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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심정 이해하지만”..범인 지목하는 보도가 가리키는 것

기사승인 2021.05.13  14: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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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 전 목격한 젊은 죽음…과도한 언론보도가 남긴 시사점을 곱씹어야 할 이유

   
▲ 서울 한강공원 근처에서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된 의대생 손정민(22)씨 발인식이 지난 5일 오전 8시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렸다. <사진제공=뉴시스>

2004년 가을로 기억한다. 스무 살 청년의 불행한 사고를 목격한 때를. 당시엔 지하철에 스크린도어가 전무했다. 하물며 선로가 지상에 위치한 국철 1호선은 술을 마신 채 철로를 내려다보며 승강장 끝을 난간 삼아 걸터앉은 이들도 종종 눈에 띄던 시절이었고, 심지어 승강장 끝에선 흡연을 하던 이들도 존재했더랬다. 그땐 그랬다. 

1호선 성북역에서 한 대학생이 사고를 당했다. 그해 가을 어느 금요일 밤, 신입생으로 보이는 대학생 둘이 사이좋게 역사 끝 쪽 승강장 한 쪽에 걸터앉았다. 막차 시간이 다가오던 때였다. 

금요일의 대학가 앞이 풍경이 늘 그렇듯, 역사는 거나하게 술을 마신 학생들이 제법 많았고, 두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1호선 용산행은 배차 간격이 평균 20분 정도였고, 그 여유 시간을 감안했는지 둘은 나란히 앉아 담배도 피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듯했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듯한 전형적인 스무 살 대학생의 모습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그들과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다른 과 고 학번 선배라 할 수 있었지만 딱히 ‘위험하다’고 말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배차 간격이 길었던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사고의 위험을 감지할 만큼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으며, 성인인 두 학생이 술을 마셨더라도 어느 정도 분별력은 갖췄으리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안일했다. 땡땡땡땡~. 승차를 기다리며 함께 기다리던 후배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으니 난간에 걸터앉은 학생들이 시야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1호선 열차가 순식간에 들어서더니 이내 멈춰 버렸다. 사고였다. 두 학생 중 왼쪽, 즉 열차가 들어오던 방향에 앉아있던 학생이 차량에 치인 것이다. 

15년 전 어이없게 세상을 떠난 어느 스무 살 청년의 사고

역사는 난장판이 됐다. 승강장 위에 뻗은 학생의 귀와 코에서 피가 솟구쳤다. 술이 덜 깬 친구는 정신이 나간 듯 어쩔 줄 몰라 미동도 없었고, 열차를 기다리다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은 몇몇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등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말 그대로 사고 현장이 펼쳐진 것이다. 

피를 쏟아내는 학생의 머리를 심장보다 위쪽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지금 그대로 놔두는 게 맞다는 등 공허한 말들만 울려 퍼졌다. 혼란이 계속됐다. 보다 못해 직접 119에 신고를 했고, 안내센터에 전화를 걸어 직원을 불렀다. 5분에서 15분 사이 간격으로 역무직 직원과 응급 구조원들이 도착했다. 도착한 구조원들 숫자가 부족해 들것 한 쪽을 같이 들다 학생이 흘린 피가 묻기까지 했다. 

맞다. 짐작하시다시피, 무려 15년도 지난 기억을 길어 올린 이유는 이른바 ‘한강 사망 의대생’ 사건으로 명명된 고 손정민씨 사건 때문이었다. 12일 SBS에 따르면, 손 씨와 친구 A씨가 구입한 술은 막걸리 3병과 청주 2병, 640㎖짜리 소주 2병과 360㎖짜리 소주 2병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면 만취 상태에서 잠들거나 ‘블랙아웃’(소위 필름 끊김 현상)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음주량일 것이다.  

15년 전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하기 위해 열차를 기다렸을 뿐이지만 끝내 친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안타까운 장면을 목격한 학생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또 아들의 황망한 사고 소식을 접한 부모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손씨의 친구 A씨에게 쏠린 언론과 대중의 의구심을 보며 같지만 다른 15년 전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른 이유였다. 

