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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청산되지 않으면 늘 현재이자 미래의 문제”

기사승인 2020.08.18  15: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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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538] 홍신영 MBC 기자

지난 15일로 광복 75주년이 지났다. 즉 25년 지나면 일제로 해방된 지 한 세기가 지난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때문에 친일하면 3대가 잘 살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못한다는 말이 종종 한다. 우리는 사실 친일파들 재산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땅이 남아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9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서울 한복판에 일본 헌병 대장 땅이’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스트레이트>에서는 창경궁 옆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조선헌병대 사령관 땅을 취재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2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서울 한복판에 일본 헌병 대장 땅이’ 편을 취재한 홍신영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홍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홍신영 MBC 기자 <사진=이영광 기자>

“공적장부에 10만4천건의 일본식 이름…국가부재 경험”

- 9일 방송된 <스트레이트> ‘서울 한복판에 일본 헌병 대장 땅이’ 편을 취재하셨잖아요. 방송 끝내신 소회가 어때요?

“사실 아이템을 방송하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적산이라는, 아직 끝나지 못한 역사를 다뤄서 그런지 여전히 좀 안타까움과 분노가 남아 있어요. 끝내지 못한 숙제 같은 느낌이... 완전히 지워야지 좀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 거 같아요.”

- 원래 역사 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역사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니까 우리의 어제고, 지금도 오늘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청산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이 있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갈등들이 역사 속의 과오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다는 생각을 늘 해왔거든요. 취재 과정에서도 그런 고민들이 좀 담긴 거 같아요.” 

- 언제까지 일제강점기 이야기만 할 거냐고 하는 사람도 있죠.

“맞아요. 저도 처음에 취재할 때는 ‘아 그거 자투리 땅.. 아무 보잘 것 없으니까 남아도 아무도 상관없는 땅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잔재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 일본 극우 인사들이나 우리나라 극우 논객들이 ‘예전에 우리가 일본에 받은 게 너무 많다. 우리는 그 재산들을 발판 삼아서 경제를 성장시켰고 이만큼 왔다’란 주장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흔적은 지울 수 있는 건데 그것에 대해 모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 일본이 남기고 간 적산 문제잖아요. 어떻게 취재하게 되신 거죠?

“친일파 후손 재산과 관련해 취재하다가 친일파가 갖고 있는 재산을 조선신탁주식회사나 조선총독부, 또는 다른 사람 명의나 법인 명의로 많이 돌려놓은 흔적들을 발견했어요. 그러다 조선신탁주식회사 명의의 재산이 어떻게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 추적해 들어가다 보니 일본인과 일본 법인 명의 땅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남아있는 전체를 다 가지고 얘기를 한번 해 보자고 결정했어요.” 

- 우리가 친일파들 재산 문제는 관심이 있는데 일본인 소유의 땅이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해서 놀랍던데.

“맞아요. 저도 사실 취재 과정에서 굉장히 황당했어요. ‘일본인 명의로 땅이 남아 있으면 얼마나 남아 있겠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많이 남아 있고, 또 우리 등기부 등본 같은 공적 장부에는 10만4천건의 일본식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거예요. 국가의 부재를 경험하는 순간이었어요. 어떤 정부든 간에 지금까지 결국 국가가 방치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현상을 보고 있는 거죠.”

   
   
▲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그럼 지금 소유권 주장이 가능한가요?

“아니에요. 일제가 놓고 간 적산은 무조건 대한민국 소유로 인정하는 국제 조약도 있어요. 명백한 거죠. 그래서 일본은 소유권 주장을 할 순 없어요. 절차도 일본인 명의 재산이 맞으면 그냥 국가가 환수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걸 소홀히 해온 거죠.” 

- 그럼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 거 아닌가요?

“하지만 국가가 손을 놓은 사이에 알짜 땅들은 누군가가 좀 가져갈 수도 있고 일본이 다른 명의로 옮겨 놓았을 수도 있고 그렇게, 지금 75년이 지났잖아요. 그냥 무단점유해서 농사를 짓거나 건물을 짓는 사람들도 있는 게 현실이죠. 취재 과정에서 이런 사람들도 직접 만나봤거든요. 과연 그 사람들에게 잘못을 묻고 처벌하는 게 능사일까.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아 그런 문제를 야기한 국가의 책임이 아닐까.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 그럼 처음에 어디부터 취재를 시작하셨어요?

“노무현 정부 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꾸려서 과거를 청산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재산조사위 사람들이 발견한 게 일본인 명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면서 누가 봐도 일본인 이름 같은 명의의 재산 위주로만 환수를 해오고, 창씨개명 성과 비슷하거나 이름이 3자 이하 일본인 명의 재산은 아예 환수 조사 대상에서도 빠뜨려온 사실을 발견했던 거예요. 그래서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에 살았던 일본인 관련 자료를 다 끌어 모았는데 그게 한 110만건에 달했어요. 그걸로 이름만 넣으면 일본인인지 알 수 있는 검색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게 개발만 되고 활용된 사실이 없는 거예요. 거기에서부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취재를 시작했어요. 

