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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토건 세력 굉장한 카르텔 형성”

기사승인 2019.01.19  11: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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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294] 이원호 용산 참사 진상규명 위원회 사무국장

어느덧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었다.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아침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현장 망루에서 농성하던 철거민을 강제진압 했고 그 도중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희생자 유가족 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진상규명은 이제야 첫발을 뗐을 뿐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는 진척이 없다. 특히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활동하며 과잉진압을 아직도 부인하고 있다. 

용산 참사 10주기를 맞아 10주기를 맞이하는 소회와 현재 상황 등을 듣기 위해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에서 이원호 용산 참사 진상규명 위원회 사무국장을 만났다. 다음은 이원호 사무국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사진=이영광 기자>

“원통한 10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전혀 없다”

- 오는 20일이면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1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용산 참사는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이잖아요. 사무국장님은 진상규명위에서 활동하셔서 10주기를 맞이하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

“저희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를 남겨놓고 355일 만에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장례를 치르면서 유가족들과 다른 과거사 사건처럼 30~40년 후 진실이 밝혀지는 사건이 되게 하지 말고 10년 안에 진실을 밝히자는 약속을 했거든요. 그러나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의 과제는 여전히 밝혀지지 못한 부분이 있고 책임자 처벌은 전혀 있지도 않아서 안타까워요. 다만 지난 10년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보다는 저희가 많은 시민과 싸워 왔기 때문에 진상규명 입구에 들어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 왜 10년 안이라는 목표를 잡았던 건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게 장기 미해결 사건으로 넘어가서 30~40년 후에야 진실이 드러날 거 같고 대부분 용산 참사 관련한 책임들의 공소시효가 7년 정도거든요. 그 안에 밝혀내자는 거였는데 지금 현실로는 진실이 규명되어도 책임자 처벌을 하기에는 공소시효가 지나버렸어요.”

- 그럼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을 때 실망이 컸을 거 같아요.

“맞아요. 실제 유가족들이 굉장히 실망하셨죠. 왜냐면 10년 안에 진상을 규명하려면 정권이 한번 바뀌어도 주요 책임자들이 현직에 있어서 쉽지 않아요. 정권이 두 번 정도 바꾸는 시점이 되어야 그래도 확실히 밝혀질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유가족과 했었거든요. 그러나 정권교체라는 게 실패하며 사실상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는 계승했던 거죠. 저희 입장에서 계승 사례가 김석기라고 하는 당시 진압 책임자를 공기업인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했었잖아요. 그런 면에서 사실 진상규명이 늦어지게 되었던 거죠.” 

   
▲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 토론회를 마친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용산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의원의 사퇴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10년이란 세월이 길었는지 아님. 짧았나요?

“돌아보면 짧게 온 거 같기는 한데 유가족이나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2009년 1월 20일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10년 동안 재개발과 관련한 제도 개선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국가 폭력이라고 하는 경찰의 폭력 부분도 많이 바뀌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용산 참사 이후로도 여러 국가 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유가족들은 여전히 2009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보는 건데 달력은 10년이 지나서 원통한 10년이 된 거죠.”

- 10주기를 맞아 행사를 준비하는 거 같은데 소개를 해주세요.

“여러 추모 행사가 진행 중이에요. 예를 들자면 지난 10일부터는 ‘10주기 추모 도시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인디스페이스 극장과 여러 강제 퇴거 현장들, 노량진 수산 시장이나 청계천에서 추모 상영회를 시작해서 진행 중이고요. 그리고 어제(15일) 청와대 앞에서 10주기를 맞이하는 유가족의 입장을 밝히고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해서 청와대에 저희 입장을 전달했고요, 국회에서는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 대회’라는 걸 했어요. 여전히 계속되는 개발 문제를 폭로를 진행했고요. 또 기습적으로 유가족과 국회 의원회관 안에서 김석기 제명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17일 오전 11시에는 국회 인근 국민은행 앞에서 김석기 처벌과 강제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국민 대회를 하고요. 18일 오전엔 김석기 지역구가 경북 경주라 경주에서 지역시민단체와 김석기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18일 저녁엔 조계사에 있는 전통문화 공연장에서 ‘추모와 기억의 밤’이라는 추모 문화제를 하고 참사 당일인 20일 오후 마석에서 추모제를 가지고 또 명동 가톨릭 회관 1층 강당에서 추모 미사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 어제 국회에서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 대회’ 했다고 하셨는데 어땠어요?

