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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 없는 한국 언론” 외국인 기자의 뼈아픈 일침

기사승인 2020.03.07  13: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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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참담 수준” 지적한 5가지 문제, 일독 권하는 이유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의 언론은 형편없다! 뉴스를 아무리 읽어도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 뉴스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한 외국인 프리랜서 기자의 한국 언론에 대한 혹독한 평가다. 패션 월간지 <엘르>가 최근 온라인판에 공개한 <한국 언론을 믿을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란 글이 소셜 미디어 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글을 소개하며 “다들 읽어보고 함께 부끄러워하기를 강권한다”며 추천하기도 했다. 해당 글의 필자는 한국 생활 9년 차인 영국인 프리랜서 기자 라파엘 라시드다. 최근 <엘르>에 ‘라파엘의 한국 살이’란 연재 글을 게재 중인 라파엘 라시드는 미디어 스타트업 ‘코리아 엑스포제’ (Korea Exposé) 공동설립자다. 이 대표의 추천대로, 한국 언론의 겨냥한 라파엘 기자의 글은 확실히 도발적이고, 또 분명히 유의미한 지적을 담고 있었다. 바로 이렇게. 

“특히 지난 얼마 간의 코로나바이러스의 위기 속에서 이 ‘미디어의 역할’은 더욱 돋보였다. 너무 많은 소문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사실들, 잘못된 정보들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번져나가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언론은 그저 사회적 불안감, 패닉, 좌절, 무질서를 야기하는 이 모든 것들을 무분별하게 ‘팩트’라고 반복 보도할 뿐이었다. 

결국 미디어의 목적이란 그저 더욱 많은 클릭과 뷰, 좋아요의 개수를 위한 것이 전부인가 싶을 정도로, 거의 폭격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팩트가 될 수 있는 지금, 도대체 뭐가 진짜란 말인가?”

   
   
▲ <이미지 출처=엘르 홈페이지 캡처>

외국인 미디어 스타트업 대표의 일침, 일독을 권하는 이유 

라파엘은 영국 SOAS에서 일본과 한국학을 전공했으며, 고려대학교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외국계 홍보회사 에델만 코리아에서 3년간 근무한 후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그의 미디어 스타트업 ‘코리아 엑스포제’ (Korea Exposé)는 201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수상하는 ‘뉴스스타트업 데모데이 2018’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이력을 반영하듯, 라파엘 기자는 해당 글 서두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서, 사실에 기반한 기사를 쓰기 위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때문에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으며 나 역시 아직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언론학과를 졸업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한국 미디어는 정도를 넘어섰다. 독자를 기만한다고 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면 왜 라파엘 기자는 “정도를 넘어선” 한국 언론이 왜 “독자를 기만한다”고 판단하게 된 걸까. 라파엘 기자가 “참담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한국 언론의 문제 다섯 가지는 “팩트 체크의 누락, 사실의 과장, 표절, 사실을 가장한 추측성 기사, 언론 윤리의 부재”였다. 이에 대해 라파엘 기자는 자신이 한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서 경험한 구체적인 경험과 그로부터 받은 사실적인 인상들을 열거하며 한국 언론의 부실함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매일 뉴스를 읽을 때마다 적어도 이 중 하나의 문제와 맞닥뜨린다. 소위 말하는 ‘잘 알려진’ ‘평이 좋은’ ‘믿을 만한’ 온라인 매체에서도”라며 “지금부터 공유하는 이 다섯 가지 예시는 모두 직접 보거나 경험한 것이고, 당연히 100% 실화”라고 강조하면서. 일례로, “소설의 냄새가 난다”라는 챕터의 내용은 이랬다. 

“OO 씨에 따르면, 전문가에 따르면, 업계에 따르면, 소식통에 따르면 (심지어 SNS/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등은 아주 한국 미디어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언론에서는 주제가 워낙 민감해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할 파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익명으로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제를 막론하고 모든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바꿔 말하면 이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도 어렵고 사실을 꾸며내기 매우 쉬운 환경이라는 얘기다.”

익명의 취재원은 한국 언론의 오래된 고질병으로 손꼽힌다. 기사의 완성도 보다 취재의 용이성 등을 따른 결과다. 라파엘 기자는 이밖에도 영문 글을 대놓고 표절하고도 문제를 지적하자 불쾌했다는 어느 칼럼니스트, 해외 대기업 임원의 두루뭉술한 투자 전망을 두고 근거 없이 구체적 숫자를 기사화한 어느 언론사 기자의 허위 기사 등을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한 라파엘 기자의 지적은 분명 한국의 흔한 ‘기레기’ 들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몇 개 안 되는 예이지만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100개는 더 거뜬히 털어놓을 수 있다. 아마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꽤 있을 것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언론인들까지 깎아내리게 할 만큼 이런 ‘쓰레기’ 같은 기사가 넘쳐난다는 건 몹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디어의 역할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타당한 의견을 갖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와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이런 환경에서 지금 미디어는 본래의 역할의 정반대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6일 경기도 평택의 마스크 제조공장인 우일씨앤텍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필요한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쓰레기’ 같은 기사가 넘쳐난다는 건 몹시 슬픈 일”

결국 라파엘 기자가 “한국의 언론은 형편없다”며 폭발한 배경은 코로나 19 사태를 둘러싼 한국 언론의 기형적이고도 비윤리적인 보도가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라파엘 기자가 지적한 대로 한국언론의 코로나 19 보도는 “사회적 불안감, 패닉, 좌절, 무질서를 야기하는 이 모든 것들을 무분별하게 ‘팩트’라고 반복 보도”한 것이 사실 아닌가. 

“(언론인) 이들이 제 손으로 만든 원칙, 규범들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천 가지도 넘겠지만 대표적으로는 과도한 상업주의 지향, 제대로 된 기자교육의 부재, 언론계 전반의 책임의식 미약 등이 주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의 저급화를 낳고 결국에는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것도 이처럼 황폐해진 언론계 토양에서 불거져 나온 변종 괴물이 아닐까 싶다.”  

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라파엘 기자의 글을 공유한 정운현 전 이낙연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한탄이다. 정 전 비서실장은 20여 년 동안 중앙일보, 서울신문, 오마이뉴스 등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라파엘 기자의 글을 공유하며 장문의 글을 게재한 정 전 비서실장은 “우리 언론계의 대오각성과 재탄생을 거듭 촉구”한다며 아래와 같은 물음을 던졌다. 

코로나 19 사태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 주범 중 하나로 언론을 꼽는 이들이라면, 라파엘 기자와 정 전 기자의 글 모두의 일독을 권한다. 두 글 모두 누구에게는 뼈아픈, 또 다른 이들에게는 하나마나 한 ‘입바른 소리’가 될 듯하지만.  

“이 시대의 언론인에게 고결한 선비의 절조와 지사의 기개를 기대(요구)하는 건 과한 욕심일 테다. 세월도 시대도 사람들도 모두 바뀌었다. 그러나 그런 변화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언론인들이 지식인, 교양인, 적어도 상식인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근년에 들어 '기레기'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왜인가? 기자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원초적인 조직의 문제인가? 이 시대의 기자.PD들이 신문사나 방송사의 일개 '종업원'으로 전락했다는 자탄이 나온 지 한참 됐다. 비록 먹고사는 일이 중하긴 하지만 그걸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얘기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서글픈 일이 아니겠는가?”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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