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광의 발로 GO 인터뷰 430] 박훈규 독립 PD
지난 6월 9일 홍콩 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시위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100만 명으로 시작한 홍콩 시위는 일주일 만에 200만 명으로 늘었고 시위는 폭력양상으로 번졌다. 결국 홍콩 정부는 송환법 철회를 선언했다. 시위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경찰 진압에 대한 조사와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한 5대 요구를 내걸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거부했다.
홍콩의 상황을 자세히 듣고자 지난 10월과 11월 두 차례 홍콩 시위를 취재하고 돌아온 ‘길바닥저널리스트’인 박훈규 독립 PD를 지난 11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박훈규 독립 PD <사진=이영광 기자> |
“80년 광주, 공권력 폭력은 비슷하지만 정치적 상황은 다르다”
- 홍콩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오셨잖아요. 현장에서 본 홍콩 상황은 어떻습니까?
“제가 홍콩을 10월과 11월 두 번을 들어갔어요. 10월에 민간인권전선이라는 홍콩 재야 단체가 송환법으로 집회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경찰이 불허했죠, 대규모 충돌 일어난 날이 경찰과 시위대가 큰 규모로 충돌한 건 10월이 처음이었어요. 그날도 몽콕부터 시작해서 침사추이, 조던, 야우마테이란 지역을 계속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경찰은 한낮부터 최루탄 쏘고 방어하며 물대포 쏘면서 가장 크게 충돌이 일어났고요.
11월에 들어갔을 때는 중문대에서부터 홍콩대 이공대 등 대학까지 학생들이 점거하고 경찰은 학교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고 마지막 월요일은 이공대에서 나온 학생들과 시위대가 섞여 또 한 번 도심에서 격렬하게 했는데 어마어마한 충돌로 아비귀한이었죠.”
- 어떻게요?
“보통 우리처럼 시위하면 한곳에 예고하고 거기 집결해서 하는 게 아니라 홍콩 시위는 산발적이고 게릴라식이에요. 침사추이에서 시작하면 경찰에게 몽콕에서 야우마테이까지 쭉 밀리고 여기만 시위가 있는 게 아니라 당시 이공대 안에 학생과 시위대가 고립되어 있었어요. 경찰이 사실상 막아 놓은 상태에 나오지는 못하고 학생들이 탈출하는 상황이 선거 전까지 이어진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월요일 충돌이 워낙 커서 부상자도 너무 많이 나오고 연행자가 그날 하루에만 천여 명이 잡혀갔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으니까요,”
- 언론 보면 경찰이 시위대에 총 쏘기도 했다던데.
“그게 사이완호라는 시에서 SNS에 올린 영상이 퍼져서 그 이후로 시위가 촉발된 건데 차우츠록이라는 애예요. 나이는 22살이에요. 아침에 여명 운동이라고 교통을 방해하는 시위를 오전 6시 정도 하는 데 그때 교통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에게 실탄을 쏴서 맞았어요. 신장 3분의 2를 도려내고 장이 파열되는 등 큰 중상 입는 사건이 있었죠.
그 사건 이후 이 시위가 엄청나게 촉발된 거죠. 경찰에 대한 분노가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렸거든요. 경찰이 쏜 실탄 맞은 부상자는 홍콩 시위대는 총 세 명이에요. 사이월에서 한 명 다른 지역도 2명 있죠. 사이완호 실탄 사격 이후로 시위대의 시위와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이라 폭력성도 더 비춰졌고요.”
- 무섭지 않았어요?
“엄청 무섭죠. 왜냐면 홍콩 경찰은 시위대를 바퀴벌레라고 하거든요. 사람으로 보지 않아요. 취재진도 자기네들이 진압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취재진에게도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고 물리력을 쓰니 굉장히 위험하죠. 그리고 경찰과 시위대 간 붙었을 때는 화염병만 던지는 게 아니라 고무탄도 쏘고 스펀지탄도 쏘고 시위진압 무기가 많아요. 고무탄이나 스펀지탄 같은 경우는 벽에 맞아 튕겨 나오면 어디로 뛸지 몰라요. 그런 식이에요. 저 같은 경우 헬멧 써서 다행이지만 머리 위로 최루탄도 떨어지고 벽에 맞고 나온 고무탄에 맞아 멍들기도 하고요.”
▲ 지난 11월 8일 홍콩 시위 경찰 진압 첫 사망자인 대학생 차우츠록(周梓樂)이 최루탄을 피해 추락한 장소인 정관오 지역의 주차장 건물에서 시민들이 그를 추모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
- 왜 가셨어요?
