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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의 사람] 다비茶毘 생애

기사승인 2021.12.07  20: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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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圓鏡 스님 입적에

   
▲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스님이 지난 6일 입적했다. 세수 81세. 법랍 62년. <사진제공=대한불교조계종/뉴시스>

한 생 내내 산 채로 다비를 치렀던 스님이
이승을 떠나는 다비를 치른다. 

삶이 늘 죽음보다 무거웠다. 
숱한 죽음을 잠 속에도 엎고 다녔다. 
찰라가 억겁보다 모진 생애였다.  

불의 현대사를 뼈 마디 마디에 새긴 채 헤쳐 왔던 
삶을 
오늘 다시 불로 소신燒身 공양한다.  

타라, 불꽃이여. 
잉걸 잉걸 타올라라. 

저승에 이르러야 겨우 무죄라서 
거기서 아버지 만나 첫 절 올리고 
남은 자들은 다비 연기가 매워 
둘레둘레 돌아서서 눈을 비빌 터이니. 

한 순간마다, 한 찰라마다 다비였던 생을 태워 
꼭 한 번 사람들 다 보는 마당에 나와
세상 환하도록 불을 붙인다. 

범종소리, 운판소리, 목어소리
귀 먹도록 
살아서 저승이었던 생에 불을 붙여
불꽃 비손을 한다. 
쫓기는 이름 
박병삼朴秉三 이름으로 횃불 한 번 들어올린다. 

아비여, 아비여, 
불꽃이라도 오늘은 맘껏 부를 수 있도록 
운명을 거스르는 외마디로 타올라라. 

도솔천까지 불 심지를 올려
넋 한 점 남김없이 태워
저 극락까지 까마득히 밝혀 다오. 

   
▲ 독립운동가이자 조선공산당 제1의 리더였던 박헌영. 사진은 1946년 4월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공산당 창립 2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박헌영(가운데)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세속인 박병삼은 박헌영의 아들 이름이고 원경은 부처 제자가 된 박병삼의 절집 이름이다. 스님은 박헌영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평생 짊어지고 살았다. 숨어 살았고 쫓기면서 살았고 감시 받고 살았다. 소년적 그는 몇 번인가 아버지를 본 적이 있고, 자란 뒤로는 일생 동안 아버지를 불러보지 못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이름 석 자를 부를 수도 없었다. 냉전과 분단은 그의 삶을 바깥에서 또 안에서 완전히 짓눌렀다. 불의 시대를 건너 그가 떠났다. 저승에서는 아버지를 불러도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으리라.

송기숙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궂긴 소식에 이어 원경 스님이 입적하였다는 부음이 잇달았다. 현대사를 몸에 새긴 어른들이 떠나고 있다. 기록으로 아는 역사와 삶으로 아는 역사는 다르다. 원경 스님은 풍채도 좋았지만 늘 여유가 있었다. 일생을 쫓기면서 살아온 운명 어디에서 여유가 스며나오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나이가 든 뒤 그는 아버지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일에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고 들었다. 그건 그의 아버지의 행적이기 이전에 망실된 역사를 최소한으로라도 복원해내는 일이었다. 냉전과 분단의 차가운 골짜기에서 그는 온기를 품고 한 생을 살아냈다.

서해성 작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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