시민 혈세도 1억6천만원이나 투입된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산조사위가 해산되면서 프로그램은 그대로 사장 됐더라고요. 현재까지요. 당시 재산조사위 위원들을 만났는데 새로운 정부에 프로그램 만이라도 이관해 활용해 달라고 사정했는데 다 거부했다고 하더라고요. 의지가 없었던 거죠. 방송에 나간 이명박 대통령의 삼일절 연설에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 잡힐 수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잖아요. 잔재 청산이 발목을 잡는 과거의 일인지 반문하고 싶어요.” 

   
   
▲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지금은 아예 없나요?

“그때 만들어진 검색 프로그램은 사장 됐고요. 프로그램에 입력된 110만 건의 일본인 관련 자료는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져서 보관만 하고 있어요. 그게 책자로 82권에 달해요.” 

- 현재 땅을 소유한 일본인은 일본 이름이 있는데 3자짜리 이름이 또 있잖아요. 한국식으로 바꾼 건가요?

“그 사람들이 토지대장이나 등기부 등본 할 때는 한자를 그대로 써요. 예를 들어서 전전승이라고 등기부 등본에 나와 있어요. 그래서 공적 장부만 가지고는 일본인이지, 우리나라 사람인지 바로 판별하기가 어려워요. 단순히 공적 장부를 근거로 한 조사로는 한계가 있는 점이 바로 이런 점이요. 재산조사위가 해산되고 한국자산관리공사가 하다 8년전부터 조달청이 넘겨받아 하는데,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이런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거죠. 조달청이 이런 일을 하는 기관은 아니잖아요?” 

- 그럼 마에다 노보루가 한자로 전전승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그래서 전문가와 역사적인 관심이 필요한 거예요. 사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놓칠 수 있지만, 역사학자들이 110만 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색 프로그램에 한 번만 돌려봐도 전전승이 마에다 노보루란 증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 프로그램이었어요.” 

- 공부하는 건 어땠어요?

“일본인에 대한 증거를 찾는 게 비전문가인 저에게도 너무 힘든 과정이었어요. 도움을 주신 역사학자들을 무척 귀찮게 해드렸죠. 사료를 찾아도 일본어랑 한자로 섞여 있어서 정확히 해석이 안 되니까 밤이고 낮이고 ‘한 번만 봐 달라’나 ‘여기 한 번만 같이 가달라’ 부탁하면서 한명, 한명 어렵게 찾아낸 거예요. 특히 조미은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 책임위원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줬어요. 재산조사위 위원이었거든요. 한시적인 활동에 대한 학자로서의 아쉬움이 남아 있어서 의지와 사명감을 갖고 참여해 줬어요.”

“‘친일파 이해승 재산 환수 취소’ 2심 재판장, ‘사법농단’ 박병대” 

- 창경궁 담벼락에 4.1㎡의 땅이 1920년 조선 헌병대 사령관인 마에다 노보루의 것이잖아요. 처음 아셨을 때 어땠어요?

“분노했죠. 동행한 역사학자가 지금은 담벼락 아래 작은 땅이 이 사람의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이 일대가 다 이 사람 땅이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마에다 노보루는 항일운동 당시 조선 헌병대 사령관으로 독립운동가 탄압을 가장 일선에서 하던 우두머리였어요. 지금도 우리 궁 담벼락 바로 아래 그 사람 이름이 남아 있는 거잖아요.” 

- 조달청이 친일 재산 환수 사업 이관 받았다는 내용도 나오던데 조달청은 전혀 상관없지 않나요?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일을 떠넘기듯이 조달청이 국유재산 환수라는 업무를 지금까지 맡아서 지금 8년째 하고 있죠.”

- 전문가가 해야지 않나요?

“이번에 조달청 담당자 인터뷰하는데 담당자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이런 거는 정부가 전문기관을 설치해서 해야 될 것 같다고요. 그게 담당 공무원의 솔직한 심경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비효율적인 상황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생각해요.”

- 구로다 가쓰히로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는 SK그룹이 일제강점기 일본인 회사였던 선경에서 유래한 거라고 주장하잖아요. 사실인가요?

“SK는 일제 강점기 때 우리 기업과 일본 회사가 합쳐진 한일합작 회사였다고 해요. 그런 기업이 SK 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많았던 상황이었고요. 구로다 가쓰히로가 쓴 글의 요지는 SK의 모체가 일본 회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런 일본이 놓고 간 회사를 발판삼아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내용이거든요. 합작 회사를 교묘하게 일본 회사로 바꿔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건 역사 왜곡이죠. 그런데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은 국내에서도 적지 않아요. 일단 한일 청구권과 관련해 극우 논객 중에는 ‘이미 해방 직후의 일본이 남기고 간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 이상 일본에 받을게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주장을 황당하다고 분개하면서 전국에 일본인 명의 재산을 그대로 둔다는 건 앞뒤 가 좀 맞지 않는 얘기 아닐까요.” 

