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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미중전쟁’ 김형석 PD “국제질서, 참 냉혹하더라”

기사승인 2020.08.08  12: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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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534] 김형석 KBS PD

KBS 지난달 9일부터 23일까지 매주 목요일 <다큐 인사이트- 1950 미·중전쟁(이하 미중전쟁)> 3부작이 방송되었다. <미중전쟁>은 한반도 중심이 아닌 미중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해석하고 나아가 70년 전 미·중 격돌을 돌아보며 한반도의 미래를 모색해 보는 다큐멘터리였다. 

<미중전쟁>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해 <미중전쟁>을 연출한 김형석 PD를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김형석 KBS PD <사진=이영광 기자>

“전쟁 반발과 확대 과정에서 오판 작용, 정전협상도 미봉책”

-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다큐인사이트>에서 ‘미중전쟁’ 3부작을 연출하셨는데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1990년에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이라는 되게 유명한 프로그램 하나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걸 기초로 2000년에도 제작이 됐었고 2010년에도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이라는 프로그램 제작했었어요. 그때는 10부작이나 12부작으로 한국 전쟁의 발발부터 해방 분단 전쟁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를 종합적으로 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제가 2000년부터 참여했었습니다.

작년부터 올해가 한국 전쟁 발발 70주년이고 제가 그동안 해오던 것도 있었고 한국전쟁을 다시 본다면 어떻게 보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미중전쟁이라는 컨셉으로 제작을 하게 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제가 한 20년 제작되었던 한국전쟁의 총결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 예전엔 10부작 정도 했는데 이번엔 3부작 해서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요?

“2000년과 2010년엔 저 혼자 한 건 아니고요. 저는 아주 말단 PD였었고 훨씬 더 훌륭한 선배들하고 같이 제작 했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주도적으로 제작을 해서 이번 게 의미는 좀 많이 남죠.” 

- 주도적으로 하셔서 부담이 있지 않았을까 해요.

“훨씬 부담은 컸죠. 근데 한국전쟁의 모든 걸 좀 담아 걸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훨씬 더 국제적인 관계 글로벌 시각에 초점을 맞춰서 봤던 거죠.” 

- 한국 정쟁을 미중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지난 2000년 2010년 프로그램이 제작하면서도 저는 그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한반도에서 벌어졌지만, 굉장히 글로벌한 사건이었고 실제로 UN 16개 국가 참전을 하고 공산 측에서도 소련이나 중국이 참여한 글로벌한 사건이었고 그 어떤 굉장히 크게 영향을 미쳤던 하면 생각을 계속했었어요. 그래서 그런 쪽에 포커싱을 맞춰서 한번 해 보자고 생각을 했었어요.” 

- 한국 전쟁의 주인공은 남북이고 남북을 도운 게 미중이라 미중전쟁이라고 하는 건 무리 같은데.

“이제 한국전쟁이라는 큰 틀은 제가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다른 어떤 측면을 좀 부각을 시킨 거죠. 글로벌 측면에 국제적인 시각을 부여시켰고 실제로 전쟁의 과정을 보면 참전 인원이라든지 전투 기간이라든지 실제 전투 사령부 유엔 측은 유엔군 사령부 공산 측은 중조 연합사령부인가에서 전쟁 지휘했죠. 국제적인 시각을 좀 보여 주기 위해서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처음으로 정말 거의 전면전을 했던 거잖아요. 그 측면을 좀 부각을 시키려고 그랬습니다.” 

- 내레이션을 정용실, 이상협 아나운서가 하셨잖아요. 두 분이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은 크게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분위기죠. 이야기들이 부분이 되더라고요. 국제정치 부분, 공산 측 부분, 어떤 때는 전투 부분, 이런 식으로 좀 얘기들이 크게 전환이 되어 있길래 그런 부분들을 조금이라도 좀 분위기 전환인 거죠.” 

   
▲ <이미지 출처=KBS ‘다큐 인사이트’ 화면 캡처>

- 1, 2, 3부가 시간 순인데 제목을 오판, 충돌, 대치로 하셨던데.

