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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계급화? 같은 20대 청년 사망도 ‘선택적 보도’하는 언론

기사승인 2021.05.07  12: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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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려들고 보는 언론의 ‘하이에나 근성’…“조회수 장사 따른 보도행태”

“지난달 평택항에서 일하던 23살 대학생 하청 노동자가 300kg짜리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아빠의 일터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유가족은 진상 규명을 호소하며 2주째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6일 JTBC <뉴스룸>, <300㎏짜리 쇳덩이에 깔려…대학생 하청 노동자 참변> 앵커 멘트)

“컨테이너 정리 작업을 하던 24살 이선호 씨 머리 위로 300kg이나 나가는 컨테이너 벽이 쓰러졌습니다. 이 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유족들은 이 씨가 해당 작업에 처음으로 투입됐는데, 회사가 사전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안전모 등 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6일 MBC <뉴스데스크>, <300kg 쇳덩이에 깔려…눈 감지 못한 청년 노동자> 리포트 중 일부)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이날 평택항에서 기자회견을 연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알린 참상은 참단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달 22일 항만에서 아들 선호씨와 함께 일했던 아버지 이재훈씨는 컨테이너에 깔린 아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사고 이후 1시간이 지나도록 119조차 부르지 않았을 정도로 회사 측의 대응이 속수무책이었다.  

유족 및 대책위는 사측은 선호씨가 처음 하는 작업임에도 안전 교육조차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난지 보름이 넘었지만 유족들과 친구들은 진상규명을 호소하며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이날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앞서 죽어간 청년 노동자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구의역 고 김군, 태안화력발전 고 김용균,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청년 장애인 노동자 고 김재순.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지는 꽃다운 젊음의 죽음을 왜 우리는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가? 해마다 2,400명 이상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로 희생당하고 있다. 무려 하루 평균 사망자가 7명에 이르고 있다. 언제까지 산재사망 공화국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 것인가?”

아들 사망 현장 목도한 아버지, 또 한 번 이어진 20대 청년의 죽음

아울러 대책위는 “이선호군의 영혼이 외롭지 않게, 이선호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더 이상 노동현장에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는 이 자리에 섰다”며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진상에 대해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의 요구 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대책위의 네 가지 요구 사항이다.  

첫째, 주식회사 동방은 노동자 고 이선호군 사망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둘째,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은 철저한 진상조사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중대재해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라!
셋째,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응급 구조와 대응이 가능하도록 평택항 내 응급치료시설을 마련하라!
넷째, 유족과 사고 정황 현장 목격자에 대한 트라우마 긴급 위기 대응 및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전체 노동자에 대한 트라우마 위기관리 및 지원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대책위는 특히 진상조사의 주체를 일일이 거론했다. 먼저 고용노동부를 향해서는 “사고현장인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내 사고원인 규명과 안전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평택항 내 동일, 유사 공정에 대한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특별근로감독을 즉각 실시하라”고 촉구했고,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경찰과 노동부 등 관계기관은 사고현장 CCTV, 긴급출동 의무기록지, 관계기관 신고기록 등 사고정황에 대한 자료 일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또 이어 노동부의 중대재해 조사에 대해서는 “유족 및 대책위 추천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한편 “사고 관련 기관인 해양수산부 평택해양수산청, 관세청 평택직할세관, 경기평택항만공사의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아들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도한 이재훈씨는 “아들의 허망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고, 자식을 둔 대한민국의 부모는 이 일을 다 알아야 한다”(6일 한겨레, <300㎏ 철판에 깔린 ‘삶의 희망’…재훈씨는 정신을 잃었다>)면서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한겨레 홈페이지 캡처>

