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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사과의 품격과 진정성

기사승인 2020.05.23  09: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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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책임 회피’ 논란 SBS·채널A는 ‘반쪽사과’ 

# 장면 하나 – SBS에게 오보와 사과란? 

“검찰은 정 교수가 아들 상장의 총장 직인 파일 등을 이용해 딸의 표창장을 위조한 것으로 보고 기소했지만, 당시에는 어떤 증거가 있었는지 언론에 밝히지 않았습니다. 기소 다음날인 지난해 9월 7일 SBS 취재진은 검찰이 기소한 근거는 정 교수 연구실 컴퓨터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취재진은 여러 취재 내용 등을 참고해 정 교수 연구실 컴퓨터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총장 직인을 찍는 데에 이용된 것으로 검찰이 판단한 파일’ 또는 ‘총장 직인 관련 파일’이 발견됐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지만 ‘총장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SBS 방송화면 캡처>

지난 7일 SBS <8뉴스>에서 보도한 리포트 가운데 일부입니다. 당시에도 몇 번을 봤고, 지금도 몇 번을 다시 봤지만 저는 ‘이 부분’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알고 계신지요?) 

SBS는 “당시로서는 ‘총장 직인을 찍는 데에 이용된 것으로 검찰이 판단한 파일’ 또는 ‘총장 직인 관련 파일’이 발견됐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지만 ‘총장 직인 파일’이 발견됐다고 보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총장 직인 관련 파일’이란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거니와 백 번을 양보해 ‘총장 직인 관련 파일’을 ‘총장 직인 파일’로 단정해서 보도했다면 ‘부정확하게’ 보도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보’를 오보라 인정하지 않는 SBS의 ‘비겁함’ 

언론사가 기사나 보도에서 ‘부정확한 부분’이 발견됐으면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부분에 대해 시청자나 독자에게 정정하고 사과’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날 SBS에서 사과나 정정은 없었습니다. ‘오보’를 오보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가 보기엔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는 것 같더군요. 

지상파 방송사라는 무게감에 비춰 SBS의 ‘비겁함’을 엿볼 수 있는 리포트였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SBS의 보도가 방송심의 규정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는지 그리고 SBS가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보도했는지 등에 대해 심의한다고 하니 결과를 한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이소영 방통심의위 심의위원이 “(SBS 보도) 경위와 근거에 대한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최근 불확실한 취재원,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크로스체크 없이 보도하는 행태가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이번 (SBS) 보도도 그와 같은 상황일 수 있다”고 했는데, SBS 측에서 여기에 뭐라고 답변할지가 궁금하네요. 

   
▲ <이미지 출처=채널A 방송화면 캡처>

# 장면 둘 – 채널A, 사과는 했는데 … 

“채널A는 저희 기자가 신라젠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재윤리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지난 4월 1일 진상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조사 결과 저희 기자가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이를 취재에 이용하려 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명백한 잘못이고, 채널A의 윤리강령과 기자 준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보도본부는 취재 단계의 검증에 소홀했고, 부적절한 취재 행위를 막지 못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어제(22일) 채널A가 메인뉴스에서 밝힌 사과문입니다. 이른바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와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안이 비교적 명백함에도 사과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게 온당한 것인가 – 이런 의문이 들긴 합니다만 어쨌든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점을 평가할 대목입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SBS의 태도와 비교해 보면 진정성마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봤을 땐 미진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사안은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와 검언 유착 의혹’인데 취재윤리 부분에 대해선 사과했지만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해선 여전히 함구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윤리 위반에 대해서만 사과 … 검언 유착 의혹은 ‘함구’ 

오늘(23일) 한겨레가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일부 인용합니다. 

“그러나 ‘검-언 유착’ 의혹 등 실체적 진상 규명은 빠져 있어 반쪽 사과방송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방통위에 제출한 진상보고서 역시 진상 규명보다는 회사가 빠져나갈 여지를 찾고 검찰의 반응을 떠보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는 진상보고서가 미흡하다며 채널에이에 구체적 조사를 추가 요구했으나 채널에이는 더 나올 게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진상 규명의 몫은 자연스럽게 검찰 수사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검찰 수사도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겨레 5월23일 8면 <채널A, 늑장 제출한 자체보고서에서도 진실 감추기 ‘급급’>)

   
▲ <이미지 출처=채널A 방송화면 캡처>

일각에선 채널A 사과에 대해 ‘기자 개인의 취재윤리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것 아니냐며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회사 차원의 조직적 개입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채널A는 △조사 내용을 투명하게 밝히기 위해 25일 채널A 홈페이지를 통해 진상조사 보고서 전문 공개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재발 방지를 위해 보도본부에 취재윤리에디터를 두고,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성찰 및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취재 관행을 살펴보고, 더 나은 뉴스 조직을 만들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이런 점은 평가할 대목이지만 방통위에 제출한 진상보고서가 “기자와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통화 기록은 확인했지만, 사람 이름과 조직 등은 다 가려져 있어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다”면 이는 반쪽짜리 사과에 불과합니다. 

채널A는 “자사 기자가 검찰 고위 관계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이를 취재에 이용하려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과연 친분을 과시한 건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선 아직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한겨레 온라인판 사과문 캡처>

장면 셋 - ‘장문의 사과문’ 게재한 한겨레 

윤석열 검찰총장의 별장 접대 의혹을 제기했던 한겨레가 지난 22일 장문의 사과문을 실었습니다. 한겨레는 22일 1면과 2면을 통해 보도 경위를 설명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한 점에 대해 독자와 윤석열 총장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한겨레는 “이 기사의 정확성을 스스로 평가하고, 취재보도 과정의 문제점도 살펴 독자에게 투명하게 알리기로 했다”면서 “4월 초 구성된 ‘윤석열 관련 보도 조사 티에프’(팀장 백기철 편집인)는 한겨레가 언론활동의 기준으로 삼는 취재보도준칙에 비춰, 이 기사가 사실 확인이 불충분하고, 과장된 표현을 담은 보도라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보도 경위 △해당 기사의 문제점 △독자에 대한 약속을 자세히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물론 한겨레의 이번 사과에 대해 ‘다른 평가’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토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다음 기회에 한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겨레의 사과는 ‘정공법’을 택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사과가 ‘과연 비판과 논란을 빚고 있는 한겨레의 다른 기사에 대해서도 일관성 있게 적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켜봐야겠지만 기사의 미진한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인정하고 ‘자세한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렸다는 점은 평가할 부분입니다. 

‘비겁한’ SBS와 ‘미진한’ 채널A보다는 훨씬 낫다는 얘기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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