“이게 시간순인데요. 전쟁의 발발과 전쟁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오판이 작용했었다는 거 그리고 실제로 50년 12월에 큰 전투가 있었고 그 이후에 51년 2월 전투를 통해서 핵전쟁이 아닌 이상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제압하기 힘들다고 해서 이제 정전 협상이 시작이 되고 그 정전 협상도 일방이 완전하게 이기지 못한 협상이 때문에 미봉책으로 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큰 시간의 흐름으로 봤습니다.”

- 만약 오판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은 없었을까요?

“그런 역사의 가정을 제가 확인 좀 어렵지만 만약에 오판이 없었다면 양상은 많이 달라졌겠죠.” 

- 영상 발굴 과정은 어떠셨어요?

“작년 말부터 이 프로젝트 기획을 하면서 한국전쟁 관련된 영상뿐만이 아니고 이런 기회가 자주 없으니까 한번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서 한국어 관련된 오래된 영상을 한번 발굴해 보자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가 제일 중요했던 거고 독일 분데스 아카이브라든지 이런데도 연락을 했었고 프랑스 국립 영상기록원 같은 게 있거든요. 그쪽에도 계속 연락을 취해 영상 받고 이런 작업이 작년 말부터 진행되었습니다.

미국 측도 내셔널 아카이브 분만이 아니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미 해병대 자료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대학도서관에 또 굉장히 영상자료가 되게 많고 맥아더 기념관에 영상 자료들이 있고 미육군 대학인가에도 영상자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나 그런 걸 진행하는 과정에 코로나19가 생겨서 중단됐죠.” 

- 좀 더 다르게 해보려고 했나요?

“다르다기보다는 새로운 것들이 있으면 그 새로운 영상을 중심으로 해서 좀 보여 주고 싶었고요. 그리고 특히 장진호 전투 해병대는 대부분 컬러영상이거든요. 아무래도 흑백은 오래됐다는 느낌이 들고 컬러가 현장감 있고 생생하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좀 많이 찾아보려고 했었고 동유럽권 국가들 예를 들면 옛날에 동독과 북한이 관계를 맺었잖아요. 그래서 동독의 자료들 아니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나중에 중립 감독위에 참여한 국가들에게도 관련 자료가 있을 거 같아서 그런 자료는 앞으로 계획 기회 되면 찾아보고 싶어요.” 

- 러시아는 없을까요?

“러시아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제가 2010년에서 가서 좀 보고 그랬는데 굉장히 복잡해요. 뭔가 접근 자체가 좀 힘들고 러시아에서 또 찾아보려고 노력은 2010년도에 좀 했었고 이번에는 여력이 안 돼서 못 했어요.” 

- 얼마나 걸린 거예요?

“이게 작년 말 정도에부터 기관들을 쭉 한번 찾아봤고 값은 내셔널 아카이브 맥아더 기념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이런 걸 찾아봤고 그 뒤로 계속 이제 이메일을 주고받고 연락을 하고 내셔널 아카이브엔 김정아 씨가 갔던 거고요. 독일 측하고 계속 연락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영상들도 좀 받았고요. 전쟁에 관련된 건 아니고 1920년대를 찍은 일제 강점기 시대 때 한반도의 모습을 찍은 짧은 필름인데 그런 부분 새로 발굴했고요. 그래서 그거는 9월 즈음 이번에 모든 영상 중에서 새롭다고 생각되거나 이런 부분들 가지고 프로그램을 한 번 더 할 생각이에요 ” 

- 그런 영상 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저는 영상 보는 걸 옛날부터 좀 좋아한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영상들 보면 되게 신기해요. 숭례문인가 그 서울 시내 모습도 있고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얼굴 흑백이지만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라든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라든지 1920년이고 저는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 <이미지 출처=KBS ‘다큐 인사이트’ 화면 캡처>

- 전쟁 참전 군인 인터뷰도 나오던데 기존영상인가요. 아님, 인터뷰 하신 건가요?

