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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탄핵 반대했다” 한마디로 감출 수 없는 이낙연 행보들

기사승인 2021.07.23  15: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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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저격수 시절’ 잊었나…정치인의 역사는 말과 이력으로 완성돼

“아마 권력을 따라가는 친문은 이낙연 후보에게 몰릴지 몰라도 가치를 따라가는 친문은 거리를 둘 거라고 저는 보고요. 또 이낙연 후보께서 지금 상승세를 타시기는 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총리 때 이렇게 총리를 3년 최장수 총리를 했는데 그렇게 큰 성과를 낸 것 같지는 않고요. 

또 당대표 할 때는 180석을 저희들이 얻었는데 언론개혁이나 검찰개혁이 제대로 의지가 많이 부족했던 느낌이었고 또 올 1월에는 전직 대통령 사면 발언을 해서 민주당 지지율을 다 날려버렸고 결국 보궐선거에 참패를 했지 않습니까? 또 본인께서 선거에 지면 책임지신다고 하셔서 나는 안 나올 줄 알았습니다.”

22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이낙연 후보를 겨냥해 날린 직격탄이다. 김 후보는 진행자가 “안 나오실 줄 알았는데 나오셨다”고 재차 확인하자 “나오셨더라고요”라며 “진정한 친문들이라면 험난한 길을 피하고 개혁을 외면한 이낙연 후보에게 가지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확인사살을 하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민주당 대선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이렇듯 개혁 대 반개혁 프레임이 짙어지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 또한 이러한 개혁 대 반개혁 프레임을 두고 여권 핵심 지지층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가운데 불거진 것이 바로 ‘적통’ 논란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더 참여정부의, 문재인 정부의 개혁 노선을, 민주당의 개혁 노선을 잇는 적임자인가 하는 정체성 경쟁이 한창인 것이다. 그로부터 불거진 것이 바로 이낙연 후보의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인 셈이다. 

누가 먼저냐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일부 언론이 ‘난타전’이란 표현을 쓴 것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를 제외하고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 탄핵’에서 자유로운 인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답은 쉽게 나온다.   

이에 대해 이낙연 후보는 최근 KBS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에)반대했다”고 밝힌 반면 경쟁 후보인 이재명 지사도 최근 매체 인터뷰에서 “제가 봤을 땐 (이 전 대표가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며 맞불을 놨다. 그러자, 22일 이낙연 캠프가 반박을 내놨다. 스스로 의아함을 자아내는 반격이었다.  

소모적인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 관건은 

“이재명 후보 캠프는 지지율에서 상당히 이기고 있을 때는 원팀을 강조하다가 이낙연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노무현 대통령님까지 거론하면서 네거티브로 돌변한 것은 국민들 눈에 대단히 나쁘게 비춰질 것입니다.” (22일 최인호 이낙연 캠프 상황본부장)

민주당 예비경선 토론회를 지켜본 유권자들은 알 것이다. 어떤 후보가 네거티브를 선점했는지, 네거티브에 올인했는지 말이다. 그것조차 민주당 대선경선 선거인단이, 경선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이 판단할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날 이낙연 캠프 오영훈 수석대변인이 내놓은 이러한 반론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은’) 이낙연을 초대 총리로 선택한 문재인 대통령까지 모욕한 것.”

참여정부를 잇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장수 총리였으니, 노무현 탄핵 찬반 논란 자체가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한 것이라는 논리, 신박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이날 YTN <뉴스가 있는 저녁> 등 다수 매체가 2004년 노무현 탄핵안 통과 당시 국회 영상을 공개하며 진위 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핵심은 이낙연 후보의 거짓말 여부일 터이다. ‘노무현 탄핵’ 당시 반대표는 단 2표였다. 무기명 투표였기에 2004년 당시도 ‘반대 2인’이 누구인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추측만 난무할 뿐이었고, 지금까지 그 2인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2004년 당시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에서 최근 “반대했다”고 분명히 밝힌 이 후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찬반 여부가 진짜 핵심일까. 당시 추미애 후보의 행보가 덩달아 주목받은 것도 그래서다.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던 추 후보는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당론을 지키기 위해 찬성표를 던졌고 이후 유명한 삼보일배로 국민들에게 사죄를 한 바 있다. 찬반 여부 보다 노무현 탄핵안 국회 통과 이후 어떤 행보를 걸었는지가 ‘적통’ 논란의 핵심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인 이 후보의 실제 행보는 어땠을까. 

