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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특별법 우리가 만들었다”는 홍준표…‘민정당’ 과거 잊었나

기사승인 2017.08.31  15: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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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 푸대접 이해하기 어렵다...전두환‧노태우도 우리가 처단” 주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격인 신한국당 시절 5.18 특별법을 만들었는데 호남에서 푸대접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한국당이 ‘전두환 신군부’가 창당한 민주정의당의 후신 격이라는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31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중인 홍준표 대표.<사진제공=뉴시스>

홍 대표는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호남지역을 방문한다. 호남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 푸대접 받고 홀대를 받아야 하는지 나는 이해하기 참 어렵다”며 “우리가 5.18 특별법을 만들고, 5.18을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규정하고 5.18의 주범인 전두환‧노태우를 우리가 처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망월동 국립묘지를 성역화한 것도 우리가 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한 것이 아니고 YS(김영삼 전 대통령)때 신한국당이 했다”며 “그렇게 다하고도 왜 우리가 호남으로부터 홀대를 받고 핍박을 받아야 하는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팩트’ 자체만 보자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5.18 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맞는 이야기다. 1995년도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24일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에 5.18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지시했다. 특별법은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안 된 12월 19일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 사이 민자당의 이름은 신한국당으로 변경됐다.

그러나 특별법 통과 과정에서는 당시 신한국당 일부 의원들과 보수야당인 자유민주연합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1995년 12월 20일자 <동아일보>는 특별법 통과 소식을 전하면서 “이날(19일) 표결에서 신한국당의 최재욱 의원과 자민련 소속 의원 19명 등 모두 20명이 반대했으며 강재섭 의원을 비롯한 신한국당 내 특별법 반대자는 대부분 불참했다”고 보도했다.

같은해 9월 19일자 <경향신문>은 5.18특별법에 대한 당시 여당의 반대기류를 전했다. 신문은 “민자당은 5.18 특별법 제정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당론을 고수하고 있다”며 “5.18문제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존중해야 하며 김영삼 대통령의 표현대로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가장 먼저 특별법을 발의한 것도 당시 야당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1995년 9월 22일 조순형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 등 14명이 발의했고 53명의 의원이 찬성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제출됐다. 장기욱 당시 민주당 의원 등 30명은 11월 13일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 사건처리 특별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는 5.18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도 명시돼 있다.

당시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안은 법사위에서 국민회의‧민주당이 발의한 법안과 유수호 자민련 의원 등이 발의한 ‘5.18 사건 및 92년 대선자금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 임명에 관한법률’ 등 3건을 참고해 법사위안으로 제안하기로 의결함에 따라 당시 여당 소속이었던 법사위원장이 제안한 것이다. 국민회의가 주장했던 특별검사제 도입은 실현되지 못했다.

   
▲ <사진=1995년 12월 10일자 MBC '뉴스데스크' 방송화면 캡쳐>

다만, 여당은 12월 7일 ‘헌정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는 같은 해 9월 국민회의가 발의한 헌법파괴범죄 등의 공소시효에 관한 법률안과 앞서 언급한 민주당의 특별법안과 함께 참고해 법사위안으로 제안하기로 했고 국회를 통과했다.

5.18 특별법이 통과되기 까지는 시민사회의 힘도 적잖게 작용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따르면 1995년 8월 25일 전국 78개 대학 교수 3560명이 5.18 특별법을 입법청원했으며 여기에 ‘5.18 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전신 계승 국민위원회’도 특별법 입법을 국회에 청원했다.

이 책에는 “5.18 특별법 쟁취를 위한 투쟁이 본격화 됐다. 1995년 7월 14일 광주에서는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회’라는 대책기구를 만들었다. 서울에서 결성된 ‘5.18 완전해결과 정의실현, 희망을 위한 과거청산국민위원회’와 함께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기 위한 지속적인 법리적‧물리적 투쟁을 모색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홍준표 “DJ‧노무현 대통령 아닌 YS가 신한국당 당시 5.18 문제 해결”

잘 알려져 있다시피 검찰이 전두환, 노태우 씨 등을 기소한 것도, 현재의 국립 5.18 묘지의 묘역공사에 나선 것도 문민정부 시절이긴 하다. 다만, 5.18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정부 시절인 지난 2002년이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자유한국당의 뿌리다. 문민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민자당은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3당이 합당해 탄생했다. 민정당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정권을 차지한 ‘전두환 신군부’가 만든 정당. 3당 합당을 앞두고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며 합당에 반대하던 장면은 역사에 생생하게 기록돼있다.

민자당은 이후 신한국당으로 개명됐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조순 총재의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바뀌었다. 한나라당은 다시 2012년 새누리당으로, 새누리당은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으로 분당됐다. 즉,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민정당의 후신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홍 대표의 발언은 이같은 역사적 배경들은 쏙 빼놓은 채 자칫 자유한국당의 전신이 5.18 재평가에 전적으로 기여한 것처럼 비쳐질 소지가 있는 셈. 그런데도 “호남에서 왜 이렇게 푸대접과 홀대를 받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한 것이다.

홍 대표는 “호남 분들에게 이런 문제를 들어 이제는 우리를 더 핍박하거나 홀대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DJ‧노무현 대통령이 5.18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고 신한국당 당시에 YS가 전부 해결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를 핍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호소하고 올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전두환 정권 당시 가택연금 등 고초를 당했음에도 민주화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대통령이 된 이후 5.18 재평가에 힘을 보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은 인정해야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홀대하지 말라는 홍 대표의 호소가 호남시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편, 홍 대표는 지난 5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호남의 전략적 투표는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 우리에게는 2%도 주지 않는 야박함과 문(재인) 후보에게만 전략적으로 몰아주는 호남 민심이 참으로 무섭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이렇게 묻지마 몰표로 지역을 갈라놓고 어떻게 지역감정 해소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나라가 걱정”이라며 “어차피 호남 1, 2중대는 합칠 수 밖에 없을 거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구도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나라의 앞일이 걱정”이라고 주장했다.

문용필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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