“어제는 청량리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과 노원구 인덕마을 철거민분 그리고 개발은 아니지만, 상가 세입자들도 젠트라 피케이션이라고 강제 퇴거당하잖아요. 그쪽 상가 세입자분들 그리고 노량진 수산 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쫓겨난 상인들이 폭력적인 강제퇴거 사태에 대해서 증언하고 이것에 관련한 제도 개선으로 강제퇴거 금지법을 제정하자는 걸 촉구하는 행사였어요.”

- 국회 반응이 있었어요?

“공동 주최로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실 민주당 권미혁, 박주민 의원실이었어요. 저희가 의원실과 공동 주체를 여러 번 했는데 의원들은 인사말만 하고 가잖아요. 그러나 어제 같은 경우는 의원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듣고 의견도 말씀해주셨어요.”

- 유가족들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유가족들이나 생존자들은 그 당시 트라우마를 강하게 가지고 계시고 특히 이즈음엔 잠을 잘 못 주무세요. 유가족 강은 경우 참사가 있기 전엔 다 가게 사장인 자영업자셨죠. 그러나 지금 다시 가게 하시는 분은 한 분밖에 없고 힘들게 생활하세요.”

- 희생자 대부분 가장이었을 거 같은 데 생계는 어떻게 하세요?

“한 어머님 같은 경우 자식들과 다시 가게를 꾸려서 장사하셨지만 어려워져서 문 닫고 용산 참사 인근에서 노점을 하시기도 하시고 또 다른 유가족도 가게를 혼자 시작하셨다가 잘 안 되어 문 닫고 노점 하시고요.”

 - 용산 참사 나던 20일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저는 원래도 주거권 관련 운동을 하고 있어서 용산 참사 전에도 용산 4구역을 몇 번 갔었어요. 19일 망루 올린다는 걸 듣게 됐죠. 그때는 망루가 올라간다고 하니까 며칠 후 지지방문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다음날 새벽 제가 소속된 단체에서 급하게 문자가 와서 바로 TV를 틀었더니 불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용산 현장으로 달려갔죠.”

- 지난 6일 MBC <탐사 기획 스트레이트>에서 용산 참사를 재조명했는데.

“그날은 진실은 상당 부분 밝혀낸 거도 사실이거든요. 과잉진압에 대해 지적했었고 당시에 특공대 투입이 얼마나 부당했는지도 밝혀냈고 그런 게 10년 만에 환기되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아요.”

   
   
▲ <사진출처=MBC 화면캡처>

- 19일 망루 설치할 때 특공대투입 결정했다던데 그건 아셨어요?

“저희는 2009년에도 그 얘기를 했었어요. 왜냐면 정부, 경찰, 검찰의 주장은 19일 온종일 화염병이 난무해 도심 테러에 준하는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특공대를 투입했다는 게 주장이었는데 경찰청 정보 상황 보고라고 경찰이 시간대별로 작성하는 상황 보고가 있었어요. 그걸 보더라도 최초 화염병이 등장하기 한 시간 반 전 즉 최소 화염병 등장이 아침 10시 반이거든요. 그러나 경찰 특공 대원이 현장에 최초로 배치된 시각은 오전 9시고 그 30분 전 김석기 주재 회의가 있었는데 그 회의 후 특공대가 현장에 배치된 거거든요. 실제 경찰청 정보 상황 보고를 보면 초기 용역들이 위협할 때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12시 정도부터는 소강상태였다고 기록되어 있고요. 교통도 원활히 오가는 상황이라는 게 이미 경찰 자료에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그런 걸 인정하지 않았던 거죠.”

