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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총장 국감증인 채택해 진실된 연구윤리 바로 세워야

기사승인 2021.09.22  08: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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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 건학 의미와 담긴 뜻 알게 되면 구성원들 역사에 오점 남기지 말아야

   
▲ 임시정부가 세운 '국립대학' 국민대학교는 ‘해방후 최초의 민족사학’이다. 그러나 이 문구만으로는 국민대학의 역사성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랫동안 국민대학이 임시정부의 ‘대학’으로 출발한 사실을 모르거나, 간과돼 왔다. 국민대학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46년 미군정 시기에 건립됐다. 해방 정국의 격랑에서 탄생한 국민대학은 나라가 없던 처지에서 ‘사립’의 형태를 띠었지만, 여느 ‘사학(私學)’과는 달랐다. 국민대학 건학은 해공(海公)을 비롯한 임시정부 인사들이 환국하기 전인 중경(重慶) 임시정부 시절부터 추진됐다. 임시정부는 일제 패망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독립후 새국가 건설을 위한 건국강령을 마련했고, 교육은 정치·경제와 함께 강령의 골간을 이뤘다. 교육정책에는 대학을 세워 새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원대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 창학된 대학이 ‘국민대학’이다. 사진은 1948년 국민대학의 창성동(경복궁 옆 서촌) 시절 교사(校舍). <사진출처=국민대학교>

‘국민의 대학’ 역할 강조한 해공의 창학정신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1894년 6월 9일~1956년 5월 5일)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으로 삶의 절반을 보냈고, 해방후에는 투철한 헌법주의자로서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런 이유로 해공의 동상이 여의도 국회의사당내에 모셔져 있다. 그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국민의 대학’을 세워야겠다면서 창학한 대학이 오늘날 ‘국민대학교’이다. 국민대학교는 해방후 첫 민간대학으로 올해로 75년 역사를 맞았다.

해방후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한 현자(賢者)의 충정으로 건학된 국민대학교가 또다른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놓여 있다. 다름아닌,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예비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엉터리 박사논문에 대한 연구윤리 검증을 회피해 버리면서 스스로 걷잡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여론은 국민대학교의 ‘논문검증 시효경과 조사불가’라는 발표를 얕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고, 집단이성의 대학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며 개탄했다. 한 국회의원은 이런 국민대의 이번 발표를 국민대 75년 역사를 시궁창에 쳐넣었다고까지 했다.

특히, 여론이 들끓은 데에는 논문검증을 회피한 명분으로 부칙규정의 시효경과를 국민대는 내세웠지만 연구윤리 위반제보 논문은 기한과 관계 없이 조사를 해야 한다고 부칙 상위개념인 본 조항에 명시돼 있는데도 이를 건너뛰고 자의적 해석까지 동원했다는 점이다. 조사착수 2개월여만에 기껏 발표한 검증내용이 꼼수로 드러나자 민교협, 사교련 등 교수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시효경과’ 검증포기는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

이들은 “학위논문은 시효에 따라 폐기되거나 소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학위를 받은 이의 학적 언행과 제도적 자격에 대해 보장을 해주는 자격증이자, 후속연구를 위한 중요한 선행연구다. 특히, 박사학위는 해당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자격증이다. 또 학위를 배출한 대학과 심사교수뿐 아니라 사회의 문화적·학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럼에도 국민대가 유력 대선후보 부인의 학위논문 부정의혹 검증을 ‘5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포기한 일은 대학의 구성원이자 연구자로서 차마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질타했다. 이럴진대 누가 대학이 학문과 교육의 장이라는 것을 믿겠으며 대학의 가치를 인정하겠는가? 그런 중차대한 책임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효만료’를 핑계로 국민대 스스로가 책임을 방기해 버렸다고 일갈했다.

국민대학교 담장 넘어서는 이번 국민대 처사가 반교육적, 반사회적, 반윤리적이라는 규탄과 질타의 목소리가 넘쳐나는데도 학교내에서는 발표 6일이 지나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쥐 죽은 듯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2만여명의 구성원이 살아가는 학문집단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국민대 구성원들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항간에서는 학교측에서 함구령을 내려 구성원들이 아무 표현을 못하는 것이라며 대학 전체를 초등학생 수준으로 낮춰 보는 소문들도 돌았다.

‘국민대 교수회’는 무엇을 위해 조직됐나

그러다 학교측의 조사불가 발표가 1주일이 되던 날 아침, 국민대학교 5명의 교수가 피켓을 들고 정문앞에 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들의 피켓에는 ‘논문의혹 재조사’를 촉구하는 문구가 적혔다. 피켓시위에 나선 한 교수는 “학생들 보기 창피해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는 자괴감에 억눌린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국민대 교수회’라는 조직은 전체 교수가 모두 가입된 국민대 최대 교수조직이지만 회장의 성향이 활동방향을 좌우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H교수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짙은 보수성향의 인물로서 학교의 조사불가 결정에 찬동하면서 각계의 질타가 빗발쳐도 국민대 교수회에서는 의견개진 의사가 전혀 없는 게 회장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 대학 직원노조는 임금협상과 적체된 인사 건 해결을 요구하며 노조 현안문제에만 전념하면서 입뻥긋도 하지 않았다. 총학생회 또한 집단적 의견도출을 이끌어내는데는 학교사회의 관심도나 성향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러고 보니 국민대학교 3주체가 현실과 내용으로는 논문검증 꼼수회피가 발생했다하더라도 나서서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격인 셈이다.

