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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검사야?” 질문에 ‘도가니 일기’ 공개한 임은정

기사승인 2020.01.29  08: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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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사회적 약자 대신해 세상에 소리쳐 주는 것, 난 대한민국의 검사”

“이런 답변까지 쓰셔야 하는 잔인한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파요.”

서지현 성남지청 부부장검사의 한탄이다. 임은정 울산지청 부장검사가 28일 밤 페이스북에 게시한 장문의 글에 서지현 검사가 적은 한 줄 답글이었다. 이는 일종의 당사자로서의 공감이자 내부고발자에게 어이없는 자기증명을 강요하는 이들에 대한 분개였으리라. 

“검찰이 검찰답지 못하고, 검사가 검사답지 못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네가 검사냐?’를 묻는 서글픈 시절입니다. 2009년 9월 20일 미니홈피에 쓴 일기가 떠오르네요. 저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그 이름,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서 검사처럼 임 부장검사 역시 글 말미에서 자신의 서글픔을 토로하면서도 검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전날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임 부장검사를 지목해 “너도 검사야?”라며 검찰의 ‘청와대 수사’ 등에 대해 발언하라고 종용한데 대한 입장 표명이었다.  

그러면서 임 부장검사는 2009년 9월에 직접 쓴 이른바 ‘<도가니> 일기’ 내용을 사진으로 첨했다. 이와 관련, 임 검사는 20일 게시한 글에서 “제 <도가니> 일기가 공개된 2011년부터 ‘출마하려고 저런다’는 말을 들었다”며 “문 걸어 잠그고 무죄구형을 강행하여 징계피혐의자로 조사받던 2013년 1월, 감찰 담당 선배로부터 ‘무죄구형 전 정치권이나 언론과 접촉하였는지’를 추궁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공개한 10년 ‘다짐’의 내용은 이랬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대신 싸워주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의 절박한 아우성이 밀려든다.  그날 (성폭력 가해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던) 법정에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말려가며 한 다짐을 다시 내 가슴에 새긴다. 정의를 바로잡는 것. 저들을 대신해서 세상에 소리쳐 주는 것. 난 대한민국의 검사다.” 

   
   
▲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공개한 2009년 9월 ‘<도가니> 일기’ 일부 <이미지 출처=임 부장검사 페이스북 캡처>

10년 전 ‘도가니 일기’와 다를 바 없는 임은정의 다짐 

차곡차곡 써내려간 문장 문장이 꽤 신중했다. 또 묵직했다. ‘<도가니> 일기’를 되새기며 10년 전 다짐을 소환한 것도 다 계획이 있어서였으리라. 임 검사는 과거 한 검사장 앞에서 보이스펜으로 녹음했던 기억을 소환하는 등 내부고발자로서 겪었던 경험담과 고충을 털어놨다. 이미 ‘직’을 걸었기에 ‘말의 무게’가 ‘외부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상식적이고도 친절한 설명이었다. 

“제가 하는 검찰 관련 말과 행동은 징계취소소송까지 각오하고 하는 것이라, 저에게는 직을 건 행위입니다. 하여, 근거와 증거가 있는가? 증거능력과 신빙성은? 승소 가능성을 재삼재사 따져 묻고 업무와 언행에 트집잡힐게 없는지 살얼음판 걷듯 조심하며 자신이 있을 때, 비로소 감행했습니다. 검찰 외부인이 직을 걸지 않고 검찰을 논평하는 것과는 그 처지와 입장이 다르지요. 그래서, 말의 무게도 다릅니다. 저는 제 직을 걸고 있으니까요.” 

임 부장검사는 글을 올리게 된 계기도 소개했다. 임 부장검사는 진 전 교수가 “진중권 교수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셨다는 소문을 뉴스로 보았습니다”라며 “제 페친분들을 위해 제 입장을 밝힙니다”라며 차분하게 글을 이어나갔다(☞“너도 검사야?” 임은정 검사에 무례 쏟아낸 진중권). 

