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한 살 취업준비생 죽음에
나는 사흘 뒤에 나타날 것이다.
열흘 뒤일 수도 있다.
더 오랜 뒤에 나타나도 좋다.
어차피 그건 다 사흘 뒤이니까.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마지막 이력서를 쓴다.
150번 쯤 이력서를 써본 사람에게 자소서는 일종의 유서다.
자소서를 쓰고 보낼 때마다
내 청춘은 한 칸씩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석 달 관리비를 못 내
수위실을 비켜갈 수 없어
원룸 출입구 앞에서 서성거릴 때
비는 내리고
생라면을 뜯어 먹으면서
동네를 몇 바퀴 돌고 돌았다.
자정은 또 와서 밤이 되고
낡은 컴퓨터를 끌어당겨
이력서를 몇 줄 고치고
자기소개서를 처음처럼 쓴다.
아침이 오도록
유행병균 말고는
아무도 나를 기웃거리지 않았다.
차라리 전염병이라도 걸렸더라면 핑계라도 생겼을 것을.
소주병이 웃으면서 말을 건네오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입사하여 열심히 일해보겠습니다를 타자 찍었을 때
이게 유서란 걸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아무리 자소서를 써도
정녕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나에게 소개할 길이 없어서 울었다.
청춘아, 돌아오지 마라.
서른한 살 내 짧은 인생에서 이력서를 쓸 수 있는 기회 말고는
없었다.
나는 나를 데리고 외출하기로 했다.
캐리어 한 개면 내 청춘은 남김없이 들어간다.
나를 이 가방에 구겨넣어 멀리 끌어가다오.
내 마지막 영토, 내 유일한 영토는 떠도는 이 가방뿐.
나는 사흘 뒤에 나타날 것이다.
스무하루 뒤일 수도 있다.
어차피 그날은 사글세를 내야 하는 날이니까.
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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