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초청장을 앞에 두고 지난 20여년 만성적으로 겪어온 ‘방송전 기자증후군’에 휩싸입니다. 완성된 고발리포트가 담긴 테잎을 생방송용 데크에 밀어 넣고 온에어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전신으로 퍼져오는 얼얼한 긴장감. 아무리 이 일에 이력이 붙어도 매번 새롭게 저려오는 통증이지요.
자극적 뉴스에 익숙한 대중은 대체로 점점 더 강하고 더 생생한 이야기를 원하십니다. 기자는 더 깊은 곳으로 삽질을 해 내려가야 하는 운명을 부여받습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에 나오는 차력사 잠파노를 생각합니다. 관객의 박수가 커질수록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그에 대한 연민이 순전히 무거워지는 제 나이 탓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테잎을 데크에 밀어 넣고 나면 기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대신 미처 확인하지 못한 팩트들이 줄줄이 손에 손을 잡고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괴롭지요. 뻥뻥 구멍 뚫린 논리와 부실한 자료들에 대한 반성이 밀려오고, 눈앞으로 민‧형사를 비롯한 모든 물리력을 동원해 공격해올 맹수의 날선 송곳니가 번득입니다. 정말 두렵습니다.
지금 제 심정입니다. 김광석 변사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년을 추적해왔습니다만, 한 자루의 촛불이란 세상 풍파 앞에 늘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수사권과 영장 한 장 없이 맨손으로 건져 올린 사실의 조각들입니다. 너무도 왜소하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고작 이것뿐이냐’, ‘이것두 영화냐’는 대중의 비난과 다가올 살기어린 상대방의 공세를 떠올리며 전두엽이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수십 차례 검찰조사를 받으며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종종 서봤습니다만, 레드카펫은 처음입니다. 심지어 형사법정의 피고인석 보다 더 낯설게 느껴지는 자리입니다. 배꼽 밑에 남은 한주먹 호흡 살짝 꺼내 내쉬어봅니다. 이제, 가수 김광석 한 사람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울하게 숨져간 이 땅의 모든 이름 없는 변사자들을 위해 초청장을 집어 들고 나서겠습니다.
모든 비판과 질책은 오롯이 제 몫입니다. 다만 영화에 조각 진실이라도 있거든 끄집어내어 함께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겠습니다.
이상호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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