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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학도의용군 취재, 공동체적 가치 포기하면 안돼”

기사승인 2021.06.14  16: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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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나신하 KBS 기자

오는 25일이면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71주년이 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일본에서 공부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이 있었다. 이들은 왜 타국에서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데 참여했을까? 

지난 6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제일 학도 의용군 포화 속으로’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장진호 전투와 백마고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재일학도의용군들 한 희생정신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았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시사기획 창> ‘제일 학도 의용군 포화 속으로’ 편을 취재한 나신하 기자를 지난 8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이미지 출처=KBS '시사기획창' 화면 캡처>

“여러 유공자분들에 대한 예우와 실질적 지원 더욱 강화해야” 

- 지난 6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창> ‘제일 학도 의용군 포화 속으로’편을 취재하셨잖아요. 방송을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좀 더 일찍 제일 학도 의용군 관련 프로그램을 진작 만들었어야 된다는 아쉬움, 순국선열 분들 한국전쟁 당시 희생되신 분들에 대한 죄송함 등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 지금까지 제일 학도 의용군에 대한 게 없었나요?

“없었던 건 아니지만 너무 적었다고 말씀드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처음 제일 학도 의용군 관련된 주제는 처음 다룬 것이고요. 제가 사전학습을 하는 단계에서 검색도 했는데,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적었다고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일 학도 의용군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다른 주제도 마찬가지겠지만 100% 모르는 경우는 없겠지요. 과거 역사에서 많은 이슈를 보고 듣지만 깊이 있게 알지 못하죠. 그리고 다른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근데 저 같은 경우는 그냥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사안인데 제가 일본에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일본에 계신 분들 얘기를 전해 듣고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고 642분이 참전하셔서 135분이 전사하셨고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되셨나 보니까 생존자 나이가 90 이상이니 대부분 돌아가셨죠. 프로그램 방송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 세 분, 일본에 세 분인데 제가 일본에 있을 때는 다섯 분 정도 생존해 계셨던 거로 기억합니다. 해가 갈수록 생존하신 분이 줄어들고 언젠가는 생존하신 분들이 안 계시겠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제가 이해하고 제가 느꼈던 것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처음 이 문제를 아셨을 땐 어떠셨어요?

“일본에 계신 교포분들이 참전했다는 얘기들은 전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고 막연하게 알고 계셨던 분도 계시겠죠. ‘아 그렇구나’ 처음에 생각했는데 왜 일본에서 멀리 죽을지도 모르고 실제로 많은 분이 전사하신 전쟁터로 자원은 하셨으니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래서 학습을 하게 됐어요. 또 생존해 계신 분들 말씀을 듣고 전쟁사라든지 서적에 단편적으로 나와 있던 분들의 얘기를 종합해 공부하면서 이분들이 그냥 흘러 지나가는 역사의 한 부분으로 묻히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소중한 기억이고 역사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라든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이 정도까지 우리가 살 게 된 바탕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무심코 흘려들었던 소중한 분들의 피와 희생이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 제일 학도 의용군 분들만 희생 된 게 아니겠죠. 굉장히 많은 분들이 희생되어 있죠. 이런 분들의 존재를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죠.”

- 일본에서 학도병만 왔는지 아니면 윗세대도 왔나요?

“정확하게 신분이 학생 몇 명 그리고 일반 직장인 몇 명 또 자영업자 몇 명이라고 구체적으로 통계가 나와 있지는 않아요. 그러나 생존하신 분들이나 연구서들에 나와 있는 기록들을 보면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리고 주도하신 분들은 분명 학생들이었다는 정도로는 저희가 확인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전 참전을 주도하고 여론을 일으켰던 분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학교에 다니시는 분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기록들은 저희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 신분이 아니어도 저희가 학도라 그러니까 ‘이거 뭐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젊은 20대 청년들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이해를 하시는 게 정확할 거 같아요.”

   
▲ <이미지 출처=KBS '시사기획창' 화면 캡처>

- 부산 소림사 이야기로 시작하셨는데 왜 그렇게 하셨어요?

“그렇게 시작하는 게 시청자들이 좀 더 쉽게 현안에 다가올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작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제가 구성하는 프로그램 구성 방법이 정답이라든지 모범답안은 아니고요. 부산이 한국전쟁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죠. 영화 <국제시장> 보셨다면 확인하셨겠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피난민을 당시 부산에 계셨던 분들이 보살피고 그 분들을 품었고 그것이 또 한국 현대사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죠. 그래서 그런 얘기들을 좀 보여 주는 것이 굉장히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림사 같은 경우는 중간에도 나오는데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신 분들 200여 명이 상당 기간 여기서 보호를 받고 기거하셨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상징성을 생각해서 그렇게 구성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었겠지요.”

