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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한다>, 5.18 젊은 세대가 가슴으로 공감하길”

기사승인 2020.05.26  14: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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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500] 김만진 MBC PD

지난 18일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맞는 날이었다. 따라서 각 방송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특별방송을 편성했다. 그중 MBC가 14일 방송한 <나는 기억한다>가 많은 호평을 받았다. 

<나는 기억한다>는 5.18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증언 그리고 당시 MBC가 보도하지 않은 리포트와 아카이브를 통해 1980년 5월의 광주를 그려냈다. 제작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9일 서울 상암 MBC에서 <나는 기억한다>를 연출한 김만진 PD를 만났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특별방송 '나는 기억한다'를 더빙하는 모습. <사진=김만진 MBC PD 제공>

“MBC 사장과 전두환 단독대담 리허설 장면정언 결탁해 광주 은폐” 

- 지난 14일 방송된 <시리즈 M> 5.18 40주년 특집 ‘나는 기억한다’를 연출하셨잖아요. 마치신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다행스럽다고 생각해요. 다루기 너무 어려운 주제잖아요. 특히 가장 어려웠던 점은,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보도 특집물 등이 기존에 너무 많죠, 더군나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만든다면서 남들이 이미 한 것과 비슷하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어떻게 접근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5.18을 다룬 다큐멘터리 중에서 새로운 방식이었다고 보아주시고, 또 많은 분이 좋았다고 이야기해주셔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반응은 어떤 거 같아요? 내용이 괜찮았다는 평도, 시청률도 괜찮게 나온 거 같은데.

“이런 다큐멘터리는 시청률보다도 훨씬 중요한 점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 시청률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MBC에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시청자위원회’란 기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다큐멘터리 에 대해서, 이 시청자위원회 위원 세 분으로부터 질문 혹은 평가가 제시되었는데, 나쁜 말씀이 하나도 없고 다들 칭찬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일반적인 주변의 평들을 들어보면, 보통 이번에 주변 분들께서 칭찬해주신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가 마지막 부분에서 엔딩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한 칭찬이 많았습니다. 두 번째는,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구조나 접근방식이랄까요, 그런 게 기존에 5.18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보도 특집물들과 차별되었다는 점을 많이 좋게 보아주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동시에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상당히 많이 있었는데, 이번에 소개된 과거 아카이브 영상자료 중에서 처음 본 장면들이 많았고 의의가 있다고 해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 막막했을 것 같은데.

“막막했죠. 제가 어떻게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됐냐면 최근 몇 년간 제가 한국 현대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몇 편 연출했는데, 그런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5.18 40주년 특집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제안이 회사에서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다큐멘터리 PD로서, 5.18 4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맡아보라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거든요.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었습니다. 영광스럽게 받아들였고요.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이틀 정도만 고민하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 미국인 린다 루이스와 촬영하고 있다. <사진=김만진 MBC PD 제공>

- 그럼 처음에는 기존에 다른 작품들이 이미 많이 있을 거란 생각 안 한 건가요? 저라면 많을 거 같아서 고사했을 거예요. 어렵잖아요. 이미 전작들이 많으니 어떻게 차별화하며 잘할 수 있을지 고민될 테니까요.

“물론 기존에 다른 작품들이 많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저도 이제 나이도 있고 이런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할 기회가 많이 남지 않았으니, 일단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18 4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라면, 제작비 지원 문제 같은 구체적인 어려움을 다 떠나서, 그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런 다큐멘터리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으면 거부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제안 들었을 때, 하겠다고 수락하기 전에 이틀 정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제 나름의 아이디어는 있었어요. 그러나 막상 만들어보겠다고 대답한 후에,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보려고 하니까, 이게 제약조건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 방향으로는 못 가겠더군요.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기존 다큐멘터리나 책, 보도 특집물들을 집중적으로 보면서 조사하고 연구하는 기간을 한 달 정도 가졌습니다. 이 단계에서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 처음에 어디부터 시작했어요?

“제가 공부를 시작한 게 작년 10월 하순에서 11월 초 정도인데, 이건 회사에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저한테 주어진 시간이 6개월이 넘는다는 뜻인데, 올해에도 5.18 다큐멘터리가 여러 방송사에서 만들어졌지만, 이 정도 준비할 시간을 준 방송사는 많지 않을 거예요.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많은 분께서 이번 <나는 기억한다>에서 지난 40년간 못 보던 아카이브 자료들이 많이 나와서 참 좋았다고 말해 주시는데, 그건 자료조사 기간이 어느 정도 제게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어요. 이 분야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기까지,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자료들을 제가 다 찾기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 기존 작품이 많아서 그걸 다 보는 것만 해도 일이었을 거 같은데 힘들지 않았어요? 또 자료를 다 보는 거 이외에 힘든 점은 어떤 게 있었나요?

