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정상회담 기다렸다”는 황당 해명…<한경> 기자 “오인 보도인데 속상”
“이번 계약은 모더나 백신의 안정적이고 신속한 국내 공급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미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스푸트니크V 백신에 더하여 모더나 백신의 국내 생산도 이루어지면서, 한국이 글로벌 백산 생산 허브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2일(현지시각)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가 모더나와 모더나 백신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한데 대한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이랬다.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백신기업 협력행사에 참석, 삼바 등 대통령 방미 일정에 동행한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한미 양국 간 코로나19 백신 협력 강화를 당부한 바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대한민국의 아시아-태평양 백신 허브화’의 일환으로 한국 바이오 기업들 중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해외에서 생산된 모더나 백신 원액을 국내에서 완제 충전해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23일 SBS는 <8뉴스>를 통해 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와의 인터뷰를 단독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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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SBS 화면 캡처> |
“모더나는 삼성에 기술을 이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과정을 원활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담당 부서가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잠재적으로 모더나 백신 생산 공장을 한국에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와 K-방역의 성과이자 세간의 ‘백신 불안’을 잠재울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우수한 기술력과 정부의 백신 외교, K-방역을 통해 높아진 국격이란 3박자가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더불어 모더나는 이주 초 유럽에서 생산된 백신 물량을 한국에 보내는 동시에 앞서 정부와 계약한 4천만 회 분량을 향후 몇 달 이내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한미정상회담 이후 백신 자체 생산은 물론 오는 11월로 예정된 코로나19 집단 면역 이후 안정적인 백신 조달까지 확보된 상황이다.
‘백신 불안’을 지속적으로 부추겨온 보수야당 및 보수 경제지들의 대응(?)에 눈길이 가는 가운데, 그 중 하나인 <한국경제>가 24일 주목할 만한 ‘사과’를 내놨다. 바로 역대급 ‘오보’라 일컬어졌던 지난 12일자 ‘삼성바이오로직스-화이자 빅딜’ 보도(☞관련기사 : 한경 ‘화이자 오보’ 이어 조선 ‘미국행 백신 관광’ 과장까지)에 대해 11일 만에 공식 사과한 것이다. 우선 하필 한미정상회담 직후 내놓은 사과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경제>가 내놓은 어이없는 변명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르면 8월부터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한다.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기술력과 글로벌 1위 의약품 위탁생산(CMO)업체로 자리매김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양산 능력 간 ‘빅딜’이 이뤄진 결과다.”
한 마디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오보였다. 결과적으로 삼바가 모더나와 손을 잡은 것을 놓고 봤을 때 ‘삼성’을 ‘LG’로 바꿔 버린 치명적인, <한국경제>란 언론사 전체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할 만한 오보였다.
<한국경제>는 당시 1면에 톱보도한 <삼성바이오로직스, 화이자 백신 만든다> 기사 외에도 3면 <삼성-화이자 ‘빅딜’… 한국, 아시아 넘어 ‘글로벌 백신허브’로 급부상>, <갈수록 꼬이는 백신 도입 화이자가 ‘구원투수’ 되나>, <삼성, 화이자와 탄탄한 네트워크…계열사가 전방위 지원> 등 3건의 관련 기사를 줄줄이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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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자 한국경제 1면 <이미지 출처=한국경제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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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나간 지 몇 시간 만에 삼바 측은 이를 공식 부인했다. 화이자도 마찬가지였다. 삼바는 물론 화이자 측에 확인을 거쳤다면 단독은커녕 일반 기사로도 부실하고 부적절한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쳤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국경제>가 1면 톱보도를 포함해 4건이나 줄줄이 기사를 쏟아낼 수 있었던 자신감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해명을 들어 보자.
“한국이 글로벌 제약사의 백신을 위탁생산함으로써 국내 백신 공급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잘못 보도한 것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본지는 이달 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백신업체와 제휴해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그 후 여러 명의 기자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 관계사들에 확인 취재를 했지만 ‘복수의 업체와 다양한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비밀유지협약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에 본지는 관련 정보를 갖고 있는 방역당국으로 취재 방향을 돌렸습니다. 마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지난 10일 브리핑을 통해 ‘(다국적 백신회사의) mRNA 백신 국내 생산과 관련해 국내 제약사와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힌 터였습니다. 취재 막바지에 이 문제에 정통한 유력인사로부터 기업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기업은 화이자이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8월 생산을 목표로 백신용 장비를 반입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설명이 소상하고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무척 높다고 판단해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 정통한 유력인사’의 1인의 말만 믿었다는 얘기다. 해당 업체도 부인하고, 방역당국 역시 확인해 주지 않았음에도 당사자가 아닌 해당 유력인사의 ‘소상하고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무척 높다’고 <한국경제>가 판단한 ‘말’만 믿고 자신만만하게도 어마어마한 오보를 냈다는 설명이 되겠다. 국내 1위 경제지의 팩트 체크 능력이, 기사 검증 시스템이 이 정도다. 이어진 해명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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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한국경제 홈페이지 캡처> |
오보지만 오인 보도가 더 정확하다?
이어 <한국경제>는 사과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본지는 내부 회의를 통해 당장 정정보도를 내기보다는 문재인 대통령 방미를 통해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라며 “그리고 지난 23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제휴 파트너는 모더나로 공식 발표됐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역시 궤변에 가까운 변명으로 보인다. ‘삼성-화이자 빅딜’이 오보였음이 내외적으로 확인됐다면 추가 취재를 들어갔어야 마땅하다. 자신들의 오보를 사실 확인을 통해 정정하지 못할 거라면 오보로 판명된 단독을 대대적으로 기사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당당했다면 해당 기사를 삭제하지 말고 온라인 상에 영원히 박제했어야 옳다.
한미정상회담 일정은 이미 잡혀져 있었고 기업들의 동행 역시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불과 며칠 차이 단독 욕심에 역대급 오보를 낸 언론사가 방미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기다렸다니, 이 자체가 자신들의 괴물 같은 ‘특종욕’을 자백한 꼴 아니겠는가. 그리고, 한미정상회담 직후 <한국경제>는 ‘삼성-모더나’ 관련 기사를 쏟아내는 중이다.
아울러 한미정상회담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던 지난 22일,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부 이모 기자가 본인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이 주장한 이후 장문의 글을 남겼다. 기자 개인의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숱한 오보를 내고도 사과하지 않거나 기사 삭제에 그쳤던 <한국경제> 구성원들이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게 만드는 주장임엔 틀림없었다.
“삼바가 화이자를 생산할 것이라는 보도는 오보였으나 모더나 생산은 사실입니다. 모더나를 화이자로 오인한 보도였던 것이지요.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음모론이 나올 만한 일일까요? 누구보다 속상한 것은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것을 빗맞혀서 대형 오보 소리를 듣게 된 당사자일 것입니다. (정정보도는 적정 시점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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