- 그럼 용산이 본보기였던 걸까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바로 직전인 2008년에 광우병 촛불이 있었잖아요. 그걸 굉장히 폭력적으로 진압했었고 그 진압을 당시 서울 경찰청장인 김석기가 하기도 했고 촛불을 간신히 잠재우고 나서 이명박 정권이 2008년 연말에 내세운 기조가 법질서 확립이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공권력에 대항하거나 법질서에 대항하면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걸 천명했었죠.

또 하나는 용산 참사 직전 이명박 정부가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나눈 이야기가 전국 곳곳을 공사장으로 만들어 경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이명박 정부 핵심 정책이 토건 개발 사업이었던 건데 용산 철거민 망루 농성은 그 법질서에 도전하는 거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핵심 경제 정책으로 쫓겨나는 걸 폭로하는 농성이었던 거거든요. 그건 정권 차원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봐서 과잉진압을 결정했다고 보는 거죠.”

- 2009년 말 정부와 합의를 한 거로 기억하는 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 같아요.

“근데 사실상 당시 정부와 합의한 건 아니고 용산 4구역 재개발 조합과 합의를 한 거예요. 왜냐면 저희가 정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을 요구한 거고 조합과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23가구 철거민들이 남아 있었거든요. 유가족과 철거민들 대책을 수립하라는 요구였던 거고 당시 정부는 사과 대신 총리 유감 표명 정도로 발표했었죠. 재개발 조합에서 23가구와 유가족에 대한 생계 대책 수립을 약속하며 장례를 치른 거고 재개발 조합과의 약속은 용산 4구역은 7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되고 허허벌판으로 방치되었잖아요. 그러면서 약속이 이행 못 되다가 2년 전 시공사가 바뀌어 공사가 시작되면서 약속은 이행되고 있죠.”

“폭력적인 도시개발 역사 때문…당신도 철거민 될 수 있다”

- 지금 검찰 재조사 위에서 용산 참사를 다시 조사하는 데 현재까지의 상황은 어떤가요?

“당시 철거민만 조사하고 경찰을 기소 안 한 건 분명 잘못한 부분이고 이후에도 이 사건이 편파왜곡 수사라는 의혹이 있기 때문에 검찰 수사 부분도 밝혀야 해요. 검찰 과거사 조사단이 원래 12월에 끝났어야 하는데 외압에 의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서 기간이 3개월 연장됐어요. 근데 외압 대표적인 경우가 용산 참사예요. 참사 당시 용산 참사 특별본부가 검찰 19명과 경찰 수사관 40명 정도로 구성된 규모였거든요. 그러나 10년이 지나니 당시 19명의 검사를 놓고 보면 현직에 있으면 대부분 고위직이거나 퇴직했더라도 얼마 안 된 전관 변호사로 있어서 이들 외압이 상당했었어요.

특히 그 중에 조모 검사는 정병두 본부장 밑에서 수사 총괄 했던 검사예요. 조 검사는 검찰 19기인데 지금 총장이 18기거든요. 차기 검찰 총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이번 조사 외압을 넣어서 몇 개월 전부터 조사가 중단된 상태고 기간이 연장됐지만, 용산 조사팀은 가동 안 하는 상황이에요.”

-그럼 기대할 게 없다는 건가요?

“그래서 어제(15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하며 그런 걸 밝히고 청와대 차원에서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한 건데 검찰 스스로 고위 검찰 눈치를 보면서 조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거잖아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경찰과 검찰 개혁을 담당하는 데 이런 외압에 대해 차단하고 제대로 된 검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이런 방식으로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와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 직속 기구든 정부 차원의 새로운 진상조사 기구를 만들라는 요구를 했어요.” 

