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아카데미 관례라고 말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
<“Up! Up! Up!”..이미경 CJ 부회장 무대에 올린 톰 행크스의 환호>
조선일보가 오늘(11일)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기사는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시상식에 참석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을 무대에 오르게 한 건 톰 행크스와 샬리즈 세런, 마고 로비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었다”로 시작합니다.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것처럼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이미경 CJ 부회장을 직접 지목해서 무대에 설 것을 요청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언급한 조선일보 제목과 기사는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간 것으로 봅니다.
▲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아 봉준호(왼쪽)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이미경 CJ부회장이 아니라 배우들이 소감을 밝혔다면 …
사실 저는 어제(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부분’이 가장 불편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것처럼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수상 소감을 마친 뒤 무대 조명이 꺼졌고, 객석에서는 소감을 계속 하라는 요청이 이어진” 상황에서 굳이(!) 이미경 CJ부회장이 마이크를 잡아야 했을까 – 이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각에선 △이미경 부회장이 영화 ‘기생충’ 책임프로듀서(CP)에 이름을 올렸고 △CJ E&M이 바른손이앤에이와 125억원 규모 투자계약 체결과 함께 영화 배급도 맡았으며 △100억원에 달하는 홍보비용을 지원한 점 등을 언급하며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수상소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 스테프들의 공헌이 크지만 제작지원과 홍보 등에서 적극적 역할을 했던 이미경 부회장 역할 역시 만만치 않았다는 겁니다.
게다가 제작사 대표가 발언하는 건 아카데미의 오랜 관례이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는 식의 언론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국민일보는 오늘(11일) <‘기생충’ 스포트라이트 이미경, 제작사 대표 발언이 관례>에서 “실제로 지난해 작품상 수상작인 ‘그린북’과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 2017년 ‘문라이트’, 2016년 ‘스포트라이트’의 수상 소감도 모두 감독에 앞서 제작자들이 말했다”면서 “이날 시상식에서도 제작사인 바른손 이앤에이 곽신애 대표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이 부회장이 이어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왜 굳이 이미경 CJ 부회장이 소감을 하냐는 비판에 기성 언론들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국민일보 외에 상당수 언론이 ‘이 상황’을 비판하거나 의문부호를 던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백 번을 양보해’ 그것이 아카데미 관례라 해도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가 수상소감을 밝혔으면 충분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추가 수상 소감’을 요청했을 때도 이미경 부회장이 아니라 ‘기생충’ 배우들이 하는 게 더 의미가 있고 온당했다고 봅니다.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하긴 했지만 정작 출연한 배우들은 남녀주연은 물론 조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점을 고려했다면 마이크를 배우들에게 넘기는 게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더 빛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면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 101년의 역사가 이뤄낸 쾌거를 온전히 더 즐길 수 있었다고 봅니다.
영화의 ‘본진’이라 일컬어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과 함께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이 할리우드 톱스타 앞에서 소감을 밝히는 장면이 나왔더라면 ‘그 장면 자체’가 우리 영화사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풍경이 됐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상당히 유감스럽게도 이미경 CJ부회장이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특히 동생인 이재현 CJ 회장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는 대목은 불필요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사실 저는 ‘이미경 부회장의 수상소감’을 둘러싼 논란이 언론이 토론을 해볼 사안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온당했고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는 문제제기와 반론을 통해 다뤄볼 사안이라는 거죠.
▲ 영화 '기생충'의 출연진이 9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 앞 레드카펫 위에 서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삼성이 투자한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수상하면 이재용 부회장이 수상소감을?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기성 언론 상당수가 ‘이 문제’에 그냥 넘어갑니다. 그냥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친절하게 이미경 부회장과 CJ의 입장에서 의미부여는 물론 설명까지 해줍니다.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말이죠. 일부 언론의 기사 제목만 간단히 인용합니다.
<‘숨은 공신’ 이미경 “봉 감독의 모든 것 좋아”> (세계일보)
<숨은 주역 이미경 “난 봉준호 모든 게 좋다”> (중앙일보)
<아카데미 생중계 시청률 1위..이미경 CJ 부회장이 ‘최고의 1분’> (한국경제)
<이미경 CJ 부회장 “기생충, 불가능한 꿈 이뤘다..모두에게 감사”> (MBN)
<‘기생충’ 봉준호의 든든한 후원자, CJ 이미경 행보 관심집중> (데일리안)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미경 부회장 수상 소감’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알라딘은 디즈니 영화입니다. 이미경 부회장처럼 만약 투자자가 프로듀서 크레딧에 오를 수 있다면 디즈니의 CEO인 밥 아이거 이름이 올라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없죠? 할리우드에선 영화에 돈을 댄 이, 그러니까 스튜디오 대표는 그냥 CEO이지 프로듀서가 아닙니다. CEO는 돈을 벌고, 명예는 제작진이 가져가는 것이라는 걸 아는 것이죠. 아. 그리고 밥 아이거는 월트 디즈니 가문도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이미경 부회장은 국내 상영작 크레딧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투자한 영화가 외국에 나갈 때만 프로듀서 크레딧에 미키 리라는 영어 이름을 올리죠. 참 희한한 노릇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제기’는 언론이 하는 게 온당하다고 봅니다. 축제는 즐겨야 하지만 토론이 필요한 대목은 토론을 해야 하니까요.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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