평범한 대학생이던 선호씨의 황망한 죽음을 사고 당일 접했다는 친구 배민형씨도 기자회견에 참석, “제 친구 선호가 왜 죽어야만했는지 알고 싶다”며 아래와 같은 발언을 전했다. 배씨는 친구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14일 채 빈소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사고가 있기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저는 선호와 만나 웃으며 농담을 하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다음 주에 술 한잔하자, 코로나가 끝나면 예전처럼 여행 한 번 가자며 약속들을 했고 막막한 이십대 미래를 고민하던 저에게 선호는 ‘민형아 괜찮아 우린 아직 젊잖아’라며 위로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랬던 친구가 일주일 사이에 24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아니 아직 꽃도 피지 못한 나이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참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TV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천벌 받아 마땅한 놈들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스스로 용돈 좀 벌어보겠다며 땀 흘리며 일하던 선호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던걸까요. 친구들과 술 한잔 할 때면 자기네 부모님 걱정, 누나 걱정을 하며 눈물을 보이던 속 깊은 친구 선호가 무슨 잘못이 있던 걸까요. 제 친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었길래, 놀러 가다가 죽은 것도 아니고 차가운 부둣가에서 일하다 죽은 것일까요.”

   
▲ <이미지 출처=JTBC 화면 캡처>

죽음마저 계급화시키는 언론?

이날 지상파 3사 및 JTBC는 고 이선호씨 사망 사건과 기자회견을 메인 뉴스를 통해 보도했다. 헌데 일부 언론이 이씨 사건 리포트보다 앞서 다룬 사망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한강 사망 의대생’ 사건으로 명명되는 고 손정민씨 사건이었다. 

고 손정민씨 사건은 분명 안타까운 사건이다.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진상이 규명돼야 마땅하고, 이를 통해 여전히 슬픔을 호소하는 유족의 한을 달래줄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손씨 사건에 대한 과도한 언론 보도를 놓고 ‘죽음의 계급화’란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럴 만하다. 언론이 일반인의 의혹에 휩싸인 실종 이후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에 대해 이만큼 과도하게 기사량을 쏟아낸 일은 전무후무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경찰 수사 결과보다 앞서 범인을 단정한 듯한 보도가 시시각각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하물며 일반인의 발인까지 속속들이 보도됐다. 

일반인이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보도와 보도량의 균형이 우선일 터이다. 일단 장이 서면 달려들고 보는 우리 언론의 하이에나 근성이 이번 ‘한강 사망 의대생’ 사건에도 여지없이 발휘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딱히 해당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을 요인이 있어서라기보다 대중의 관심을 언론이 끌어낸 경우라고 할까. 

일단 의혹이 발생했고, 미심쩍은 관련 인물까지 등장했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안성맞춤이다. 거기에 피해자가 강남에서 주거하던 서울 지역 의대생이란 사실이 드러나자 언론들의 부화뇌동이 극에 달했고, 이에 더해 경황이 없는 가운데 횡설수설하기 마련인 대개 유족들과 달리 손씨의 아버지는 기자들 앞에서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남다른 존재였다. 

심지어 인터넷 상에서는 ‘손씨 아버지의 놀라운 스펙’이란 게시물이 횡행했다. 즉, 기자들이 믿을 만한 유족이라 여긴 손씨 아버지의 주장 하나하나가 자극적으로 기사화됐고, 경찰이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서 언론보도 또한 극대화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다. 만약 한강에서 사망한 청년이 의대생도, 대학생도 아니었다면, 그 아버지의 ‘스펙’이 일용직 노동자였다면, 해당 사건이 손씨의 거주지 인근인 서울반포한강 공원이 아닌 지방 산골의 어느 이름 모를 강이었다면 언론이 지금과 같은 보도행태를 보였겠는가. 이런 보도행태는 고 이선호씨는 물론 앞서 숨진 건설 노동자 김재규씨 사망 사건 보도량과 비교해도 확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6일 <미디어스>는 <두 청년 죽음에 대한 “언론의 선택적 관심”>이란 기사에서 “두 청년의 죽음에 언론이 선택적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며 “조회수 장사에 따른 보도행태”라고 단언한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인터뷰를 전했다. 같은 대학생의 죽음이라도 관심을 달리하는 우리 언론의 ‘선택적 보도’가 여기까지 왔다. 

“산업재해 사망 사건은 조회수나 관심이 쏠리지 않으니 보도를 안 하는 반면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의 경우 사건 초기 부모의 호소,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가며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럴만한 내용이 아닌데 언론이 이른바 장사 거리로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하고 있다. 언론은 여론의 관심이 없더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할 사회적 타살로 불리는 죽음들에 관심을 갖고 최소한의 보도를 해야 한다. 산업재해 사망 사건은 조회수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보도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신미희 사무처장)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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