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비탈 빈 집들 사이에서
방범등 혼자 명절을 쇤다.
지붕 위에 지붕을 얹은 듯
켜켜로 쌓인 동네.
주인 없는 달빛이
굽은 골목을 하릴없이 긴 송편 꼴로 잘라내고 있다.
허름한 담장 따라 꺾어돌면 잠시 세월을 의탁하던 사글세방이었다.
무너진 대문 위
고양이 한 마리가 함석을 도려낸 자취인 양 움직이지 않을 뿐
재개발지구 추석에는 도깨비도 살지 않는다.
흔하디 흔한 귀신도 없다.
묵은 서까래가 달빛이 무거워 이따금 내려앉는 소리 좇아가면
반질거리는 시멘트 골목이 비틀대면서 오르고 내리느라
취한 나날을 흉내내고
집들은 방범등 불빛 뒤로 돌아앉아
인왕산을 향해 낮게 엎디어 있다.
세상 모든 게 가난해도
별빛은 인색하지 않던 동네.
달빛도 방범등 불빛도 닿질 않는 자리
쓰러진 화분에서 비스듬히 살아남은 옥잠화 향기 진하다.
거기가 명절이다.
서해성 작가
서해성 작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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