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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언론은 이선호군 죽음엔 이리도 차갑고 무관심한 것일까”

기사승인 2021.05.10  10: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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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선호 관련 청원 도합 10만 돌파…‘한강 사망 의대생’ 관련 보도는 100배?

“5월 8일 현재 입관절차만 진행되었고 17일째 평택 안중 백병원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유지 중입니다. 빈소 안내판에 새로운 사람들 이름이 오르고, 사라지는데 친구 이름만 17일째 그대로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향이 꺼지지 않도록 밤새워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친구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얼른 나와서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제발 제 친구 선호에 대한 관심을 잊지 마시고 힘을 모아주세요.”

지난 8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평택항에서 산재로 사망한 23살 고 이선호군의 친구입니다>란 청원의 결말이다. 해당 청원은 사전 동의 기간임에도 10일 오전 10시 현재 2만6천명이 넘게 동의, 이선호씨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 <이미지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해당 청원에서 청원인은 “하루 평균 7명이, 해마다 2400명 이상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지만, 그게 제 친구 선호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산재 사고가 제 친구까지 죽게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라고 글을 시작한 뒤 사고의 원인 및 회사 및 정부, 관계 기관에 대한 요구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눈길을 끌었다. 

“어쩔 수 없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막을 수 있던 일이었습니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하던 것도 아니고 제 친구는 그저 잔업으로 안전핀이 뽑혀있는 개방형 컨테이너 안에서 쓰레기(나무 합판 조각)를 줍다가 300kg의 차가운 쇳덩이에 깔려 비명도 못 지르고 죽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이어 청원인은 사고 원인으로 ‘무리한 인원 감축’, ‘전반적인 안전관리 미흡’, ‘구조물 노후화’, ‘초동대응 미흡’, ‘정부의 안전관리 감독 부실’ 등 5가지를 꼽았다. 이어 “같은 이유로 사람이 계속해서 죽는데 왜 바뀌지 않는 건가요. 왜 책임자들은 제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나요. 죽음마저 교훈이 될 수 없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는 걸까요”라며 분노한 뒤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전했다. 

1. 원청인 ‘동방’에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합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에서 친구가 죽었습니다. 정부 차원의 입장은 무엇이고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호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 선호가 도대체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 친구 선호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정말 그런 허술한 안전관리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미 예견된 일을 하필 우리 선호가 당한 것은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3. 다시는 선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번 사건이 ‘동방‘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선호가 사고를 당한 현장과 비슷한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평택항뿐만 아니라 모든 항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모든 항만을 전수조사하고 안전관리에 관한 철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버지의 절규, 뒤늦은 언론 보도들 

앞서 지난 7일 <300kg 컨테이너에 깔려 돌아가신 ***군의 안타까운 죽음>이란 청와대 청원도 같은 시각(10일 오전 10시 현재) 9만이 넘게 동의했다. 전날(6일) 해당 청원을 독려하는 글에 이선호씨의 둘째누나라고 밝힌 이가 쓴 장문의 댓글도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았다. 

   
▲ <이미지 출처=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이렇듯 지난 6일 기자회견 이후 이씨의 비극적인 사건에 공감하는 여론과 함께 유족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9일 <경향신문>은 <되풀이된 ‘일터의 죽음’에 유족은 투사가 된다> 기사에서 “9일 경기 평택시 안중읍 안중백병원 장례식장. 지난달 22일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작업 중 사망한 이선호씨(23)의 아버지 이재훈씨(59)가 조문 온 김제남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앞에서 울부짖었다”며 아버지의 절규를 이렇게 전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할 때, 나는 세상이 디비질(뒤집힐) 줄 알았습니다. 산재 사망사고 없앤다고, 비정규직 없앤다고 (했는데) 도대체 뭐하셨습니까. 얼마나 더 죽어야 됩니까. 애들이 일하러 나갔지 죽으러 나갔습니까….”

