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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 권리 보호 이전에 부실 과세부터 줄여야
이 진 철 이데일리 정치경제부 기자



"땅을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10섬 받고, 땅 한 마지기 가진 자에게 1섬을 받겠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2012년 개봉해 1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군(이병헌 분)은 대동법에 반대하는 조정 대신들에게 이같은 말을 던진다. 광해군이 대동법 도입에 적극적인 입장이었는지는 역사적으로 논란이 있지만 허구를 가미한 영화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부의 편중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조세제도가 활용되고 ‘공정·공평 과세’ 구현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조세저항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은 납세자 권익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부도덕한 탈세 방지를 위한 정당한 과세권 행사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방하면서도 억울한 세금을 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세행정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TF에서 만든 권고안을 받아들여 세무조사가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납세자는 이의 제기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한층 강화했다.

권리보호 요청은 납세자의 권리 침해에 대한 사전적 구제를 위해 2009년 10월 도입된 제도다.

세무공무원의 재량 남용 등으로 납세자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는 경우 권리보호를 요청하면 납세자보호위원회 심의 또는 납세자보호담당관 시정요구 등을 통해 세무조사를 철회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납세자 권리보호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그동안 유명무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박연차 게이트’의 시발점이 된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같은 정치적 남용 사례도 있었다.

국세청은 납세자보호위원회 심의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세무서·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 위원을 납세자보호담당관 외에는 모두 외부위원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또한 세무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를 요구하는 등 세무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납세자보호위원회 심의대상에 포함시켜 세무조사 절차에 대한 납세자 권익도 강화했다. 납세자는 권리보호 요청 심의과정에서 납세자보호위원회에 출석해 권리침해 사실에 대한 의견 진술도 가능토록 했다.

이같은 제도 강화는 부실한 과세가 이뤄졌다며 조세 불복에 나서는 납세자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납세자 권리구제 기관인 조세심판원을 통한 심판청구 점유율은 2016년 37.7%에서 지난해 44.8%로 높아졌다. 반면 같은기간 과세기관인 국세청을 통한 이의신청은 30.3%에서 28.3%로 심사청구는 4.7%에서 3.8%로 낮아졌다. 심판청구 건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인 반면 이의신청, 심사청구는 감소하고 있다. 이는 국세청의 자기시정 기능 보다는 외부의 권리구제 기능인 심판청구가 더 유리할 것이란 납세자들의 선입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불복 수단을 활용한 이의제기에 납세자의 손을 들어주는 인용율이 높아질수록 부실과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세심판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조세심판 청구 사건(8351건) 가운데 이른바 ‘부자 세금’으로 일컬어지는 상속세 관련 처리대상 수는 151건으로, 이 중 43건(인용률 37.1%)에 대해 인용(납세자 승소) 결정이 내려졌다. 국세청의 과세행정에 대해 납세자가 불복해 조세심판원에서 사실 관계를 따져 보니 10건 중 4건은 ‘잘못된 과세’로 부과했던 세금을 돌려줘야 했다는 의미다. 상속세 심판청구 인용률은 2015년 31.8%, 2016년 39.3%로 매년 10건 중 3∼4건은 납세자의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도 불복을 신청한 10건 중 4건은 ‘무리한 과세’라는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법인세 부과와 관련한 조세심판 청구 건수 957건 중에서 197건(44.1%)이 인용 결정을 받았다. 인용률은 전년보다 5.1%포인트 증가했다.

국세청은 조세심판원이 조세불복 인용결정으로 과세가 취소되면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재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심제로 끝나는 조세심판원의 결정에 항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조세심판원의 상임심판관 1명이 1년 동안 처리한 사건 수는 1125건이었다. 이같은 과도한 업무량은 부실 결정 가능성을 높여 조세심판원 본연의 역할인 납세자 보호 업무 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국세청의 정당한 과세권 행사와 납세자의 억울한 세금 구제는 따로 굴러갈 수 없는 수레바퀴와 같다. 공정·공평과세 실현을 위해서는 부실과세 비중을 사전에 낮추는 과세처분의 정확성·적법성은 물론 조세심판 불복 결정의 전문성·공정성도 조화롭게 확보돼야 할 것이다.


※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727호(20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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