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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무책임한 ‘불법 촬영 의혹’ 개그맨 실명 보도

기사승인 2020.06.03  14: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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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재벌가·언론사주 관련 보도에선 왜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나

<가세연 “KBS 몰카범은 개그맨 000” … 논란 일파만파> 

국민일보가 오늘(3일)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000’은 제가 임의로 쓴 것이고 원래 제목은 실명이 그대로 보도됐습니다. 

기사는 “강용석 변호사, 김세의 전 기자 등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측이 KBS 여의도 본사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용의자가 개그맨 000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입니다. 

   
▲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화면 캡처. <사진제공=뉴시스>

최소한의 자체 확인도 없이 ‘인용’으로만 실명 보도하는 언론들 

국민일보 외에도 많은 언론이 ‘가세연’의 폭로를 인용하며 ‘불법 촬영 의혹’을 받고 있는 개그맨의 실명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도 행태, 온당한 것인가요? 

저는 무책임한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 실명을 보도하려면 3가지 조건 중에 하나는 충족을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경찰로부터 공식 답변을 받거나 △아니면 KBS 측으로부터 확인을 받은 경우 △아니면 당사자가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인정’을 한 경우 – 저는 이렇게 세 가지 중에 최소한 한 가지 조건에는 해당이 돼야 실명 보도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의혹을 받고 있는 개그맨의 실명을 보도한 언론 중 ‘이런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 대부분 ‘가세연’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사진과 함께 개그맨 실명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국민일보만 하더라도 ‘가세연’에서 방송한 내용을 인용한 다음 기사 마지막 부분에 “KBS 측은 ‘용의자 관련 확인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어서 가세연의 일방적 폭로가 더욱 논란을 낳고 있다”는 부분을 덧붙이는 정도입니다. 

무슨 얘기냐? ‘가세연’의 폭로 외에는 자체적으로 확인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일보는 기사에 해당 개그맨의 사진을 넣고, 기사 본문과 제목에 실명을 그대로 노출합니다. 자체 확인도 없이 이렇게 기사를 써도 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재벌가 3·4세나 언론사주 일가 보도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나 

물론 불법 촬영 의혹을 받고 있는 개그맨이 ‘000’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000’ 개그맨의 ‘혐의 여부’에 대해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언론 보도의 기본 원칙에 대해 말하려는 겁니다. 

최소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 실명을 보도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검증과 확인 과정’을 거친 다음 보도하는 게 저널리즘 원칙에 부합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개그맨 ‘000’ 실명을 보도한 언론사 가운데 이런 원칙에 부합하는 곳이 있던가요? 

제가 보기에 없습니다. ‘가세연’의 보도 내용을 기반으로 실명을 언급하고 사진까지 아무렇게 않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늘(3일)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제목만 간단히 살펴볼까요? 다음과 같습니다. (개그맨 실명은 000으로 처리합니다.) 

<가세연 “KBS 공채 개그맨 000..개그는 안하고 범죄 저질러”> (머니투데이) 
<‘KBS 개콘 몰카범’ 가세연이 지목한 000은 누구?> (MBN) 
<‘KBS 32기 공채 개그맨’ 000이 몰카범? 가세연, 정치색 논란 제기>(스타뉴스) 
<가세연 “몰카 개그맨은 KBS 공채 개그맨 000”> (서울신문)

저는 언론의 이 같은 ‘무책임한 실명 보도’ 이면에 개그맨에 대한 일종의 ‘만만한 태도’가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됩니다. 

만약 이번 사건의 의혹 당사자가 개그맨이 아니라 유력 정치인의 자녀였다면, 재벌가 자녀 혹은 3·4세였다면, 언론사주 일가였다면? ‘개그맨 000’의 실명을 보도한 언론들이 지금처럼 자체 확인도 없고, 당사자 반론도 없이, 사진까지 넣어가며 보도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능성 낮다고 봅니다. 

실제 그동안 재벌가 3·4세 마약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성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돌이켜보면 이번 ‘개그맨 000’ 실명 보도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명 보도는 상대적으로 ‘약자’에게만 적용되는 원칙? 

이번 ‘KBS 연구동 불법 촬영’은 심각한 범죄 행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벌인 당사자는 분명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언론이 관련 보도를 하면서 당사자 ‘실명’은 물론 ‘사진’까지 첨부하려면 확인 과정을 거치는 건 ‘필수’입니다. 

그런데 ‘개그맨 000’이라고 실명 보도한 언론들 가운데 ‘이런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있나요? 없습니다. 무죄 추정에 따른 익명 보도는 우리 사회 재벌과 같은 ‘힘 있는 자’들 앞에서만 적용되는 원칙인가요? 상대적으로 ‘약자’에게만 실명 보도 기준이 적용되는 걸 보며 드는 질문입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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