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태의 와이드뷰]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언론의 민낯.. 개혁 필요성 절감
“현지시간 지난 11일과 12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선 코로나19 연구 포럼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엔 중앙임상TF 소속 우리 연구진이 참석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오명돈 중앙임상TF 자문위원장 등 4명입니다. 앞서 WHO가 우리나라에 바이러스가 퍼진 경위와 확진 환자를 치료한 과정을 조사한 자료를 요청하자, 직접 제네바로 향한 겁니다.”
▲ <이미지 출처=JTBC 방송영상 캡처> |
14일 JTBC <뉴스룸>의 <‘환자 어떻게 치료했나’ WHO, ‘잘 정리된’ 한국 자료 요청>이란 보도 중 일부다. <뉴스룸>은 “WHO가 우리 정부에 코로나19 역학조사 자료를 요청했다”며 “짧은 시간 안에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 준 연구자들에게 감사하다”는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또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지역사회 감염이 확인되거나 추정되는 지역 중 여행 및 방문을 최소화할 것을 우선 ‘권고’한 나라 6개국(싱가포르,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중 한국을 제외했다. 지역사회 감염이 확인됐거나 추정된 12개국(미국과 유럽 포함) 중 중국 인접 국가에서 이 ‘권고’에서 제외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내 환자들에 대한 우려가 국제사회로 번지는 중이다. 15일 <연합뉴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한 간부의 말을 인용해 “일본에서 받은 데이터는 탑승자들의 (감염) 위험이 높은 것을 시사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보도했고, 외신은 이르면 16일 미국이 전세기 두 대를 동원해 자국민을 대피시킬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설 연휴 이후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던 2월 초, 중국인 입국 금지 등 일본 아베 정부의 대응을 극찬하던 한국 언론은 어떻게 ‘태세 전환’을 했을까. <중앙일보>를 보면 한국 정부와 방역당국 대응을 질타하며 일본과 비교하던 논조의 빠른 전환이 눈부실 정도다.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온라인판 캡처> |
'우한교민 천안 격리' 단독 보도했던 <중앙일보>의 2주간
“일본 정부가 대응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도쿄올림픽은 불가능하다. 올림픽 때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올 텐데, 이런 식으로는 관광대국이라는 목표도 이룰 수 없다. 지금 부탁하고 싶은 건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인도,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일본 정부를 향해 이런 문제제기를 강하게 전해주기 바란다.”
15일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日크루즈 일본인 승객 “이대론 올림픽 절대 못한다”> 기사에서 일본 방재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H씨가 한 경고다. 이렇게 ‘중앙’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자 다수의 ‘일본발’ 기사를 통해 일본 정부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같은 날 <[속보]“日·싱가포르, 지역사회 감염 의심···오염지역 지정 검토”> 기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2주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중앙’은 일본 아베 정부와 방역 당국의 대응과 문재인 정부를 비교하며 비판에 열을 올려왔다. 7일 일본의 ‘크루즈 봉쇄’를 극찬한 <정부의 우왕좌왕‧뒷북‧눈치보기가 신종 코로나 사태 키워>란 제목의 사설은 그 절정이었다.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온라인판 캡처> |
<늑장 대응이 우한폐렴 사태 키운다>던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사설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어 29일 이 신문은 <전세기도 마스크 지원도 일본보다 한발 늦은 정부>라는 현장칼럼에서 일본과 비교해 이틀 늦은 한국 정부의 전세기 급파와 마스크 지원을 ‘늑장 대응’이라 꼬집기도 했다.
‘중앙’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전세기 철수’ 우한 교민, 2주간 천안 2곳에 격리한다>고 단독보도 한 <중앙일보>는 이튿날인 29일 <천안 반발에 밀렸다... ‘우한 전세기’ 아산‧진천에 격리수용>이라는 북치고 장구 치는 단독보도를 이어갔다.
정부 발표보다 먼저 천안 지역을 특정하자 즉각 천안 주민들의 반발이 일었고, ‘중앙’ 보도로 정부가 이를 감안해 우한교민 수용지를 재검토한 후 천안에서 아산‧진천으로 변경한 셈이 되어 버렸다. 중앙의 ‘단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누구에게 득이 됐는지, 반대로 지역주민들의 공포를 키운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연쇄 보도였다.
중앙을 비롯한 언론들의 태세 전환이 준 교훈
이런 논조는 ‘크루즈 봉쇄’가 패착으로 드러난 최근까지 계속됐다. 심지어 ‘중앙’은 14일 보도한 ‘국가별 확진ㆍ사망자 수’ 데이터에서 일본의 확진자 수를 총 29명으로 보도했다. 이미 200명이 넘은 크루즈 선박 내 확진자 수를 아예 빼버린 것이다. ‘중앙’이 일본 내 확진자 수를 이렇게까지 축소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중앙’의 이러한 왜곡과 빠른 태세 전환은 가히 분열증 수준이라 할 만 하다. 자신들의 그간 정부 비판 보도가 침소봉대 수준이라는 것을 감추는 한편 일본의 빠른 확진자 수 확대를 부풀리며 또 다른 공포를 조장하는 수순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 <이미지 출처=세계일보 온라인판 캡처> |
사실 적지 않은 언론이 이러한 ‘태세 전환’에 안착하는 모습이다. 14일 <머니투데이>의 <‘코로나19 대응’ 실패한 일본, 미국도 인정한 한국>이나 15일 <세계일보>의 <코로나19에 ‘리더십 위기’ 시진핑·아베… 文대통령은?> 보도가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의 대응이 실패로 드러나면서 한국 정부와 비교하는 식 말이다.
결국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언론들이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면, 정파적 판단을 자제했다면 국민 불안을 자극하거나 일본의 대응을 칭찬하는 기사들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중보건이나 방역 전문가들이 꾸준히 제기해왔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말이다.
메르스 사태 당시 대형병원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던 예만 봐도 일본의 패착은 이미 예견되었다. 그렇다면 일본과 한국 정부를 비교하며 정파적 보도를 일삼았던 ‘중앙’을 비롯한 언론들은 우선 사설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일 터다. 하지만 우리 언론이 언제 그런 오류 인정이나 수정의 면모를 보인 적이 있었던가.
결국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코로나19’ 사태가 주는 교훈은 정부나 방역 당국의 적절한 대응과 향후 보완 대책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들은 ‘조국 사태’와 다를 바 없는 선정적이고, 속보 경쟁에 치우친, 또 정파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보면서 체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성은커녕 갈수록 퇴보하는 언론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말이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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