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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서해성] 계엄 내력

기사승인 2024.12.07  14: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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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책에 이르길 “적이 쳐들어옴에 방비를 세우는 일을 계엄이라고 한다 敵將至, 設備曰戒嚴”에서 계엄戒嚴이라는 말은 나왔다. 글은 다음 문장으로 이어진다. “적이 물러감에 방비를 푸는데 해엄이라고 한다 敵退, 弛備曰解嚴.”  

17세기 자전 “정자통正字通”에 나오는 말이다. 1615년 매응조梅膺祚가 ‘자휘字彙’를 편찬했고, 이를 바탕으로 1627년 명明나라 장자열張自烈이 보충하여 ‘자휘변字彙辯’을 냈는데 청淸나라 요문영廖文英이 원고를 사들여 책이름을 바꾸고 편찬자를 자기 이름으로 하여 1671년 ‘정자통’으로 펴냈다. 

“계엄법은 법에 따르기보다 다분히 방종하는 무법” 

같은 17세기인 1628년 잉글랜드에서 계엄법(령)martial law은 처음 시행되었다. 크롬월 시대의 왕정주의자로 두 여성을 마녀로 처형하는 판결은 내린 바 있는 ‘정직한’ 재판관이자 저명한 법이론가 메튜 헤일Matthew Hale(1609-1676)마저 계엄법을 이렇게 말했다. “martial law is no law, but something indulged rather than allowed as law. 계엄법이란 법에 따르기보다는 다분히 방종하는 무법이다.” 

이를 받아들여 재구성한 것은 나폴레옹이 쫓겨난 뒤 돌아온 프랑스 앵시앵 레짐 곧 복고왕정이었다. 1814년 헌장에 국왕은 법률 집행과 국가 안전을 위해 긴급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국왕이란 부르봉 왕가 루이 18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계엄법은 합위合圍 상태 État de siège(State of Siege  국가포위상태, 곧 계엄 지역)라는 개념으로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합위상태는 전쟁이나 무장 반란 등 실질 무력에 의해 국내 질서가 혼란할 때 일반 행정권(경찰권)을 군대에 이관하고 치안을 유지한다는 뜻을 지닌 일제 용어다. 

잉글랜드 계엄법이 외국 군대와 싸울 때 재산을 포함한 민간 징발 등에 제한된 군사권에 관한 것이었다면 프랑스는 이를 국내에도 적용시켰다. 제5공화국 체제 프랑스에서 실제로 발동된 국가 긴급권 선포는 4번 있었다. 식민지 알제리, 파리 거주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에 대한 발포명령과 통행금지, 해외영토(식민지) 통제, 외국 이민자(무슬림) 차별 정책으로 파리 북부에서 발생한 소요에 따른 통행금지와 경찰 발포권 부여 등이다. 국내라고는 하지만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다른 세 번도 식민지 유산과 관련하고 있다. 제5공화국 헌법은 알제리 위기 등을 계기로 1958년 제정되었다. 식민지 소동, 곧 독립투쟁 등을 관리, 진압하기 위해 앵시앵 레짐 시대에 만든 악법을 예술과 인권과 혁명의 나라 프랑스가 다시 소환해 부활시킨 것이다. 참고로 프랑스 제3공화제, 제4공화제 헌법에는 국가 긴급권 규정 자체가 없었다. 

“韓 계엄, 일제가 식민지에 적용하던 걸 계승”

프랑스 국가긴급권을 수용하여 법률로 제정한 아시아 국가는 일본이었다. 전쟁 심각성에 따라 임전지경臨戰地境과 더 강도가 높은 합위지경合圍地境으로 나누어 계엄법(령)을 공포했다.(1882년 태정관 공고 제36호) 일본은 이때 “정자통”에 나오는 ‘계엄’을 가져왔다. 계엄은 이렇게 탄생했다. 계엄령은 일본 군부가 침략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나왔다. 1889년 메이지 헌법 이전에는 입법부가 존재하지 않았므로 모든 법률 사항은 일본 왕령으로 선포되었다. 영어로 martial law 계엄법이 지금껏 계엄령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제가 한 구분법과 유사하게 한국법에서 계엄은 경비계엄과 비상계엄으로 나뉜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현행 일본국 헌법에는 계엄령 조항이 없다는 사실이다. 계엄법은 법 밖에 있는 법, 곧 법이 아닌 까닭이다. 

한국 계엄은 일제가 식민지에 적용하던 걸 계승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 관할 지역을 담당하는 일제 군부가 행정, 사법 등에 관해 시행하던 통제와 장악 행위의 임의성을 고스란히 자국민에게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우리 헌법과 계엄법에 따른 계엄령은 자국민과 민주체제를 피식민지 민중과 사회를 지배하듯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주권자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계엄법은 기본권 보장을 위해 존립한다고 해도 어긋나지 않는 헌법의 자기 부정이다. 계엄이란 법률 개념으로 이른바 예외상태를 말하는데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적과 교전 상황을 빼고는 국가나 군대는 자국민 기본권을 지켜내기 위해 마땅히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광범한 민간인 학살 따위가 발생하게 된다. 

개헌한다면 권력 문제 보다 계엄령 조항부터 삭제해야

현행 헌법을 고치는 개헌을 한다면 4년 중임 같은 권력 문제가 우선이 아니라 헌법에서 계엄령 조항을 삭제하거나 계엄사령관이나 현장 지휘관에게 부여되는 임의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내용으로 규율해야 한다. 임의성은 무한 확대 해석이 가능하므로 사실상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을 일반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현행 계엄법부터 고쳐서 임의성을 소멸 내지는 제한시키는 구체성을 담아야 한다. 주권자의 기본권과 의회, 사법 기능이 군부 아래 종속되는 사회는 그 자체가 메튜 헤일이 말한 무법 방종한 상태인 까닭이다. 평시라면 더 말할 게 없다. 

잘 알다시피 한국에서 계엄법(령)은 나라 밖에서 쳐들어오는 적과 맞서기 위해서보다는 대부분 정권 유지를 위해 부당하게 발동되었다. 대한민국 계엄법이 1949년 11월24일에 제정되었다는 건 1948년 10월21일 여순사건으로 발효된 최초 계엄령이 법률에 의거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걸 잘 말해주고 있다. 같은 해 11월17일 제주 일원에 내린 계엄령 또한 다르지 않다. 법률을 만들기도 전에 군부가 모든 걸 장악, 통제하는 계엄령이 먼저 시행된 것이다. 두 지역에서 되돌릴 수 없는 참혹한 민간인 학살이 가능케 한 건 식민지성으로 관습화된 기초가 계엄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계엄령에 관한 현장 군 지휘관들의 이해는 일제에 의해 학습된 것이었고 이를 광복 이후 자국민에게 더 가혹하게 답습했다. 그 과정과 결과는 비극이었다. 이제 이 법률을 폐기하거나 근본에서 뜯어고칠 이유가 충분해졌다. 

   
▲ 서해성 작가.

다시 옛 책을 읽는다. 적이 쳐들어옴에 방비를 세우는 일을 계엄이라고 한다. 적이 물러감에 방비를 푸는데 해엄이라고 한다. 2024년 12월 3일 밤 17번째 계엄령이 발동되었다. 역시 외적이 쳐들어온 적은 없었다. 

서해성 작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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