앞서 진 전 교수는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포함된 검찰청법이 본회의 통과하던 13일, 소회를 털어놓는 임 부장검사의 글에 “축하합니다. 곧 영전하시겠네요”라는 답글을 게시하며 반어에 가까운 축하(?)를 한 바 있다. 임 부장검사는 그랬던 진 전 교수가 요구했던 ‘입장 표명’을 또박또박 차분하게 이어나갔다.  

“무엇보다도, 저는 법률가이자 실무자로서 장관 인사청문회 당일 피의자 조사 없는 사문서위조 기소 감행을 검찰의 인사개입으로 판단하고 있어, 보수언론이나 적지 않은 분들이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결과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저는 검찰이 주장하는 수사 결과가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추후 평가할 생각이라, 전제사실에 대한 견해차가 있습니다.

재판부에서 정겸심 교수의 사문서위조 사건 공소장 변경을 쉬이 허가해줄 리 없다 싶어서, 행안위 국감장에서 조심스레 말을 했었는데, 제 예상대로 되었지요. 공소시효 때문에 부득이 피의자 조사 없이 사문서위조 기소를 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일부 언론과 일부 국민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실무자인 저까지 납득시키기엔 너무도 볼품없는 핑계입니다. 그건에 대해서만 과감하게 기소하였을까, 기소가 그리 과감하면 수사는 얼마나 거칠까...” 

   
▲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사진제공=뉴시스>

국민들은 누구에게 더 공감할까 

“저는 민주당 정부의 검찰개혁 의지를 믿지 못 하겠습니다. 제 고발사건으로 검사의 직무유기, 직권남용에 대한 판례를 남기는 게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발령을 조건으로 고발 취하 등을 요구받은 작년 9월, 임 부장검사가 법무부 간부를 향해 밝힌 견해라고 한다. 2012년부터 정권을 가리지 않고 검찰의 잘못을 내부게시판과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해 왔다는 임 부장검사는 “선거로 수시로 심판받는 정치권과는 달리 사실상 영원히 이어지는 조직인 검찰이 가장 큰 거악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저로서 지금까지처럼 검찰 한 우물만 팔 각오”라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임 부장검사가 최근 인사가 결정된 법무부 감찰직 공모에 탈락한 배경이다. 임 부장검사는 “차장급인 특별감찰단장이나 감찰담당관이 아니라 부장급인 감찰1과장 공모에 응했(다)”며 “승진이 아니라, 검찰이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기를 원하는 것인데, 감찰중단사례들을 고발해온 제가 공모에 정작 응하지 않는다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며 공모에 응하며 제출한 업무계획 내용을 공개했다.  

“지금까지의 징계기록을 전면 재검토해서 형사입건 되었어야 할 검사들을 적극 입건, 기소하고, 불입건 경위를 살펴 관련자들을 직무유기 등으로 입건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살벌한 업무계획을 적어냈는데, 만약 발령이 난다면, 아마도 총장님과 매일 논쟁해야 하고, 이의제기권 행사, 수사심의회 소집 요청, 권익위 부패신고, 경찰청 고발 등 각종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던 저로서는 공모에 탈락하여 아쉽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안도하는 마음도 적지 않았습니다.”

진 전 교수가 말한 ‘영전’ 의혹에 대해 “혹 오해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해를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밝힌 임 부장검사는 “일부 차가운 시선”도 있지만 “제가 가야 할 길 계속 가보겠습니다”란 다짐을 전했다. 

“법무부와 검찰간의 균열로 제 뒷배가 갑자기 몹시 든든해 보이고, 이로 인해 제가 영전을 위해 이러는 것처럼 말하는 검찰 동료들도 있고, 검찰 밖 일부 차가운 시선도 있습니다만, 각자 서있는 위치에서 제 뒷배경이 달리 보이는 건, 제 탓은 아니겠지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조심스럽지만, 묵묵하게 제가 가야 할 길 계속 가보겠습니다.”

29일 오전 8시 현재 임 부장검사의 페이스북 글은 ‘좋아요’ 7200여개가 달렸다. 반면 하루 전 “너도 검사야?”라던 진 전 교수의 글은 1700여개가 달렸다. 검찰개혁에 공감하는 일반 국민들은 과연 ‘직을 건’ 현직 검사와 외부인에 해당하는 전 동양대 교수 중 누구의 글에 더 공감할까.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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