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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세금

박 은 하
경향신문 기자

만능양파볶음, 양파캐러멜소스, 양파게티…. 지난 6월 말부터 7월 초 외식사업가 백종원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색적인 양파요리를 소개했다. 양파값 폭락으로 시름하는 농가를 돕기 위해서였다. 당시 양파 도매가격은 1년 전보다 40% 넘게 떨어진 상태였다. 지난해에도 2014년에도 양파가격은 폭락해 농민들은 울상을 지었다. 반면 2013년과 2016년에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문제였다. 양파뿐만 아니다. 정부가 추가수매를 결정하고 전국 곳곳에서 소비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양파가격이 진정되려나 했더니 7월 중순부터는 마늘 가격이 폭락했다. 지난해에는 배추와 무 가격이 폭락한 반면 감자는 급등했다. 마늘, 양파, 무, 배추, 감자. 해마다 돌아가면서 농산물 가격 파동이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의외로 ‘세금’의 문제도 걸려 있다. 

물론 농산물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늘’이다. 기후조건에 따라 풍흉이 결정되기 때문에 농산물 생산량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올해도 지난해보다 양파 재배면적은 13.6% 감소했지만 지난 1∼2월 평균기온이 1년 전보다 3.5도씨 높아진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바람에 양파 생산량은 도리어 늘어나 수급조절은 실패로 돌아갔다. 여기까지는 하늘의 작품이지만 다음부터는 인간의 책임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할 말이 있다. 정부는 수급량을 예측해 농민들이 정부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당해년도 가격만 보고 재배작물을 정한다고 한탄한다. 반면 농민은 정부가 어떤 작물을 심어야 돈 되는지 정확한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농민이 수확한 양파를 도매업자에게 넘기고 나면 이 양파들이 시장에 나올 때까지 정부의 정보도 깜깜이가 되고 만다. 독과점 유통시장의 문제도 걸려 있는 것이다. 거듭되는 가격파동은 이 같은 정보획득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농산물과 관련해선 정보가 없을까. 세정당국은 농민을 보호하고 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광범위한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 광범위한 비과세가 정확한 예측의 걸림돌로 거론된다. 2010년 이후 논·밭·과수원에서 연매출 10억원 이하 작물재배 소득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면제하고 있다. 농지가 전국에 잘게 흩어져 있고 영세농이 대다수라 징세가 번거롭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를 보는 농가를 지원한다는 취지다. 가공하지 않은 농산물은 유통과정에서 부가가치세가 면제된다. 식당 등에서 재료로 사용되는 농산물 역시 의제매입세액공제를 적용받는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농산물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알 수가 없다. 수억원대의 높은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과세 형평성의 문제도 발생한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근무하는 한 연구자는 비과세가 농촌 여성들의 가정 내 지위에까지 영향을 준다고도 설명했다. 납세를 위한 자료를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은 주로 여성들의 일인데 완전히 소외돼 있다는 것이다. 

농산물에 대한 부가가치세 도입은 연쇄 물가상승을 일으킬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실태파악과 조세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소득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지만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 2019년 현재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농업인 비과세의 혜택은 부농들이 보지만 세금에 대한 막연한 반감 때문에 고령의 영세농이 앞장서서 반대하는 역설 앞에서 농정당국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는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정부의 수급예측은 늘 부실할 수밖에 없고, 농민들은 안전한 선택을 하면서 가격이 폭락하면 정부가 수매해주기를 바란다. 가격파동이 벌어지는 작물들을 유심히 생각해보면 배추, 무, 마늘, 양파. 즉 김치재료들이다. 쌀 다음으로 안정된 소득을 올려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작물들인 것이다. 과학적 통계와 행정자료가 없다보니 농민들은 4∼5가지 작물 가운데 당해 가격을 보고 어림잡아 내년도 재배작물을 결정한다. 그러다보니 ‘김치재료’ 멤버들의 가격파동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와중 같은 1차산업인데 어업도 세금을 면제해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올라와 있다. 미국의 독립혁명가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고 했는데, 한국의 농정은 ‘과세 없는 곳에 행정 또한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구나 세금부담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농민들은 주된 수탈의 대상이었다. 혈세(血稅)라는 말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징병제가 도입되면서 병역을 세금에 비유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조선에 수입되면서 ‘피 같은 세금’이라는, 세금 그 자체를 은유하는 말로 바뀌었다. 그만큼 세금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의미이다. 특히 역사시간 ‘삼정의 문란’으로 배우는 조선말 조세제도의 문란은 왕조의 붕괴로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농촌의 소외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자유무역협정을 통해서 수출기업은 시장을 확보하고 도시민들은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하게 됐지만 농민은 폐업지원 대상이 됐다.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어 농민에게 과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백종원의 양파레시피가 농업을 온전히 책임질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농민이 책임지지 않고 정부가 세금을 들여 수매해주기를 바란다고 비판한다. ‘비과세’는 이런 여론 앞에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수탈의 도구였던 세금을 정확한 행정과 복지의 도구로, 나아가 시민의 권리로 인식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민 뿐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해당될 일이다. 1차적으로는 농정당국의 일이겠지만 국세청 등 세정당국이 할 일이 있다. 세금을 부당한 부담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메시지를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감안했다며 세무조사 면제나 비과세 확대 등의 혜택을 쉽게 꺼내는 일들이 그러하다. 이런 메시지들이 당장은 환호받아도 필요한 곳에서 세금을 걷어 필요한 곳에 쓰고자 하는 국가의 역할에 걸림돌로 작동한다. 캄캄한 비과세의 그늘에 조세의 빛을 비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753호(20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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