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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디가우징’ 논란, TV조선은 ‘왜’를 묻지 않았다

기사승인 2018.06.28  08: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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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검찰과 대법원의 ‘기싸움’으로 몰아가는 TV조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하드디스크 제출을 두고 대법원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TV조선이 지난 26일 ‘뉴스9’에서 보도한 <검 “양승태 PC훼손” … 대법, 문건 410개 제출> 리포트 가운데 일부입니다. 앵커 멘트로 소개한 이 부분은 TV조선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기싸움’ - 이 단어에 TV조선의 ‘시각’이 반영돼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른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컴퓨터 디가우징’ 파문과 관련해 TV조선이 이날 보도한 리포트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철저히 검찰과 대법원의 공방 위주로 다뤘습니다. 검찰이 ‘디가우징’ 사실을 공개하자, 대법원이 ‘퇴임 규정에 따라 처리한 것’이라며 반박했다는 내용이 기본 뼈대입니다. 

   
▲ <사진출처=TV조선 화면캡처>

의문점에 대해 ‘왜’라고 묻지 않는 TV조선…27일 ‘뉴스9’에선 리포트조차 없어 

물론 양쪽의 입장을 보도한 뒤 추가 리포트를 통해 의문점을 짚고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언급했다면 TV조선의 해당 리포트는 별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양승태 컴퓨터 디가우징’ 파문을 다룬 TV조선 ‘뉴스9’ 리포트는 이게 전부입니다. 

지난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지상파 방송3사를 비롯해 종편에서도 비중 있게 다룬 ‘양승태 디가우징’ 파문이지만 TV조선은 ‘검찰 vs 대법원 기싸움’이라는 식으로 보도한 게 끝입니다. 그것도 26일에만 한 꼭지로 보도했고, 어제(27일)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을 TV조선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어제(27일) JTBC ‘뉴스룸’이 보도한 <디가우징은 내부지침? … 작년 10월 ‘묘한 시점’> 리포트와 비교해보면 TV조선의 소극보도가 얼마나 심한지가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대법원은 디가우징이 ‘내부 지침’에 따라서 행한 절차라고 설명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하드디스크가 훼손된 시점을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은 바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뒤 시작된 법원 조사를 놓고 부실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관련자들 PC를 조사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JTBC ‘뉴스룸’이 앵커 멘트를 통해 던진 이 질문은 대다수 언론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컴퓨터가 ‘디가우징’ 된 지난해 10월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해 “당장 급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밝히면서 재조사가 임박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선 판사들도 “의혹 규명을 위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보존해야 한다”고 요구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가 빗발치던 시점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컴퓨터가 ‘디가우징’ 됩니다. ‘미묘한 시점’과 ‘의도성 여부’에 대해 언론이라면 당연히 의혹을 제기해야 할 대목입니다. “법원이 증거 인멸을 위해 하드디스크를 임의로 훼손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민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핵심은 언급하지 않은 채 ‘검찰과 대법원 갈등’ 부각하는 TV조선 

사실 TV조선의 이날(26일) 리포트가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은 핵심은 언급하지 않은 채 검찰과 대법원 갈등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해명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TV조선은 ‘왜’를 묻는 대신 검찰과 대법원 갈등을 부각 시키는데 비중을 둡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대법원은 또 다른 하드디스크도 공무상 비밀 내용이 있어 제출할 수 없고, 제출 사례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검찰은 ‘공용 컴퓨터는 사용자 동의 없이도 볼 수 있다’면서 ‘수사는 우리가 훨씬 많이 안다’고 맞섰습니다.”

TV조선은 검찰이 밝힌 입장 가운데 왜 굳이 “수사는 우리가 훨씬 많이 안다”는, 다소 유치하게(?) 여겨질 수 있는 멘트를 반영했을까요? 저는 이번 파문을 검찰과 대법원의 ‘기싸움’으로 몰아가고픈 TV조선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봅니다. ‘기싸움’이라는 TV조선 판단에 가장 부합하는 멘트나 입장이 뭘까요? “수사는 우리가 훨씬 많이 안다”는 검찰 입장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때문에 TV조선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쓰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출을 거부했다는 내용도 없고 △사법 농단 관련 410개 문건 파일이 전체 컴퓨터 파일의 0.1%에 불과하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디가우징’ 파문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과 짚어야 할 의혹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냥 ‘검찰 vs 대법원 갈등’ 프레임만 있습니다. 

그래서 TV조선 측에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보도를 할 거라면 대체 이 보도를 왜 한 것인가요. 짚어야 할 부분에 대해 ‘왜’를 묻지 않는다면 언론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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