- 주지 스님 인터뷰를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주지 스님이 당시 16살이라서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시죠. 근데 스님께서 많이 말씀하신 내용 제가 프로그램에서 모든 걸 다 담지 못했지만 한국전쟁 당시 참상들 그리고 소림사 사찰에서 사찰 문을 열어서 피난민분들을 어떻게 보살폈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 제일 학도 의용군이 일본에서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나 봐요?

“1진부터 5진까지 있는데 1진 같은 경우는 3, 4일 정도 가장 기초적인 군사훈련만 받고 한국전쟁에 투입됐고 뒤로 갈수록 제대로 된 훈련을 받게 되는 데 5차까지 가면 신병교육에 준하는 훈련을 받은 거로 나와요. 그리고 1, 2, 3차와 5차가 미군 부대 배속이 됐었고 4차가 부산으로 와서 신병 교육을 받고 군에 편입되거든요. 뒤로 갈수록 제대로 된 군사훈련이죠. 전투원에 준하는 훈련을 받은 거로 나오는데 그래서 그런가요. 나중에 들어오신 분의 인명 손실이 컸습니다. 아마 4차 훈련을 받으신 분이 국군 9사단에 포함되어 백마고지 전투에서 많이 희생되신 거로 추정되고 있고요. 5차에 계신 분들은 아예 그냥 원산으로 투입된 거로 기록에 나오거든요.

그러면 1, 2차, 3차에 계신 분들은 쉽게 군 생활을 했냐면 그건 아니고요. 이분들 상당수가 프로그램에서 나오던데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전투 현장에 자원하세요. 그리고 상당수가 국군에 다시 들어가서 입영을 두 번 한 셈이죠. 군번 없이 의용군으로 한번 그리고 국군으로 정식 포함되어서 다시 전장으로 가고 그래서 처음에 훈련을 받았냐 안 받았냐 보다는 이분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한국 전쟁에 왔었고 얼마나 많이 자신을 희생했는지는 그분들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초창기에 계신 분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록들은 나옵니다.”

   
▲ <이미지 출처=KBS '시사기획창' 화면 캡처>

- 1968년에 정부가 제일 학도 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했다는 내용이 나오던데 왜 그때 한 거죠?

“제가 그때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 왜 그때서야 그렇게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죠. 하지만 추정이 가능하겠죠. 전후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한국전쟁에 참전 안 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분들에 대해서 정부나 사회가 절실하게 관심을 갖지 못한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 경제 개발 하는 문제 이런저런 문제에 너무 촉박하다 보니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예우라든가 대우라든가 이분들에 대한 지원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한 건 아닌가 추정이 가능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정치적인 해석은 있어요. 일부러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그건 역사학자들이 구체적 기록을 가지고 검증해 나가야 될 사안인데 확실한 거는 정부하고 사회가 이분들에 대해서 굉장히 의미 있게 이분들 희생을 기억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거 같아요. 여기서는 저희가 제일 학도 동지회라는 걸 굉장히 강조했는데 이분들 얘기를 왜 강조하냐면 이분들이 모임을 만들어서 끊임없이 노력했죠.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활동도 했고 호소도 했죠. 그분들의 호소나 노력 등이 누적되면서 정부가 움직인 거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 지금은 예우가 되고 있나요?

“제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게 송구스럽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계속 좋아지고 있어요. 각종 지원법도 만들고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자녀분들에 대한 학비 지원도 하는데 그 수준이 만족스럽냐 충분하냐라고 평가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죠. 그건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구체적으로 그 분들한테 어떻게 하고 이걸 제가 논하는 건 바람직한 거 같지도 않고요. 그러나 제가 주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분들뿐만 아니라 국가 유공자분들 전체에 대한 예우 문제는 별도로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좀 심각하게 이게 과연 이 정도로 해도 되는가라는 부분에 대해서요. 제일 학도 의용군분들에 대한 예우가 충분하냐 이런 문제가 아니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요. 여러 가지 유형의 유공자분들이 계시죠. 그러나 이분들에 대한 예우와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정신적인 존경의 수준이 과연 만족스러운 수준인가에서 저는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꾸준히 강화해야 되고 꾸준히 진전 시켜 나가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들의 피‧눈물‧땀‧희생으로 굉장히 많이 누리고 있는 것”

