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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원 “전파 귀한줄 아는, 국민 가장 신뢰하는 아나운서 될 것”

기사승인 2018.02.12  07: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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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200] 박노원 KBS 아나운서

파업에서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마도 매일 있는 집회일 것이다. 집회를 동회 노조는 파업의 동력을 유지시킬 수 있어서이다. 다른 사업장과 달리 방송사 노조 파업 집회는 대부분 아나운서가 맡는다. 그들은 진행을 업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조합원들 역시 방송엔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라서 부담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달 중단된 언론노조 KBS 본부(비대위원장 성재호 이하 KBS 새노조) 142일 파업집회를 본 아나운서에게 파업 집회 뒷이야기가 듣고 싶어 지난 6일 파업 집회를 진행한 아나운서 중 한 명인 박노원 아나운서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박노원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박노원 KBS 아나운서 <사진=이영광 기자>

- 고대영 전 사장이 해임된 지 2주가 지났어요. 파업이 끝나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바로 업무에 복귀해서 파업하기 전부터 전담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KBS 제3라디오 <낭독으로 만나는 세상>이라고 장애인분들에게 책을 낭독해 드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5일)부터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중계방송을 위해 출장을 간 아나운서들의 공백을 메우느라 조금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 5개월 만에 돌아갔는데 어때요?

“아주 오랜만에 업무에 복귀한 것이긴 하지만 2010년부터 파업은 여러 차례 했었거든요. 이전 파업 때와 비교해서 조금 더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것 외엔 딱히 별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다만 이전 파업은 아무래도 저희가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들어가서 힘들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고대영 전 사장 퇴진 을 목표로 내걸고 싸운 싸움이었는데 목표를 달성했기에 다를 때에 비해 성취감 점에서 마음이 조금은 가볍죠.” 

- 오래 일을 안 하면 업무 감각도 없어진다던데.

“아마도 그랬을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시고 저 또한 그런 점을 우려했었는데요, 다행히 어렵다거나 버겁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파업 기간에도 저를 포함한 많은 아나운서 조합원들은 계속 집회 진행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어느덧 18년 차인데 짧지 않은 이력 덕분인지도 모르겠고요. 암튼 복귀해서 어려움을 느끼거나 덜컹대는 것 없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파업 가장 인상적인 순간, 광화문 릴레이 발언”

- 고 전 사장 해임되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 어땠어요?

“조합원들하고 같이 있을 때였어요. 저는 원래 꿈꾸던 바를 이루거나 바라던 소식을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뻐하며 몸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는 성정이 아니에요. 오히려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해임 소식을 들었을 때도 ‘결국 됐구나.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뭘 그렇게 버텼을까’는 마음과 함께 ‘우리 조합원들 정말 고생했다. 5달 동안 2200명이 투쟁한 것은 너무너무 고생했다’는 생각이 교차했어요.” 

- 지난해 12월 KBS 새노조가 광화문에서 10일 동안 릴레이 발언했잖아요. 맨 먼저 아나운서들이 나셨죠. 광장에서 발언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었을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저희 스스로도 놀랐어요. 어렵고 무모한 이 시도를 해내리라곤 생각 못 했거든요. 오늘(6일)처럼 추운 날 광화문에서 발언한다고 이것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 것인지에 대한 회의도 짙었고 모든 것이 불안한 상황에서 첫 주자로 아나운서가 나선 것이죠.

사실 시행하기에 앞서서 자원자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이 일어나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일단 거기서부터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어요. 첫 하루 동안 아나운서들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잘하다 보니 ‘아나운서들도 열심히 하는데 우리도 동참해야지’ 하면서 다른 구역도 하게 된 거예요.

아나운서로도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이 파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공유되었기 때문에 그 일념 하나로 시작하게 됐고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나서 그것이 기록으로도 남게 되었어요. 이번 파업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많이 사람이 릴레이 발언을 뽑을 거로 생각해요. 특히 아나운서라서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 2017년 12월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KBS 비리이사 해임 촉구 단식농성장 앞에서 KBS새노조 회원이 24시간 릴레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 참여하셨어요?

“ 다음날 아침 일찍 과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집회 사회를 보아야 해서 저는 참여를 못 했어요. 그러면 그날 낮에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낮에는 여성 조합원들이나 선배급 아나운서들이 먼저 하고 저 같은 사람이 하려면 밤중 또는 새벽에 해야 하거든요. 다만 밤중에 릴레이 발언하는 데에 위문 방문은 갔었죠.”

- 새벽에 위문 방문 갔을 때 어땠어요?