노무현 저격수 시절 이낙연의 일관성

   
▲ <이미지 출처=월간조선 홈페이지 캡처>

“그래서 참여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친(親)서민적 정부가 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군사독재정권보다 더 빈부격차를 키운 반(反)서민적 정권이 돼버렸습니다. 서민들은 노무현정부에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처음부터 사회통합에 역행했습니다. 출범초기에 정치적 지지세력을 분열시키고 과거의 동지들을 야박하게 짓눌렀습니다. 정부 책임자들이 사회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국민통합을 이루지 않고, 도리어 편을 갈랐습니다. 대통령이 전선(戰線)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돌파하려고 시도하곤 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국가 발전을 향한 국민의 정열과 자원마저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개혁을 말해도 이제는 사회의 열정과 동참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기대를 배반 당한 국민들이 이제 심드렁해졌기 때문입니다. 삶이 무너져 내리는 터에 빛 좋은 구호가 감흥을 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개혁정부 3년의 비극적 결산입니다. 이것이 참여정부의 더 큰 실패일지도 모릅니다.” (2006년 2월 22일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 국회 연설 중 일부)

한나라당 대표 국회 연설이 아니다. 바로 열린민주당과 분당 사태를 겪은 이후 ‘꼬마 민주당’으로 불리던 이낙연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의 독한 참여정부 비판이었다. 당시 이 후보는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를 만들고도 야당이 된 처지”라면서 “그러나 저희들은 감정에 흐르거나 과거에 붙잡혀 있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회자 중인 이 연설문 전체 내용은 독하고 또 독했다. 참여정부는 “낙제수준”이라며 “최대의 실패는 양극화 확대와 사회분열”로 규정했던 이 후보의 참여정부를 향한 칼날이 어디 이 연설뿐이었을까. 

<월간조선>의 지난 2019년 6월호 <‘문재인의 철벽 수비수’ 이낙연은 ‘노무현 저격수’였나?> 기사에 따르면 이 후보는 해당 연설은 물론 2004년 2월 17일과 10월 28일, 11월 16일 국회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보수야당 못지않게 참여정부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 다선 의원의 관록(?)이 발휘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노무현 정신’을 되새기고 ‘적통’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4월 27일, 서울시 서대문구 소재 영화관에서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을 보고 나서 노무현을 회상했다. 그는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것은 ‘희망’이다. ‘노사모’로 대표되는 보통 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자신과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언급했다. 이 총리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변인을 했고, 2004년 ‘노무현 탄핵’ 때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당시 이 총리의 국회 발언을 보면 ‘노무현=희망’이란 등식은 성립하기 쉽지 않다. 당시 새천년민주당(2005년 민주당으로 개칭) 국회의원이자 원내대표였던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과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경제실정 ▲사회분열 ▲정부의 무능과 미숙 ▲외교 고립 등을 언급하며 전방위적인 비판을 가했다.

내용만 보면 사실상 ‘노무현 저격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권 입장에서는 ‘정치적 동지’였고 정권 창출에 이바지한 바 있는 이낙연 의원의 비판이 더 뼈아팠을 것으로 짐작된다.” (월간조선 2019년 6월호 <‘문재인의 철벽 수비수’ 이낙연은 ‘노무현 저격수’였나?> 중에서)

이 뿐만이 아니었다. 민주당이 통합되기 전까지 이 전 대표는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 비판에 앞장섰다. ‘노무현 저격수’란 월간조선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또 이 전 대표는 지난 2009년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상임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민주당 출신으로 4대강 예산 통과를 묵인해 당내에서조차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이던 2016년 10월엔 궁지에 몰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론을 제안하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힌 뒤 “의도가 무엇이든, 방향이 옳다고 봅니다. 국가 미래를 생각하며 국회가 대승적으로 지혜를 모아주길 바랍니다”고 화답한 바 있다.   

   
▲ <이미지 출처=아이뉴스24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남도일보 홈페이지 캡처>

참여정부를 ‘분열의 정부’로 몰았던 이낙연 후보의 ‘통합론’이, 올초 뜬금없는 사면론을 언급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칼자루를 넘겼던 이 후보의 소신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다른 의미로 ‘정치인 이낙연’의 일관성이 엿보이기도 하고.  

‘노무현 탄핵’ 찬반이 중요치 않다고 한 건 이래서다. 단지 “반대했다” 한 마디로 감출 수 없는 것이 바로 말과 이력으로 완성되는 정치인의 역사다. 이처럼 하나둘 까발려지는 이 후보의 ‘노무현 저격수’란 과거에 대해, 차기 정부 또한 참여정부의, 문재인 정부의 개혁 노선을 계승하기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적어도 ‘이낙연이 노무현의 적통’이란 이낙연 캠프 주장은 ‘거짓말’이라 판단할 공산이 크지 않을까.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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