“자료를 다 보는 건 물론 힘들죠.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많이 보다 보면 5.18 관련된 프로그램에서 그 제작진이 새로 촬영한 부분 말고, 과거 자료 영상들 부분은 나중엔 거의 암기가 다 되더군요. 같은 장면이 정말 여러 군데에 쓰였거든요. 그래서 나중에는 점점 빨리 조사할 수 있게 되죠.

또 다른 힘들었던 점을 물으셨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말하자면, 5.18을 직접 보고, 또 직접 기록을 남긴 사람들의 릴레이 증언기 같은 성격이 있잖아요? 이번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분 중에 1980년 5월 18일이 되는 새벽부터 27일 도청이 진압당할 때까지의 주요 국면을 모두 다 본 사람은 한 분도 안 계시거든요. 어떤 분은 21일 도청 앞 발포상황을 자세히 봤고, 어떤 분은 또 26일에서 27일 넘어가는 새벽을 자세히 봤고 그런 식이죠. 그러니까 전체 그림을 다 그리려면 주요한 국면을 각각 릴레이로 증언할 분들이 여러 명 필요했던 건데, 이분들을 다 찾아내고 설득하는 것도 힘든 일 중의 하나였죠.”

- 시작 부분에 ‘행복의 나라로’라는 노래와 함께 5.18 당시 영상이 나와요, 그리고 이어서 전두환 씨가 당시 이진희 MBC 사장과 인터뷰 하는 게 나오잖아요.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이 노래를 제가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굉장히 반대되는 편집을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80년 5월의 광주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잖아요. 완전히 역설적인 편집을 하고 싶었어요. 그 부분은 조연출이 예고로 만든 걸 프롤로그 격으로 앞부분에 쓴 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게 이진희 전 MBC 사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단독대담 전 리허설 장면이죠. 이 장면을 쓴 이유는, 이게 5.18 직후의 상황인데, 이들이 어떻게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언론과 정치 권력이 결탁해서 은폐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죠. 사실 1980년 당시 MBC도 기자들을 광주에 보내서 취재했거든요. 그런데 당시 MBC는 광주의 비극에 대해서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개별적인 기자의 문제를 제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당시의 한국 언론에 구조적인 억압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MBC를 비롯한 언론은 이에 대해 반성할 점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MBC 5.18 40주년 특집방송 ‘나는 기억한다’ 화면 캡처>

- 당시 시민군 취사반이었던 주소연 씨 인터뷰로 이야기를 풀어가셨잖아요.

“주소연 씨는 제가 볼 때 제일 중요한 얘기를 하시는 세 분 중 한 분이었거든요. 특히 박병규 씨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그렇지요. 촬영을 다 하고 편집을 시작할 무렵 결심한 건데, 박병규, 주소연, 조성호 이 세 분의 사연은 엔딩크레딧 바로 앞에서 시청자들에게 풀어서 보여준 후에, 엔딩에서 김민기 씨가 만들고 부른 곡 ‘그날’과 함께 엔딩크레딧으로 간다는 구조를 정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그 엔딩 장면 앞의 프로그램 어딘가에 이분들의 사연이 시청자들에게 약간씩 노출되면서,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분들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장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첫 아카이브 장면 바로 다음에 주소연, 조성호 이 두 분의 사연을 살짝살짝 출발시키는 구조로 간 겁니다. ‘출발’이라는 표현은 제가 쓰는 거지만요. 그래서 주소연 씨 이야기가 앞부분에 나오는 거죠.” 

- 중간중간 80년 당시에는 방송되지 못했던 리포트들이 나오던데, 처음 그거 찾았을 때 어떠셨어요?

“작년 11월, 12월 초에 자료 조사할 때 과거에 MBC에서 광주를 취재한 이런 리포트 오디오가 있는데 방송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고, 당시 기자분들에게 연락해서 또 확인까지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 기술본부 선배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감사드리고 싶어요. MBC 기자들이 광주에서 취재했는데도 방송에 내보내지 못했다는 그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당시 방송되지 못한 리포트’라는 자막을 썼습니다. 이런 오디오를 쓰는 이유는, 첫 번째로 과거 MBC의 행태에 대한 사과의 의미가 하나 있고요, 두 번째는 노 내레이션 다큐멘터리에서는 내레이션을 대체할 현장음이 정말 중요한데, 이것보다 좋은 현장음이 또 어디 있겠어요? 발견하고는 이건 무조건 쓴다고 생각했죠.

오효진 당시 MBC 기자의 광주 취재 체험기가 발간된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 광주에서의 취재 결과를 서울로 알리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광주는 교통과 통신이 모두 두절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불타버린 광주 MBC에 가보니 담벼락에 그을린 상태의 전화선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 전화선을 자석식 전화기에 연결하고 돌려대서 어렵게 서울 MBC로 리포트를 할 수는 있었는데 보도되지 못했던 거죠.

