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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침뜸 인술가 구당의 삶과 죽음

기사승인 2021.01.16  16: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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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仁> 민중의民衆醫 구당 김남수 선생 가시는 길에

   
▲ 구당 김남수 선생은 침뜸 교육과 무료 봉사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민중 의술 '침뜸'을 누구나 집에서 자가 시술 할 수 있도록 현행 의료법 개정 운동을 펼쳤으나, 한의사 단체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수십건의 송사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침뜸 인술가仁術家 김남수 선생이 구랍 27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그의 호는 구당灸堂이다. 뜸집이란 뜻이렸다. 오래도록 그는 낮은 대우를 받아 온 침뜸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했으니 가히 삶은 존중받을 만했다. 

그는 역사에 간간히 보이는 민중의民衆醫였다. 병원과 의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민중의를 만난다는 건 그 자체로 의료체계가 어긋나 있다는 걸 역설한다. 민중의는 단지 민중을 구병救病해서만은 그 이름에 이르지 못한다. 쓰는 약이나 장비가 항간에서 구할 수 있어야 하고, 처방과 처치가 남이 어렵지 않게 따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삶의 뜻이 낮아야 한다. 무료 진료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구당의 뜸과 침은 실로 두루 어질었다. 

그에게 침도 뜸도 맞은 적 없지만 그가 버림 받은 이를 구하고자 쇠바늘을 꼽고 쑥불을 놓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몸 어느 한 구석이 치유되는 듯했다. 그의 음성에는 한 치 권위도 없었고, 투박한 손짓에서는 낮은 자의 겸애가 늘 묻어났다. 민중의는 그저 뛰어난 술사가 아니라 삶에서 지혜가 스며나오는 존재일 터이다. 

1백살에서 다섯 해를 더 살다갔지만 그가 추구한 가치와 실행해온 삶은 다시 1백년이 가더라도 쉬 만나기 어려울 줄 안다. 떠나간 그에게서 한없이 너그러운 남도인의 흙향기를 맞는다. 그는 정녕 아픔으로 버림받은 자들의 고향이었다. 이것이 인仁이다. 

먼 길 가시는 길에 가난한 글로라도 잠시나마 이승을 벗삼으실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또 스스로 읽기 위하여 몇 줄 남긴다. 아픈 시대를 살면서 구당에게 사회적 침뜸을 맞았던 사람이기에. 

-백악인白岳人 삼가.

백악인白岳人 삼가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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