- 제일 학도 의용군 몇 분 인터뷰를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세 분 중에서 한 분은 건강 때문에 어려우셨고 두 분이 인터뷰하셨는데 한 분은 저희가 찾아뵐 때는 밖으로 좀 거동이 활발하신 분은 아니었고 회장님은 90대 중반인데도 건강 하셔셔 건강 관리를 잘 하셨구나 생각했죠. 그리고 숙연하다고 할까요. 죄송하다고 할까요. ‘이분들이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목숨 걸고 지킨 나라니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연로하신 분들이 ‘나 때는 말이야’ 이런 얘기들 많이 하시죠. 그러나 저희가 찾아뵌 두 분은 젊은 사람들, 후세에 대한 질책이나 원망이나 이런 것들이 없으셨어요. ‘젊은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긴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나라를 사랑하고 잘해 나갈 것’이라는 신뢰 같은 것들 그러면 말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사회 어른들이 보여야 할 모습들을 보여 주세요. 요즘 사람들 하는 게 마음에 들겠습니까마는 자꾸 좋은 모습을 보고 격려하고 기대를 갖고 희망을 부여하고 하는 모습들에서 이분들이 왜 일본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는가 하는 부분들을 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으실까요?

“나라를 지킨다는 거 군대에 간다는 거 또는 병역을 이행한다는 것 또는 우리 공동체를 지킨다는 것은 거대 담론이죠. 그런 얘기들을 하면 다들 고리타분해 하죠. 당장 내 것, 내 가족 아니면 내 주변에 있는 것 나의 성취, 나의 욕망, 나의 희망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우리라든가 우리가 소속된 사회, 나라, 공동체 이런 거에 대한 생각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걱정들은 어르신들이 많이 하시죠. 그런 것들은 저도 공감을 하고요. 공동체가 삶의 전부일 순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공동체적인 가치들을 포기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죠. 그리고 또 하나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것들, 좋은 면들, 희망적인 것들, 희망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하나는 학도 의용군 관련된 주제는 아니겠지만 군 관련된 기록들을 제가 굉장히 많이 봤어요. 보시면 느끼셨겠지만 학도 의용군뿐만 아니라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많은 분의 전투라든가 이런 얘기를 비중 있게 다뤘어요. 다룬 이유는 뭐냐면 나종남 교수가 얘기했던 부분들이 있죠. 나라를 군대가 지키는 거지만 군대가 지킬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상황이 되면 국민이 나서는 것이라는 얘기를 공감하며 들었는데 군대라든가 군이라든가 군 복무 중인 젊은이들에 대한 감사함, 소중함 이런 것들을 좀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 <이미지 출처=KBS '시사기획창' 화면 캡처>

- 취재할 때 어려운 건 뭐였어요?

“일단 생존하신 분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정상적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방역을 신경을 써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연로하신 분들을 장시간 붙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짧은 시간에 촬영해야 되는 어려움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전학습과 스터디가 필요했고요. 또 하나는 역사물 비슷한 성격이 있기 때문에 한국 전쟁 관련 책들을 10권 이상 본 거 같아요. 제일 학도 의용군 동지회라든지 아님, 국방부 국사편찬 연구소라든지 여러 회사, 도서관 등에서 오래된 전쟁 관련 기록들을 뒤졌거든요. 한국전쟁 전체에 대한 전쟁의 발발 원인이나 그 영향 같은 부분들이 아니라 전쟁 기간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부분들에 대한 학습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거나 인터넷 두드려 보면 지식 검색해서 나오는 여러 정보들은 잘못된 것들이 상당히 많이 때문에 하나하나 문헌적인 근거를 따져갔어요.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이나 국기기관, 문헌들을 통해 검증해 가는 작업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좀 필요했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좀 어려웠지만 그걸 통해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가 좀 깊어졌다는 측면에서는 참 감사한 취재 시간이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전쟁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 다양할 수 있겠죠.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한 거로 알고 있고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거 같아요. 애국이라든지 나라를 위한 희생이라든가 또는 조국이라든가 이런 얘기를 하면 또 그 얘기냐고 고리타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아마 없지 않으실 겁니다. 근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저희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거든요.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의 배경에는 먼저 살다간 선배님들, 어르신들의 피와 눈물 땀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가 잊어서는 안 될 거 같고요.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그렇다고 지금 다 국가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우라는 말씀은 아닌데 그런 고민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한 삶인가란 생각들을 독자분들이나 아니면 저도 포함해서 후세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미지 출처=KBS '시사기획창' 화면 캡처>

이영광 기자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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