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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조선·동아 ‘친일’ 전력 탈탈 턴 KBS의 독한 검증

기사승인 2019.03.11  12: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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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해방 후는 물론 현재까지 자신들의 친일 행적 왜곡·부인

   
   
▲ <이미지 출처=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처>

“잘생기고 인기 있는 분이 천왕폐하를 위해서 군대 가자고 하면 젊은이들이 가게 되는 거거든요. 거기 앞장선 것이 바로 조선일보, 동아일보라고 할 수 있고 특히 동아일보의 경우에는 교육자이기도 했거든요. 보성전문학교, 지금의 고려대학교. 교장의 역할, 그다음에 교육자의 역할 플러스 언론인의 역할을 겸하면서 그런 활동을 했다는 것이죠.”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

“그러면서 이제 ‘내가 본토인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런 생각을 불어넣는 데 신문사들의 역할이나 언론인들의 역할, 지식인들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는 거죠. 이제 우리가 조선인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 조선과 일본은 한 몸이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일제 감정기, 조선 총독부의 ‘문화통치’에 적극 부응하며 ‘내선일체’를 부르짖었던 그 신문들이 소위 ‘민족지’라고 자임하고 나선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엔 그러한 ‘친일’의 논조가 극심해졌다. 어쩌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집약돼 있는 풍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호 위에 일장기를 선명히, 당당하게 달았던 그 신문들이 해방 후에 족벌 체제를 형성, ‘민족지’, ‘1등 신문’을 자임하는 것도 모자라 당당하게 종편을 운영하는 현실 자체가. 방학진 실장이 설명하는 그 ‘민족지’의 실체는 참으로 비굴하고 굴욕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3.1 운동 당시에 그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많은 지하신문(당국의 단속을 피해 배포되는 신문)들을 만들어요. 일종의 ‘굴뚝론’인데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디서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지. 독립운동가들이 어디서 무슨 모의를 하고 있는지 우리 조선총독부가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이제 지하신문을 가지고는 굴뚝을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조선, 동아라고 하는 합법적 공간. 일제 총독부가 허용하는 일정한 합법적 공간을 만들어서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불만이 있는지를 사전에 좀 알아차릴 필요가 있겠다. 라는 그런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되는 것이죠.”

이렇듯, 10일 방송된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민족지’ 조선·동아, 100년의 침묵”편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대표적인 친일 언론인 조선일보․동아일보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해부했다. 문제는 그 시절 부역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행해진 ‘친일’ 기사들만이 아니었다. 해방 후는 물론 현재까지 자신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침묵이나 왜곡, 부인으로 일관하는 두 거대 언론의 자세 자체가 문제였다. 

친일파들을 향한 죽비, “과에 대한 면죄부로 공을 격상해서는 안 된다”
 
“과에 대한 면죄부로 공을 격상해서는 안 된다.”

KBS 송수진 기자의 입에서 ‘핵심’이 나왔다. 소위 친일을 옹호하고 두둔하는 세력들이 내놓는 ‘공과론’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단호한 반박이었다. 공과론은 식민지 시대라는 상황론을 들어 “친일로 한 인간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그 핵심이다. 송 기자는 공과론을 포함해 친일 청산을 가로막는 주장들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 10대 ‘궤변’>을 내놓았다고 못박기도 했다. 

이날 방송은 평소 스튜디오 녹화와 달리 조선일보․동아일보 사옥을 둘러보고 중앙국립도서관을 찾아 과거 두 언론의 친일 흔적을 샅샅이 훑었다. 일본 간사이 대학 장부승 교수가 “그러한 (식민지라는) 제약 속에서도 우리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의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나름대로의 노력이 있었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약간 능동적인 측면을 같이 아울러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한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반박이 이뤄졌다.    