“반 정도는 기존에 있던 영상이고 작년에 미국 쪽 같은 경우에는 취재를 일부 했어요. 그래서 월터베튼 하사 같은 분들은 취재했고 몇 분이 섭외됐었는데 이거는 좀 나중에 하자고 미뤄놨거든요. 되게 후회했어요. 섭외되면 바로바로 해야죠. 그리고 중국 측은 취재를 하러 못 가서 중국 특파원 통해서 참전자들을 좀 찾았고요.”

- 편집할 때 중점 둔 부분은 뭔가요?

“이번에 전투씬 같은 거 특수영상을 했어요. 실제 영상에서 전투하는 모습은 거의 없거든요. 실제 전투할 때 촬영하기 힘드니까요. 전쟁이었던 치열한 내지는 그런 것들을 보여 주기 위해서 특수영상 부분을 신경 썼고요. 2편 충돌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좀 많이 해서 많이 들어갔고 그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이 좀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정전협상 때 스탈린 ‘북한은 인명 외에 잃을 게 없다’…참 무섭더라”

- 아쉬운 점도 있을 거 같아요.

“아까 말씀 잠깐 하셨는데 한반도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두 세력이 한판 크게 붙었고 그걸 한반도에 사는 일반 민간인들 그 전쟁의 비극, 참화 이런 것들을 온몸으로 다 견뎌냈잖아요. 우리 선조들인 아버지의 아버지뻘 되시는 분 어머니의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이 그런 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그 우리가 하는 건데 그런 민간인들의 모습 이 부분이 당겨지지 못한 점이 약간은 아쉽습니다. 미중이라는 관점에서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굉장히 큰 부분이죠,” 

-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메시지는 104세의 김병기 화백의 말씀인 거 같은데.

“프로그램이 미중의 관점에서 봤기 때문에 그럼 우리가 할 일이 뭔지 뒷부분에서 구구절절 얘기하는 거는 프로그램 전체 성격이 좀 안 맞는 거 같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뭐냐는 지점을 김병기 화백이 호통을 치시면서 얘기를 하신 거 같아서 그 부분을 살렸고 암튼 평환데 그래서 이게 정전 협정 체결 7월 27일 약간 좀 맞추려고 했던 거고 우리가 할 일은 평환데 평화는 구체적인 방법이야 제가 모르고요. 평화는 의무고 선택사항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거라는 부분을 김병기 화백께서 잘 말씀해 주신 거 같습니다.” 

- 지금 미중의 상황도 한국전쟁 영향이 있다고 보세요?

“그 얘기는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했는데요. 초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고 나서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미국과 협조를 할 것인지 아님, 미국과 대결할 것이냐인데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대결의 길을 선택 했던 거고 그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때 인터뷰에 나오는데요. 기존의 국가전략 외교 노선을 한번 뒤집었던 거고 지금 상황에서는 제가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런 측면이 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그럼 그게 한반도에 영향을 주겠네요?

“그렇겠죠. 작년에 무역전쟁 할 때 계속 중국 측에서 상감령 정신을 얘기하고 이랬던 게 그런 영향들이 계속 있었던 거 같아요.”

   
▲ <이미지 출처=KBS ‘다큐 인사이트’ 화면 캡처>

- 취재 연출하시며 느끼는 게 있으실 것 같아요.

“전쟁 영상은 실제로 잔인하거든요. 방송에서 안 보여 준 영상들 시신들이라든지 굉장히 잔인한 영상이 많았고 그런 영상은 뺐는데 그런 거 보면서 딱 두 가지인 거 같아요. 전쟁은 참 무섭다는 것과 국제질서가 참 냉혹하다는 점을 이번에 프로그램하며 다시 느꼈던 거 같아요.” 

- 어떻게 냉혹해요?

“예를 들면 정전 협상 될 때 스탈린이 ‘북한은 인명 손실 외에는 잃을 게 없다’라는 말이 프로그램에 나오는데 사람 죽은 게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할까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뻔한 얘긴데 전쟁 참 무섭고 국제질서는 냉혹하다는 걸 우리가 좀 잘 안 왔으면 좋겠어요. 다른 얘기 수도 있는데요.”

이영광 기자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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