- 친일파인 이해승의 재산 환수 못 하는 것도 한심한 거 같던데.

“굉장히 황당한 일이죠. 이해승은 국가가 환수 조치하는 친일파 후손 재산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굉장한 재산을 갖고 있었던 부호였고, 노무현 정부 당시 재산조사위의 친일파 환수 재산의 대표적인 사례였어요. 국가가 환수조치를 내리자 후손들이 곧바로 환수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1심 법원은 국가의 손을 들어줬죠. 친일파니까, 친일 재산은 국가 환수가 맞다는 아주 간단한 판결이었어요.

그런데 2심에서 갑자기 ‘한일합병의 공로로 작위를 받은 자’를 친일파라고 보는 조항을 근거로 이해승 후손들은 한일합병 공로로 작위를 받은 게 아니라 당시 왕족이라서 그냥 작위를 받은 거‘라는 논리를 주장해요. 그리고 2심 재판부가 그게 맞다고 후손들의 손을 들어줘요. 사실 작위를 받은 걸로 끝난 게 아니라 이해승의 친일 행적은 켜켜이 다 기록이 돼 있는데 말이죠. 이걸 또 대법원은 심리도 안 하고 심리불속행으로 그대로 재판을 끝내요. 이런 판결을 내린 2심 판사가 누굴까. 찾아보니 지금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더라고요. 그 사실에도 놀랐죠. 1심과 2심이 전혀 다른 법리해석이 나왔다면 적어도 재판을 열어 들여다봐야 되는데, 대법원도 그걸 안 한 거죠.” 

   
   
▲ <이미지 출처=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 뭔가 의도가 있을 거라고 보세요?

“그 부분을 더 파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재판이 끝나고 논란이 일자 국회가 나서요. 이해승 재산만큼은 우리가 환수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법 개정안이 바로 발의가 돼요. 대표 발의자가 김을동 전 의원이었죠. 그런데 심의 과정에서 원래 개정안에 없던 부칙 조항이 생겨요. ‘확정판결을 받은 판결에 대해서는 이 법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이해승 재산 환수를 위한다는 취지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요. 국회의원들은 ‘그냥 법만 개정하면 우리는 할 일을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식이에요. 결국 개정안이 통과되고 가장 수혜를 입은 게 이해승 후손이에요. 이해승 환수 특별법이 이해승 면죄부법이 되버린 거죠.”

- 국회의원이 내용은 봐야 하잖아요.

“대표 발의한 김을동 전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에 이 사실을 알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것도 황당한 거죠. 대표 발의한 의원이 법이 어떻게 통과되는지 살펴야 하잖아요.” 

- 진짜 몰랐을까요, 아님, 외면했을까요?

“김을동 전 의원은 정말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자기가 발의한 법이라면 적어도 마지막 표결할 때는 법안이 처음 발의한 취지대로 잘 통과되는지 체크를 했어야 하죠. 당시 김을동 전 의원은 법제사법위 위원은 아니었어요.” 

- 취재했지만 방송에 못 내보낸 게 있을까요?

“40분짜리 방송을 준비했다가 내부 편성 사정으로 인해 절반 정도로 축소가 돼 나갔어요. 이 부칙 조항이 어떻게 생겼는지 과정을 좀 더 깊이 있게 취재해 보도하고 싶었고, 적산과 관련해서도 단순히 DB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은 문제뿐 만 아니라 일제 잔재 청산을 방해하려는 세력이나 사람이 누구인지 좀 더 추적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요.

친일과 적산의 문제는 지금도 소환돼 역사 왜곡의 도구로 쓰이는, 살아있는 이슈라고 생각을 이번 취재로 더 분명히 하게 됐어요. 당장 언제라고 시점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이런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는 이상 2탄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 에피소드가 있을 거 같아요.

“에피소드가 너무 많았죠. 계속 장마였잖아요. 일본인 명의 땅 확인하고 땅 주인인 일본인 행적 쫓는다고 조선팔도를 다닌다고 놀릴 정도로 매일 우비를 챙겨 가지고 전국을 돌아 다녔어요.”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이번 방송을 일본 사람들이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 역시 지금도 한국에는 일본 사람들 이름이 저렇게나 많이 전국에 남아있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청산하지 않은 잔재는 과거의 문제이면서 오늘의 문제이고, 미래의 문제라는 걸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일제, 친일하면 ‘또 수십년전 얘기냐’라는 얘기를 들을까 봐 제가 취재하면서 느낀 공분과 분노를 시청자분들도 공감해주실까 걱정이 되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감사하게 너무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어요.”

이영광 기자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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