   
   
▲ <이미지 출처=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처>

“친일 기사를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탄압이 강하고 그다음에 압력이 강했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그 시기를 살지 않은 사람의 편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붓을 꺾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게 일반적으로 우리가 친일 문제를 보는 데 중요한 시각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극심했던 친일의 논조와 1940년 폐간과 해방 이후 복간까지의 과정, 그리고 현재 ‘조선’과 ‘동아’의 친일 전력에 대한 대응까지를 상세하게 다뤘다. 그 중 정준희 교수는 특히 조선 총독부의 식민지 지배 전략의 일환이었던 ‘내선일체’에 적극 부응한 두 신문의 전력을 집중 거론했다. 아래는 그 기사 중 일부다.  

“오직 황공하오신 폐하(일왕)의 보국진충(保國盡忠: 충성으로 은혜를 갚다)을 다한 출전장벽의 무훈이 혁혁한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총친화(摠親和)의 대도에 내선일체의 구현으로서 사변 목적 달성에 어긋남이 없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정준희 교수는 이에 대해 “입에 담기조차 그런 말들까지 했다는 건 탄압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내적 변화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일치시키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갔다”고 꼬집었다. 이광수, 서정주를 비롯한 많은 친일 문인들이 절필은커녕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킨 예술가로서 칭송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의 문제는 그 영향력 면에서 또 다르다. 정준희 교수는 드골 치하 프랑스의 나치 청산 이슈를 예로 들었다. 

“나치 시대의 신문을 발행했던 사람들을 잡습니다. 이게 침략자의 선전기구 역할을 했고 자국민의 신문발행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거기서 나치의 논조를 가지고 뭔가를 했다는 거 자체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반민족적 행위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15일 이상 발행했던 신문들을 일단 불법 행위로 기준을 잡고 그다음에 건물 시설의 재산을 몰수하고 새로운 창간 신문사에게 제공하는 상당히 극단적인.

그리고 실제로 신문사, 언론인 중에서 10명 정도가 처형당했고 투옥당하는 그런 일들까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실 언론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봐도 아무리 잘못해도 이 정도까지 하는 건 심하지 않았나 이런 식의 생각이 들 정도인데. 여기서 중요한 모티브가 그거예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실물적 손해를 끼치는 행동보다도 더 위험한 건 그들의 의식, 그러니까 식민의식을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더 크게 저항을 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모티브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처>

‘안티조선’ 운동 이후 20여년, 전무후무한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탄생 

하지만, 조선과 동아는 21세기까지 그 위세를 떨치며 언론재벌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반성은 없었다. 동아는 끝끝내 침묵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법이 통과된 2004년 조선은 자체적으로 친일 행적에 대한 조사를 벌인 후 그 결과를 <조선일보 사람들>이라는 책으로 발행했다. 송수진 기자는 이를 두고 “일제시대 때 우리가 친일을 한 역사는 있다, 그렇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내용이라고 갈무리했다. 후안무치는 이럴 때 쓰는 말일 터다. 

설상가상으로, 두 신문은 자신들의 친일 전력을 미화하기에 이르렀다. 동아의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와 같은 연중 기사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가 4년여의 조사 끝에 확정한 1,006명의 친일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포함된 조선과 동아의 강한 반발이 3.1운동 100주년에 또 다른 미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이러한 친일 전력의 두 언론이 현재 언론 지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짚었다. 두 교수의 입을 통해서다. 

“(한일․한미 관계를 바라보는) 이것이 바로 한국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 일부의 보수 언론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화된 식민성이라고 하는 측면들이 드러나고 있는 요소라고 봅니다.”(정준희 교수)

“(두 신문이) 결국은 항상 (일본 군국주의나 군사정권 등) 기득권이나 지배 권력 쪽에 서 있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 속해있었던 언론이 지금도 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김서중 교수) 
   
2000년대 초반 일어났던 ‘안티조선’ 운동 이후 20여 년, 결론적으로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는 과거 친일 전력을 역사에 대해 반성 없는 조선․동아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살펴보는 동시에 강도 높게 비판한 전무후무한 공영방송 프로그램으로 기록될 것이다. 간만에, 수신료가 아깝지 않은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보여줬다 랄까.  

하성태 기자

#이상호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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