국민대는 논문검증 시효경과라는 이유를 내세워 조사불가 결정을 내린 이후 각계에서 쏟아진 비판과 지적에도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러다보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교육상임위 의원들은 유은혜 교육부장관 상대로 국민대 논문검증 불가에 대해 조치를 물었고, 교육부 시효삭제 훈령이 발동된 상황에서 국민대의 검증시효 적용은 적절하지 않다며 검증 계획서를 받겠다고 유 장관은 밝혔다.

국정감사에서 ‘검증회피’ 낱낱이 밝혀야

교육부가 논문검증 계획서를 받겠다는 것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자 한다. 10월 1일부터 교육부부터 시작하는 국정감사에 국민대 총장과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장 2인을 증인채택해 검증계획에 주로 초점이 맞춰질 교육부와 달리 조사착수 2개월여동안 논의한 결과가 엄연히 본 조항에서 연구부정행위 제보에 대해서는 시효와 관계없이 조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하위 규정인 부칙을 적용해 ‘논문시효 경과 검증 조사불가’라는 연구윤리위원회 최종의견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그 논의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반드시 관계자 증언이 필요하다.(*김건희 씨 국감 증인채택은 문체관광위 소속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 신청)

대학의 사명은 ‘연구’와 ‘교육’이다. 굳이 앞에 붙어 있지 않지만 ‘진실된’이라는 수식어가 괄호로 숨어 있다. 연구윤리와 관련해서 시기와 관계없이 언제든지 논문은 검증해야 하는 이유는 석·박사 학위논문은 국회도서관에 항시 공개돼 있고, 논문이 한 번 쓰이면 다른 후속 논문을 쓸 때 또다른 사람들이 인용하게 된다. 한 논문을 인용하고, 그 논문을 가지고 이어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학위논문은 연구 전체 차원에서 공적인 자원이며, 따라서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부당한 논문은 연구윤리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학문발전이나 연구 생태계를 위해서도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몇 년 전 논문은 되고, 몇 년 후 논문은 검증 안 해도 되는 자의적 해석에 기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부정을 막기 위함이 교육부가 2011년에 훈령을 개정한 이유다.

   
▲ 이 당시 주목할 것은 동아일보가 국민대학기성회의 발족을 ‘국립대학설립준비’라고 보도한 사실이다. ‘국립대학’이라고 한 보도는 임시정부에서 국민대학을 건학한다는 당시 취지를 알고, 국립대학이라고 보도한 것이었다. 해공이 환국 직후 국민대학 건립을 추진해 갔던 것은 임시정부 교육정책을 실행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국민대학 건학은 1946년 1월 초 백범의 숙소인 경교장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동년 3월 국민대학설립기성회 발족을 통해 구체화됐다. 설립기성회 진용도 임시정부 지도자들로 구성됐다. 고문에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 명예회장에는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 회장에는 내무부장 신익희가 선임되면서, 임시정부 주석단이 국민대학기성회를 맡고 나섰다. 그리고 미군정이 조선총독부의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소위 ‘국립대학’을 세우려 하자, 임시정부 인사들은 5월 18일 설립기성회의 발족 사실을 언론지상에 널리 알리며, 건학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해공 건학이념, ‘최고교육을 위한 학문연구’ 따라야

75년 전 해공 선생은 국민대학교를 창학하면서 3가지 건학이념을 내세웠다. 그중 하나가 ‘대학 본연임무는 아카데미즘(학문연구)’이다. 국민대학교 측은 여기서 해공 선생이 주창한 아카데미즘은 학술의 심오한 연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최고 교육의 보편화'를 통해 건전한 정신과 이상을 배양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해설까지 달아놨다.

국민대학교는 설립자의 건학이념을 존중해야 할 책무가 따른다. 또한, 아무리 물질과 황금이 정신세계 노략질을 대놓고 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대학이 지켜내야 할 것이 있다. ’진리‘, ’자유‘, ’정의‘라는 금문자이다. 대학이 이것을 지켜내지 않으려 한다거나, 지킬 힘이 없다면 학교의 문을 닫는 편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깝고, 정의에 편에 서는 한 방법이다. 국민대학교는 왜 75년을 이어 왔고, 무엇을 도출하기 위해 오늘도 교수는 강의를 하고, 학생은 수업에 열중하는지를 엄중히 돌이켜 볼 때다.

※ 이 기사는 Usline(유스라인, http://www.usline.kr)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박병수 <유스라인>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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