그 당시, 피해 학생은 10분이 넘게 걸려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이틀이 지나서야 한두 군데 언론사에 단신 뉴스가 떴다. 사망 소식이었다. 다음 주, 학교 게시판은 그 신입생의 사망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사고 현장에 같이 있던 친구에게 책임이 없느냐는 질책도 적지 않았다. 

이후 사망한 학생의 학과가 속한 학생회가 학내에 작게나마 빈소를 차리기도 했다. 그 학생회 관계자로부터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왔다. 사망한 학생의 부모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은데 목격자로서 일종의 증언을 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함께 있던 학생은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고, 술을 마신 두 학생의 실수로 벌어진 단순 사고로 보인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후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사망한 학생의 가족들도 사고를 받아들인 듯 했다. 얼마 후, 학교 게시판은 잠잠해졌고 어이없고 안타까운 스무 살 청년의 죽음은 그렇게 잊혀져갔다. 사망한 학생도 학생이고 가족의 슬픔과 상심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겠지만, 이후 살아남은 친구 또한 크나큰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근심이 들곤 했다. 

‘막걸리 3병과 청주 2병, 640㎖짜리 소주 2병과 360㎖짜리 소주 2병’

만취가 될 때까지 친구와 술을 나눠 마시곤 사라진 친구를 찾다 친구 휴대폰을 잘못 집어왔다는 A씨. 사건이 벌어진 지난달 25일 새벽, 만취한데다 고작 20대 초반인 A씨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또 손씨 아버지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는 A씨의 부모 행동 또한 사건 당일 아들의 친구가 실종 혹은 사망하는 황망한 결과를 예측한 것일까.   

의심스런 정황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아들을 잃은 황망함을 호소하는 손씨 아버지의 주장을 가감 없이 받아쓰는 도 넘은 언론 보도와 이를 근거로 한 대중의 관심과 추측이 A씨를 범인으로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 <이미지 출처=SBS 화면 캡처>

손씨 사건 보도가 가리키는 것 

술을 마시자고 먼저 친구를 불러냈다던 A씨를 두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언론 보도가, 대중의 관심이 경찰 수사를 추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과한 것은 과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현직 경찰이 어느 블라인드 게시판에 관내 경찰 전부가 손씨 사건에 매달리고 있을 것이라며,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억울한 사건이 묻힐 수도 있다며, 대중의 과도한 ‘탐정놀이’와 같은 추측과 쏟아지는 언론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을까.   

이와 관련, 지난 10일 경찰 출신인 김복준 전 중앙경찰학교 외래교수가 손씨 사건과 관련한 한 유튜브 방송에서 “욕먹을 각오로 말씀드리는데 손정민 군 아버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의혹이 있으면 경찰과 합의하셔야지 방송 출연하시는 건 경찰을 도와주는 게 아니다”라며 “자식 잃은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제 하실 만큼 하셨다”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12일 염건령 가톨릭대학교 행정대학원 탐정학과 교수 또한  TBS 라디오 '명랑시사 이승원입니다'에 출연, “(고 손정민씨의 정밀 부검 결과로)많이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사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러 가지 낭설에 대한 정리 작업이 진행되지 않을까 한다”며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주로 선정적인 쪽으로, 즉 누가 범인 아니냐 이런 방식으로 몰아가기식의 내용이 나오다 보니 심리적으로 동조가 되셔서 화가 나시거나 폭발하시는 시민들이 많아졌다고 본다(...).  뉴스를 보거나 하는 순간에 아빠의 아픔이나 또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슬픔, 그다음에 젊은 청년이 꽃도 못 피워보고 지금 돌아가신 것인데 그런 것까지 다 동조화가 돼서 관심이 증폭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론보도나 대중의 관심과 별개로 경찰은 엄정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 밝혀내야 할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쏠릴 만큼 의혹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수사 과정을 공개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지금껏 증폭된 의혹과 추측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유족들의 의혹제기를 일소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울러 손씨 사건을 둘러싼 과도한 언론보도 행태가 남긴 시사점들 또한 두고두고 곱씹어야 봐야 할 것이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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