이때는 광주 소식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던 시기였고 모두가 광주 소식에 목말라 있었어요. 그래서 광주에서 전화로 걸려온 이 리포트가 서울 MBC에서 녹음되는 동안, 주조정실에 있던 서울 MBC 직원들이 모두 모여 리포트를 함께 들었다고 합니다.” 

- 이 두 분 기자들을 인터뷰할 생각은 안 하셨어요?

“오효진 기자는 고령이시고 또 건강 상태 때문에 인터뷰가 좀 여의치 않았습니다. 정동영 기자는 만나서 인터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좀 있었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총선 전에는 만나기가 힘들었고요, 총선 이후엔 제가 너무 바빴어요. 또 굳이 정동영 기자를 반드시 만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 한국일보 기자 조성호 씨가 아주 중요한 인물로 이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또 다른 언론인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본 거예요.” 

“1980년 전두환 위한 조찬기도회…목사들 불의한 권력에 협력”

- 후반부에 전두환 씨를 위한 국가조찬기도회 장면이 나오던데 그걸 넣은 이유는 뭔가요?

“저도 기독교인이거든요. 이 다큐멘터리에 당시 계엄군이었던 두 분이 등장하잖아요. 이은재, 이경남 목사 두 분이죠. 제가 의도적으로 당시 계엄군 중 기독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 건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었던 당시 광주 투입 계엄군 두 분이 우연히 모두 현직 목사였던 거예요. 그분들이 저에게 저런 이야기를 해주신 거예요. 물론 자료조사 하는 과정에서도 1980년 전두환을 위한 국가조찬기도회 장면을 영상으로 찾기는 했지만, 이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 <이미지 출처=MBC 5.18 40주년 특집방송 ‘나는 기억한다’ 화면 캡처>

- 그럼 처음에 그 장면 봤을 때 기독교인으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제 생각과 비슷한 얘기를 이은재 목사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걸 방송에서 사용했습니다. 제가 당시 조찬 기도회에 참석했던 목사들의 구체적인 이름을 지금 얘기하진 않을게요. 거기 참석한 목사 대부분은 아주 유명한 분들입니다. 물론 불과 얼마 전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당시로서는 그 목사분들이 잘 몰랐을 가능성은 있겠죠.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목사들은 불의한 권력에 이용되었고 또 거기에 협력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책임을 질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 시민이 아니고 또 기독교 지도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는 저 스스로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로 생각합니다.” 

- 5.18 관련 기록을 보면서 느끼시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제작과정에서 구할 수 있는 영상이나 발간된 서적 자료들은 웬만큼 거의 다 본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이라면 관련된 영상자료들이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도 또 이유가 있는 것이, 40년이 지났으니 너무 오래된 자료이기도 하고, 또 대부분이 외국 취재진이 촬영한 동영상들이라서, 출처가 다양해요. 또 아날로그 테이프를 방송사들이 쓰던 시절이라 같은 화면이라도 화질이 다른 많은 여러 가지 버전이 동시에 방송사 자료실에 존재하기도 하는 식으로 자료가 뒤죽박죽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아날로그 테이프는 여러 번 복사할수록 점점 화질이 열화되니까요.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방송사에는 별로 없기 때문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료를 백 퍼센트 활용해오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도 이번에 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윤상원 열사의 사망 직후의 동영상 모습을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영상은 MBC 자료실에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자료 이름에 ‘윤상원’이라고 네이밍이 되어 있지 않았고, 그냥 ‘광주 5.18 자료’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거죠. 윤상원 열사의 증명사진 같은 생전의 모습은 검색하면 금방 나오지만, 사후의 모습은 아주 희귀합니다. 제가 알기로 사후의 모습은 타임지의 사진기자 로빈 모이어(Robin Moyer)가 촬영한 단 2장의 사진만이 지금까지 알려져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방송사 PD들이 이 문제에 전문가는 아니니까 짧은 시간에는 할 수는 없는 일들이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 자료 찾는 일과 관련해서 있었다고 생각해요. 외부의 연구기관에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만, 그분들은 또 방송사 자료에 접근을 못 하시니까, 이번에 보시고 이런 게 있었냐고 좀 놀라셨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뭘까요?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하나 원했던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선언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보다는, 할 수 있는 한 있었던 그대로를 담담하게 보여줘서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어떤 정서적인 울림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자는 거였죠. 특히 5.18을 교과서에서만 배운 젊은 세대들이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또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슴으로 공감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얼마 전에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었습니다.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전체를 그냥 공개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좀 더 많은 시청자가 쉽게 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회사는 판단하고 수익과 관계없이 공개한 것 같습니다. <GO발뉴스> 독자분들도 많이들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영광 기자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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