한편 일부 언론은 ‘한강 사망 의대생’ 사건과 비교해 사망한지 2주가 넘어서야 이씨 사망에 주목한 불균형하고 편중된 보도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의대생 죽음도 안타깝지만 노동자 청년의 억울한 죽음도 의대생 사건만큼 10분의 1만이라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의대생에게만 눈길 주지 말고 이런 대학생에게도 눈길 좀 줘라”라는 댓글을 소개한 9일 <이데일리>의 <“한강 의대생도, 평택항 노동자도 청년이다”>가 대표적이었다. 

“해당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날까지 이를 다룬 보도는 단 4건에 불과했다. 반면 서울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22) 씨 관련 기사는 수천 건이 쏟아졌다. 

손 씨가 실종되면서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진 아버지의 절절한 사연에 관심이 쏠렸고, 아버지의 블로그 글이나 인터뷰 내용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화제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두 가지 사례만 놓고 보면 편중된 보도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밖에도 같은 날 <뉴스1>은 <“같은 죽음, 다른 관심”…왜 평택항 대학생은 잊혀져 가나> 기사에서 ‘같은 죽음. 다른 관심. 300㎏ 쇳덩이에 깔려, 눈 감지 못한 청년 노동자’라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트위터 글 등을 소개했다. 

<한국경제> 또한 <한강 의대생 ‘100번’ vs 평택항 알바생 ‘2번’…남다른 관심의 온도>란 기사에서 “9일 네이버 검색어트렌드에서 ‘손정민’과 ‘이선호’를 키워드로 비교(8일 기준)한 결과에 따르면, 손정민씨 키워드 검색량이 100인 데 반해 이선호씨 키워드 검색량은 2.16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왜 우리 언론은 이선호군 죽음에 대해 이리도 차갑고 무관심한 것일까”  

“이 두 대학생의 죽음에 대한 언론의 태도가 너무도 다르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에서, 연일 기사를 써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겨우 몇 언론에서 한 두 번 다뤘을 뿐이다. 물론 손군 사망을 둘러싸고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대중의 관심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리라. 그렇다 해도 왜 우리 언론은 이선호군 죽음에 대해서는 이리도 차갑고 무관심한 것일까. 

이제 일하다 죽는 일은 너무나 흔하고 일상적인 일이라 뉴스거리가 안 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걸 기사로 다루면 어쩔 수 없이 우리 기업들의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로 될 수밖에 없어 가진 자들의 치부가 드러나게 되니 피하는 것일까. 파헤치다 보면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될 지 알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를 드러내는 문제인데도 언론은 그저 하나의 사고로만 다루고 마지못해 정치인의 동정을 따라 몇 줄 써내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여기고 있는가.”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같은 날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최근 두 명의 대학생이 이 세상을 떠났다. 손정민군과 이선호군이 그들이다. 두 분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전제한 뒤 언론을 향해 던진 질문이다. 

맞다. 한 사건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따른 경찰의 철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특히 언론 보도가 집중되면서 네티즌들이 나서서 진상을 파헤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례적인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이선호씨 사건은 기자회견 이후에야 겨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  의원의 의문처럼 “일하다 죽는 일은 너무나 흔하고 일상적인 일이라 뉴스거리가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충분히 가능한 불균형과 편중이 아닐 수 없다. 청년들이, 청년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인 안타깝고도 화가 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역시나 맞다. 여당이 수위를 낮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의 죽음을 담보로 제 배를 채우는 기업들에 철퇴를 내리는 한편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론 이런 의문도 가능할 것 같다. 실제 우리 언론이 고 김용균씨 사건 이후 노동자의 죽음은 흥미(?)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문 말이다. 일각에선 청와대도, 노동계도, 언론까지도 김씨의 사망을 뒤늦게 확인하고 대응 역시 늦었던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온다. 23살 이선호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렇게 본의 아니게 언론을 비롯해 노동환경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난맥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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