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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는 국가를 피고인석에 세웠다

기사승인 2023.02.01  17: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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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 인터뷰로 해경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확정받은 홍가혜 씨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오는 2일 선고를 앞두고 심경을 담은 글을 고발뉴스에 보내왔습니다.

2023.02.02. 자연인인 한 개인이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청구한 첫 선고기일이 열린다. 소장 접수로부터 4년만이다. 살아있는 한 개인이 국가로부터 받는 첫 공식 사과가 될까, 아니면 늘 그랬듯 그들이 면죄부를 받게 될까? 

2014년 12월, 검찰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중형을 구형을 받고 사시나무 떨듯 그렇게 떨면서 기소 공판검사 박형수에게 말했다. 

“검사님, 부끄럽지 않으세요?”

그리고 준비한 두장의 최후진술문을 읽어내려갔다.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법정을 가득 채웠던 이 재판을 방청하러 왔던 방청석에서 한숨과 탄식,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판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나를 불안하게 쳐다봤다. 해경 명예훼손으로 구속을 당했고 보석으로 석방되어 재판을 받는 것이었기에 일반적으로는 다시 교도소로 끌려 갈까 위축된다던데, 오히려 거짓말을 해대는 검찰측 증인들의 법정 진술을 들으며 통곡에 가까운 울분을 터뜨리는가 하면 외마디 욕설을 내뱉기도 했었다. 핏줄이 다 터질 정도의 분노로 그들을 쳐다 보았던 내 눈에서 판사는 무엇을 읽었던 걸까. 왜 불안해 했을까. 그리고 양홍석 변호사님은 그런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들이 마음껏 거짓을 말하도록 내버려두려 했던 변호사님의 전략을 망친 격이 되었으니까. 

살얼음판 위를 걷듯 계속되는 재판에 점점 말라갔다. 
  
억울해서. 

억울해 죽겠는데 자꾸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하는 양홍석 변호사님의 말에 진짜 더 억울해져서. ‘저들은 왜 맘껏 떠드는데 나는 내가 말하지도 못하고 이 재판을 그냥 지켜만 봐야 되는가, 내가 왜 피고인석에 있어야 하는가, 증인으로 나온 저들이야말로 피고인석에 서 있어야 하는 자들이 아니었던가.’ 돌이켜 생각해봐도 아찔했다. 그러지 말라고 나를 말리는 양홍석 변호사님에게 법정에서 “왜요?”라고 따지는가 하면 “아오 씨”라고도 했으니, 그때의 나는 미쳤던 게 분명하다.  

   
▲ 지난 2014년 12월 2일 해경 명예훼손 결심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는 홍가혜씨와 양홍석 변호사. <사진제공=홍가혜씨>

법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던 나였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더욱 확신했다. 내가 한 발언, 그 모든 것이 진실임을. 그리고 저것들이 감추고 캥기는 것들이 셀수 없이 많다는 것을. 

무식하면 용감하다던가. 국가의 구조방기를 폭로했던 10분간의 그 인터뷰는 그저 무식해서 진행했던 것이었다. 딱 그때에만 가능했던 것이라고 하면 너무 이상한 말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십대의 호기로 용감할 수 있었던 나는 이 재판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1심 무죄를 받던 날도, 2심 무죄를 받던 날도, 그리고 대법원에서까지 무죄를 확정 받던 그날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축하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썩소를 날리는가 하면 이게 축하할 일이냐 따지기도 했으니. 딱 한번. 1심 결심공판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말들을 모조리 다 했던 그 날, 그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A4 용지를 들고 읽어내려가던 내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고 있었지만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덤덤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목소리엔 힘이 들어갔다. 한글자 한글자 똑똑히 그 법정에 새겨놓고 싶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꼭 살아서 증명하겠노라.’ 

뻘겋게 달아오른 그 얼굴을  들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박형수 검사를 기억한다.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다’던 그 박형수 검사를.  

최후진술문을 다 읽자 방청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변호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비치던 것을 보았다. 서슬퍼런 최후진술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듯 듣고만 계시던 변호사님과 누구는 울고 누구는 “홍가혜는 무죄다!”라고 소리를 치자 당황한 판사님의 표정도 기억한다. 

최후진술이 끝나고 검사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실형구형을 받는데 두려움은 커녕 실소가 터져 나왔다. 검사는 재판이 끝나면 자리를 정리하고 딱히 나를 피하거나 그렇지 않았는데, 그날은 한참을 검사석에 그냥 앉아있더라. 우린 그를 뒤로하고 법정을 나왔다. 재판이 끝난후 재판내내 그랬던 것처럼, 분명 혼을 낼 것이 뻔했던 양홍석 변호사님께서 법정에서 나와 내게 건넨 말은 생각치도 못한 것이었다.

“홍가혜씨, 변호사 다 됐네.” 

변호사님은 그 날을 기억하실까, 그 날 내게 한 말을 기억하실까. 

그로부터 4년이 흘러 무죄확정을 받았고 또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기어이 박형수 검사와 더불어 무고한 나를 부당한 수사와 체포를 하여 유치장에 쳐 넣어 교도소로까지 가게 만들었던 당시 전남지방경찰청의 경찰관들과 국가를 피고인석에 앉혔다.  
 
이제 내일(2일)이면, 그들의 죗값을 판단 받는다. 국가기관이 완전히 뒤바꿔 놓은 한 개인의 인생을 푼돈으로나마 책임지게 할지 말이다. 보수적으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변호사의 시각으로 “선례가 없는 케이스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다. 질 것을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시작한 소송이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한다. 우리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포기하고 살아갈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법의 원칙이 나와 내 가족들, 세월호 피해자들과 세월호의 진실 곁에 서있던 모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이 책임자들에게 설령 면죄부를 준다고 하더라도. 

1심 결심공판 때 박형수 검사에게 호통치며 했던 이 말을 다시 한번 남기려 한다. 

“반드시, 역사가 심판 할 것입니다.” 

홍가혜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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