“실제 칼바람을 맞으며 발언하는 분들에게는 너무도 고된 경험이었겠지만 그 장면을 바라볼 때는 아름다웠어요. 눈이 내리는 데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고대영 퇴진, 그리고 KBS 정상화를 호소하는 장면이 사진처럼 가슴 속에 들어오더라고요. 마이크 앞에선 아나운서는 시민 여러분께 진솔한 자세로 반성을 하고, 그런 조합원들을 위해 동료 아나운서들은 물론 심지어 타 직종 조합원들이 미안한 마음에 귀가를 미룬 채 함께하는 장면을 보며 정말 가슴 뭉클했어요.” 

- 말하는 데 반응이 없다면 힘들 것 같아요.

“맞아요. 하지만 청중이 있는 데 반응이 없으면 더 외롭고 쓸쓸했을 텐데 그날은 보는 분이 별로 없어서 어쩌면 덜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딘가에서 유튜브나 페이스북 라이브로 보실 청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반응이 없더라도 힘 빠지고 기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더 담담히 고백하듯 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있습니다.” 

- 파업 때 집회 사회를 보셨잖아요.

“총 15번 봤는데 장외 집회가 6~7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겨울엔 밖에 나가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잖아요. 게다가 저희가 주로 장외집회를 한 곳이 과천 방통위였는데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서 아침 8시에 집회한 적도 있었거든요. 엄청 춥더라고요. 일단 추위와의 싸움이 제일 힘들었어요.

두 번째로, 장외집회는 아무래도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라서 그 점도 어려웠지요. 실내에서 집회할 때엔 집회 진행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장외집회 때는 도로엔 차가 다녀서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고 그런 가운데 조합원들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더욱더 열심히 하고 뭔가가 필요한 데 어떻게 하면 집중시키면서 집회를 이어갈까가 힘들었어요.” 

- 방송은 작가들이 있지만, 집회는 다 스스로 해야 하니 힘들었을 것 같은데.

“원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바쁘고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파업 집회를 기획하는 기획팀에서 큐시트와 함께 기본적인 얼개는 잡아줘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건조해지기 쉽고 또 현장 상황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MC가 준비를 해야 했어요. 기본 얼개를 보면서 순간순간 집어넣기도 하고 살도 붙이고 뺄 건 빼는 기지를 발휘해야 했는데, 어느 면에서는 파업 집회가 KBS 역량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어요.” 

   
▲ 고대영 전 KBS 사장 <사진제공=뉴시스>

- 주안점은 어디에 두신 거예요?

“일단 기본적으로 파업에 참가하는 조합원들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파업의 동력은 조합원들로부터 나오거든요. 그래서 조합원들이 집회로 파업 열기를 계속 유지하고 다질 수 있게 하는 데 역점을 두고요,

다음으로, 파업이 계속 진행되면 평조합원과 집행부 간에 서로 궁금증이 생기는데 이를 적절한 선에서 해소해주느냐에 주안점을 두죠. 집행부는 그 의문에 답을 해주 의무가 있긴 하지만 전략상 속 시원히 다 밝힐 수 없어요. 이런 상황에 집행부과 평조합원을 연결해 줘야 해요,” 

- 집회를 진행하시며 조합원들 보면 어땠어요?

“저도 조합원이지만 집회에 참석하시는 조합원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그분들이 힘이 됩니다. 그리고 과연 저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어서 파업으로 이끄는 것인지 궁금증도 있어요. 물론 대충은 알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도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파업에 참여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라는 궁금증도 있어요. 그래서 얘기하다 그걸 풀기도 해요.” 

- 기억에 남는 일도 있을 거 같은데.

“먼저 KBS가 권력에 의해 장악된 지난 9년이 참긴 시간이었다는 걸 느꼈어요. 왜냐면 2010년 파업 때도 집회 사회를 봤었는데 그때 보았던 선배님들 얼굴과 이번에 사회 보면서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신 선배님들 얼굴이 많이 달라지셨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얘기죠. 직장 생활 길게 하면 30년 정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중 거의 3분의 1인 10년 가까이 투쟁하신 거잖아요. 너무도 안타까웠고 가슴 아팠어요.

그런데 선배들 못지않게 안타까운 건 후배였어요. 선배님들은 KBS의 좋은 시기를 마음껏 누리지는 못했을지언정 짧게나마 느끼기라도 하셨거든요. KBS 안에서 공정방송, 방송독립이라는 걸 잠깐이라도 느끼실 수 있었는데 2008년 말 이후에 입사한 후배들은 공정방송과 방송독립을 전혀 체감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부 후배들 사이에 체념 주의가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너무 마음 아팠어요. 사회를 보며 얼굴을 보거나 술자리에서 대화하면 그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금쪽같은 시간을 투쟁하는 데 보냈잖아요. 그게 무의미하거나 헛되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요. 그 기억이 저는 가장 많이 남아요.” 

