됐으리라. 

“그를 사랑했던 시민들과 함께 노회찬 원내대표를 추모해 주십시오. 노회찬 원내대표의 삶을 기억하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정신을 나누어 주십시오.

이 원통한 죽음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좌절과 분노 대신, 노회찬 원내대표가 우리에게 당부한 대로 ‘멈추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 이 슬픔을 이겨냅시다. 이것이 진보정치 선배에 대한 도리이자 당원의 의리를 다하는 길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마지막 가시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도록 저와 지도부 또한 장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4일 올린 글이다. 이 대표의 이러한 당부야말로 고 노회찬 원내대표와 함께 ‘진보의 역사’를 만들었으며 그의 죽음 이후에도 앞으로 나아갈 이들의 다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다짐은 또한 노 원내대표의 죽음을 조롱하는 이들의 반인륜적 행태에 대한 당당한 대응으로 연결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한국의 야당이 다 죽었다며) 50년 동안 같은 판에서 계속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 10석을 달성할 당시 정치인 노회찬을 대중에게 알린 ‘불판교체론’이었다. 그리고 2018년, 원내 유일의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지지율 10%를 돌파했다. 그러한 진보의 역사에 진보 정치인 노회찬이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정의당을 향한 후원과 입당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가 남긴 역사의 산물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그의 안타까운 사망을 애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기 위해 줄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조문객이 놓은 구두가 놓여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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