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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쓰네’ 하면 극작가협회가?…‘소설가협회 성명’에 패러디 난무

기사승인 2020.07.30  17: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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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여성 정치인 발언 부각 보도 행태…여상규 “웃기고 앉아있네” 때와도 달라

그러니까, 무궁무진한 세계인 거다. “소설을 쓰시네”란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발언에 발끈하기 위해 준비된 단체들이란. 여기서 우리는 다시 ‘소설’을 써 볼 수도 있다. 여타 정치인, 고위 공직자의 “영화 찍으시네”, “시나리오 쓰시네”라는 발언이 대서특필됐다면,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이 성명을 냈을까 하는. 

“국민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 장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소설을 ‘거짓말’에 빗대어 폄훼할 수 있는가. 어려운 창작 여건에서도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하는 소설가들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와 다름없다.”

“인격을 짓밟는 행위”라는 표현이 눈에 콕 들어온다. 지난 29일 사단법인 한국소설가협회가 낸 ‘법무부 장관에게 공개 해명 요청 성명서’ 중 일부다. 앞서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야당 의원의 질의 중 “소설 쓰시네”라고 한 발언을 두고 한 소설가 이익단체가 성명을 내고 비판에 가담한 것이다.

성명서에서 이 단체는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상대방(독자)이 이미 알고 있으며, 이런 독자에게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믿게끔 창작해 낸 예술 작품”이라며 “소설이 무엇인지 알면서 그런 말을 했다면 더 나쁘고, 모르고 했다면 앞으로 법무부 장관이 하는 말을 어떻게 신뢰해야 할지 안타깝다”며 공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그러자, 성명 자체에 대한 패러디와 조롱이 난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30일 뒤늦게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댓글로 인터넷 포털 창이 폭발(?)하는 중이다. 어느 댓글러는 “이거 진짜임(직접 찾아봄)”이라며 국어사전에 등재된 ‘소설’의 뜻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며 “소설가 협회는 추미애가 아니라 사전 편찬한 사람들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해야 함”이라고 일침을 놨다.
 
네이버 국어사전, ‘소설 쓰다’ - 지어내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다.
다음 어학 사전, ‘소설 쓰다’ - (사람이) 지어내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다

소설가 협회 성명에 패러디가 난무하는 이유 

웃기고 있네 - 전국코미디언연합 사과 요구
쇼하고 있네 - 한국엔터테이너협회 사과 요구
뻥까고 있네 - 전통뻥튀기상인연합회 사과 요구

또 다른 네티즌이 남긴 패러디다. 앞서 언급한대로, 소설가협회의 성명 자차에 정치적 입장이 반영된 침소봉대가 아니냐는 주장이 녹아 든 이러한 패러디는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성명서 자체가, 성명을 낸 상황 자체가 또 하나의 소설, 아니 창작을 접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성명을 낸 소설가협회의 입장은 어떨까.

30일 <미디어오늘>의 <떠들썩한 소설가협회 성명 쓴 이사장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기사에 따르면, 김호운 소설가협회 이사장은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치적으로 휘말리기 싫어서 그동안 참아왔는데 우리문학을 융성하는데 힘을 합쳐야 할 분이 소설을 폄훼해선 안 된다”라며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소설을 허접하다는 뜻으로 써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사 속 김 이사장의 입장을 좀 더 보자. 

   
▲ <이미지 출처=한국소설가협회 홈페이지 캡처>

“소설가협회가 성명을 내자 누리꾼 사이에선 정치적인 공세로 해석하거나 과한 대응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저도 정치성향은 다르지만 우리 문학이 바로 서려면 진보와 보수를 갈라선 안 된다’며 ‘이럴 때 언론이 바로 서서 보도해달라”고 했다. 이어 ’야당 국회의원이 발언한다 해도 이렇게 대응하겠다’며 ‘정치적인 이슈라서 성명이 호도돼선 안 된다’고 했다.” 

김 이사장 본인의 정치적 성향은 추 장관과 다르지만 소설의 본질을 위해 대응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만약 “소설 쓰시네”라는 발언이 야당 의원이나 과거 정부 인사의 입에서 나왔다고 해도 같은 성명서를 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 터다. 

‘정치의 시녀’ 아니라는 한국소설가협회  

안타깝게도, 질문 자체가 틀린 것처럼 보인다. 원래 옳은 질문에서 옳은 답, 좋은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김 이사장 개인이나 단체의 정치적 성향이 좌인지 우인지,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중요치 않다. 

과연 보수정부에서도 김 이사장이 소설 일반이나 소설 창작 자체를 비하할 발언이 없는, 관용구에 불구한 발언을 문제 삼았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옳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법무부장관의 입에서 “소설 쓰시네”란 발언이 나왔어도 똑같은 성명을 냈을 것이냐고. 

또 하나, 추미애 장관이 남성이었어도 과연 이 단체가 시민들의 항의를 감수하면서까지 성명을 냈을까. 이건 추 장관의 발언 다음 날인 28일까지 ‘소설 쓰시네’, ‘소설 쓰네’란 제목으로 기사를 양산한 다수 언론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유독 여성 정치인의 발언을 부각시키는 보도 태도 말이다. 답은 쉽다.  

“웃기고 앉아 있네, 병X 같은 게.”

지난해 10월 같은 국회 법사위원회 자리, 당시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한 여당 의원의 항의에 직접 욕설을 내뱉은 바 있다. 당시 이 발언의 파장을 애써 축소시키거나 아예 무시한 매체가 적지 않았다. 여 전 의원의 이 욕설을 제목으로 단 기사가 얼마나 되는지, 이 문제적 발언이 언급된 기사와 이번 추 장관의 혼잣말이 언급된 기사 량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그렇지만 문학이 정치논리에 겁을 내서 할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정치의 시녀가 아니냐.”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김 이사장이 내놓은 항변이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소설가들도 이런 발언이 있을 때마다 (협회에) 불만을 털어놓거나 항의해왔다”고도 했다. 

이에 비추어, 한두 가지만 묻고 싶다. 과연 금번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얼마나 많은 (원로) 소설가가 동참했느냐고. 올해 1월 선출된 김 이사장 본인이 주도한 것은 당연지사라도 얼마나 많은 문인들이 이에 긍정했느냐고.

또 하나. 과거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고통 받는 소설가들을 위해, 창작자들을 위해 이 단체가 무얼 했느냐고. 국정농단 사태 직후인 지난 2017년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박명진 위원장에 대한 사과와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 외에 또 무엇을 했느냐고, 진짜 소설가들의 인격이 짓밟힐 때 독야청청 목소리를 냈었느냐고 말이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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