“권력 아부 아닌, 절대다수 양심적 시민위한 방송 할 것”

- 파업 때 MBC 아나운서들과 교류가 있었는데 어땠어요?

“역설적으로, 권력의 탄압이 이어졌던 시기는 양대 공영방송에 준 선물인지도 모르겠어요. 방송 자유가 넘쳤을 때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다 보니 교류가 없었어요. 특히 아나운서는 교류가 없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공영방송이 권력에 의해 장악되고 서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다가 이번에 같이 공동파업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방문과 응원을 해주는 물꼬가 트인 거죠. 이런 교류가 끊이지 않으면 좋겠어요.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하고 경쟁하면서도 좋은 공영방송을 위해서 서로 돕는 통로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바람까지도 갖게 됐어요.” 

- 파업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저는 이번 파업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딱히 달라진 건 없어요. 다만, 우리도 이 정도로 힘이 드는데 저희보다 더 열악한 사업장에서 더 장기 파업하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더 힘들었는가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어려움을 겪다 보니 저희보다 훨씬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분들에게 본능적으로 마음이 끌려요.

물론 무조건 동정적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저기는 왜 저런 투쟁이 있는 거고 무엇이 안 풀리고 무엇 때문에 길게 가는 것을 최소한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을 한다는 게 달라진 거죠.” 

- 파업은 무임금이죠. 생활인이라서 무임금이 힘들었을 거 같은데.

“힘들었죠. 하지만 저도 이제 아나운서실에서 선배보다 후배가 많은 연배인지라 어려운 티를 안 내려고 했어요. 또 원래 제가 좋아하는 경구중 하나가 ‘재물의 수준을 높일 수 없다면 욕망의 수준을 낮추라’는 건데 그 말을 따라서 소비를 줄이면서 버텼어요.” 

- 이제 파업이 끝나서 KBS는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데 앞으로 어떤 KBS가 되길 바라세요?

“이렇게 비유를 하고 싶어요. MBC는 정상궤도에 들어서서 출발했어요. 하지만 KBS는 정상궤도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출발은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서히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직도 삐걱거리고 힘든 게 많아요. YTN은 정상궤도로 들어오나 싶더니 다시 벗어났죠.

앞으로는 들으나 마나 하는 방송, 보나 마나 하는 방송이 아니라 볼만한 방송과 들을만한 방송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개를 돌리신 시청자들이 다시 KBS로 오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사실만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 뒤에 숨은 진실까지 보도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방송이 아닌 절대다수의 양심적인 시민을 위한 방송을 해야겠죠.” 

- 어떤 아나운서로 국민에게 기억되길 바라세요?

“제가 아나운서 되면서 간직한 지표 있는데 ‘전파가 귀한 줄 알고, 방송 어려운 줄 알고, 시청자 존중할 줄 아는 아나운서가 되자’인데요. 그대로 기억될 수 있다면 행복할 거예요. 공공재인 전파가 사적인 목적으로 남용되기도 하고 부박한 언어들로 채워지는 게 안타까워요. 값지고 알찬 시간으로 채워드리길 바랍니다. 또한, 방송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오만해지기 쉽고 발전이 없기 때문에 늘 방송을 어렵게 대하려고 해요. 시청자를 존중한다는 건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요. 그런 아나운서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 인기 있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지는 않으세요?

“물론 있죠. 인기 있는 아나운서가 되어서 제 방송을 통해 더 많은 분이 위안을 받고 따뜻함을 느끼고 희망을 가지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한시도 잊어본 적 없어요. 기본적으로 아나운서는 인기를 얻고 싶은 욕망과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제가 방송 그 자체를 좋아해도 제 방송이 소수에게 전해질 때보다 이왕이면 많은 분이 보실 때 큰 보람을 느끼거든요.

하지만 신뢰는 없으면서 인기만 있는 아나운서는 결코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점은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여러 차이 중 하나일 거예요. 연예인은 인기가 우선이죠. 가장 믿을 수 있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GO발뉴스>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은 우리 사회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진실을 추구하고 갈구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의 관심이 언론인을 자극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 관심을 꾸준히 보이셔서 기존 언론인도 늘 각성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비판, 질책, 제언, 조언 모두 다 관심입니다.”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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