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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시/서해성] 150번째 이력서를 쓰면서

기사승인 2021.07.22  19: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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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한 살 취업준비생 죽음에

나는 사흘 뒤에 나타날 것이다. 
열흘 뒤일 수도 있다. 
더 오랜 뒤에 나타나도 좋다. 
어차피 그건 다 사흘 뒤이니까.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마지막 이력서를 쓴다. 
150번 쯤 이력서를 써본 사람에게 자소서는 일종의 유서다. 
자소서를 쓰고 보낼 때마다 
내 청춘은 한 칸씩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석 달 관리비를 못 내 
수위실을 비켜갈 수 없어 
원룸 출입구 앞에서 서성거릴 때 
비는 내리고 
생라면을 뜯어 먹으면서 
동네를 몇 바퀴 돌고 돌았다. 

자정은 또 와서 밤이 되고 
낡은 컴퓨터를 끌어당겨 
이력서를 몇 줄 고치고 
자기소개서를 처음처럼 쓴다. 

아침이 오도록 
유행병균 말고는 
아무도 나를 기웃거리지 않았다. 
차라리 전염병이라도 걸렸더라면 핑계라도 생겼을 것을. 
소주병이 웃으면서 말을 건네오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입사하여 열심히 일해보겠습니다를 타자 찍었을 때 
이게 유서란 걸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아무리 자소서를 써도 
정녕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나에게 소개할 길이 없어서 울었다. 
청춘아, 돌아오지 마라. 
서른한 살 내 짧은 인생에서 이력서를 쓸 수 있는 기회 말고는 
없었다. 
나는 나를 데리고 외출하기로 했다. 

   

캐리어 한 개면 내 청춘은 남김없이 들어간다. 
나를 이 가방에 구겨넣어 멀리 끌어가다오. 
내 마지막 영토, 내 유일한 영토는 떠도는 이 가방뿐. 

나는 사흘 뒤에 나타날 것이다. 
스무하루  뒤일 수도 있다. 
어차피 그날은 사글세를 내야 하는 날이니까.

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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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고발뉴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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