- 10년 지났지만, 곳곳에선 재개발로 인해 철거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철거민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발생했어요. 아직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상황 어떻게 보세요?

“지난 12월 초 아현 재건축 지역에서 박준경이라는 37살 청년 철거민이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죠. 10년이 지나도 재개발 재건축과 관련한 제도개선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거거든요. 왜 이게 잘 안 바뀌는지 생각해보면 그동안 한국 사회 지배계급이 토건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과 관련한 기득권 세력이 굉장한 카르텔을 형성하고요. 그러다 보니 사람이 여럿 죽어도 관련 제도가 바뀌지 않은 현실이라서요. 그러나 토건 중심의 경제정책이 결국은 한국 사회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거거든요. 이런 거에서 탈출해야 제도도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빈민해방실천연대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인근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기념 빈민생존권 쟁취 투쟁결의대회에서 김석기 의원 처벌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그럼 어떤 제도를 바꿔야 할까요?

“저희가 용산 참사 이후 대안적 입법으로 강제퇴거 금지법을 만들어서 국회에 제출했어요. 18대부터 20대까지 발의는 되어 있는데 발의만 되고 논의되지 않아요, 강제퇴거 금지법의 핵심적인 내용이 개발사업은 쉽게 구역지정이 됐던 문제가 있거든요. 왜 쉽게 지정하냐면 물리적인 요인만 가지고 지정하는 거예요. 그러나 저희는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준을 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제퇴거 금지법에서는 인권 영향 평가제도를 도입을 넣었어요. 지금도 개발할 때 사전에 교통영향 평가나 환경영향 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걸 통해 개발사업이 진행됐을 때 교통이나 환경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를 사전에 분석해서 부정적인 방향이 나타나는 거에 대해 수정하는 대책을 수립하도록 하는 건데 정작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영향평가는 없는 거잖아요,

저희는 사업계획 수립 전에 거기 사는 사람이 어떤 분포고 취약계층은 어떻게 되고 이렇게 개발을 진행했을 때 이 사람들이 주변에 동동한 수준으로 이사할 수 있는지를 사전에 분석해서 어렵다면 그것에 대한 대책을 미리 수립하는 것을 해야지 개발 전 거주민의 삶이 개발로 인해 동등하거나 나은 삶으로 갈 수 있는 게 마련됐을 때 개발구역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제안하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20일이라고 하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 기억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우리에게 벌어지는 참사로 인식해 주길 바라죠.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물론 누구나 쉽게 철거민이 되지는 않죠. 그리고 철거민 상황이나 삶이 어떨지 짐작할 수가 없고요. 용산 참사 이후 많은 철거민이 저희를 찾아와서 하시는 말씀 첫마디가 뭐냐면 ‘2009년 우리도 TV 보며 보상 노리고 하는 빨갱이라고 욕했었다. 그러나 내가 철거민이 되어보니 왜 그랬는지 알 거 같다’라는 말씀을 하시거든요.

저는 <GO발뉴스> 독자들 당신도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한국 사회는 40년의 도시개발 역사를 통해 부수고 짓는 걸 반복해왔잖아요. 그 과정에서 맨날 강조했던 게 원주민들 주거환경을 개선해주고 주택 공급을 늘려서 집 없는 사람은 집을 갖도록 해주겠다는 논리였어요. 그러나 원주민 주거환경 개선이 아니라 그들은 쫓겨나는 거고 집 없는 사람이 집을 갖느냐면 그게 아니라 새로 지운 아파트 대부분은 집이 여러 채 있는 다주택자가 산다는 거죠. 그러나 대한민국 절반은 집이 없어서 전월세로 고통 받고 집을 소유한다고 해도 엄청난 대출을 껴서 그것 때문에 고통 받거든요.

<GO발뉴스> 독자들도 집 때문에 고민 많은 분일 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집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 이런 폭력적인 도시개발의 역사 때문에 이뤄진 거거든요. 그래서 용산 참사를 현재 우리 일로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이영광 기자 

#이상호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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