“저는 5년 전 우산혁명 때 다녀왔어요. 세월호 참사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예요. 우산혁명 당시 홍콩 시위대에서 어떤 일 있었냐면 노란 리본 달고 시위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그때 세월호 엄마들이 노란 리본 500개를 만들어줬어요. 그걸 가지고 홍콩 가서 시위대에게 ‘우리는 이런 참사가 있어서 노란 리본 단다.’라고 했죠. 걔네는 평화를 위해 하는 데 같은 의미잖아요. 엄마들이 만들어준 걸 취재하며 나눠준 기억이 있죠.”
- 이전에 홍콩 관심 있었어요?
“그전에는 홍콩에 대규모 시위가 없었고 홍콩은 관광이나 놀러 가는 정도 그리고 홍콩 영화배우로 가까운 점을 느낀 거죠. 사실 우산혁명 때 총리 직선제를 내걸었는데 실패했거든요. 그래서 아쉬운 채 돌아왔는데 이번에 다른 문제를 가지고 하지만 다섯 가지 요구사항 안에 총리 직선제 부분이 들어있거든요. 경찰의 독립적인 조상 요구라든지 시위대를 폭도로 보지 말라든지 연행자 조건 없이 석방하라는 건데 이런 게 다 민주 절차잖아요. 중국은 아직 사회주의 국가니까 이런 요구 받아들일 수 없죠. 이게 민주주의 운동의 한 일환으로 보여지는 게 있는 거죠. 이번엔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죠) 그러나 절반의 성공은 했죠. 왜냐면 작은 선거긴 하지만 홍콩 역사상 민주파가 이렇게 대승한 적은 없거든요.”
- 우리나라 시위 문화와 차이가 있을 거 같아요. 우리는 촛불 들고 있잖아요.
“화염병이나 돌 던지는 게 80년대 우리 저항 방식이었잖아요. 그러나 그 이후 민주적인 시위 방식 선택했죠, 촛불을 든다든지 행진하는 거죠. 정점 찍은 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때 천만 촛불을 들었잖아요. 그때부터 시위 방식은 촛불이잖아요. 촛불로서 우리가 의견 표시하는 방식이죠. 그러나 홍콩은 그 방식으로 통하지 않는 상황인 거죠. 왜냐면 경찰이 폭력을 유도하도록 하는 행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다음 홍콩 상황에서는 우리처럼 촛불 시위해서 요구사항을 관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홍콩은 굉장히 어렵죠.
그 대신 점심에 직장인 같은 경우 핸드폰에 불을 켜고 들어서 글로리아 홍콩이란 노래를 불러요. 그거 하며 다섯 가지 요구사항 받아들이라며 ‘런치 위드 유’라는 걸 점심시간 평화적으로 하긴 하죠. 그건 시민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활용해서 하는 시위고 과격시위는 도로 점거하고 경찰이 등장하면 맞대응해 싸우고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으니 관련 상점 불태운다든지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크니 지하철역 불태우는 등 과격시위로 번지는 거죠.”
- 홍콩 시민들도 많이 만나셨을 거 같은데.
“시민들 반응은 홍콩도 우리처럼 민주와 친중 성향으로 나눠져 있어요. 반반으로 보면 되는 데 이번에 경찰이 강경 진압 하고 과격하게 연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위대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요. 그 결과가 투표로 나온 거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직 노년층과 일부는 친중 성향 많이 따라가는 사람이 있어서 50 대 50으로 보면 맞을 거 같아요.”
- 홍콩 선거 역사상 투표율이 최고 높았다던데.
“홍콩 역사가 어떤 투표를 함에 있어서 70% 이상 투표율 나오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치러진 선거는 큰 선거가 아닌 구의회 선거라고 해서 우리로 보면 시의원 뽑는 지자체 선거 밖에 안 되는 거죠.
보통 선거 치르면 나오는 투표율이 43%를 안 넘는 데 이번엔 70% 넘겼잖아요. 민주파가 압승을 하긴 했는데 실제 득표율 보면 큰 차이 안나요. 민주파가 52%고 친중 성향은 48%로 나왔거든요. 이게 오묘한 게 결국 홍콩 상황이 선거에서 민주 쪽이 승리하긴 했지만, 여전히 친중 성향도 많다는 걸 보여주죠.”
- 이건 보궐선거인지 아님 정기적인 선거인가요?
“보궐선거가 아니고 임기가 다 되어 구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였어요. 홍콩은 보궐선거라는 게 없어요. 홍콩 선거 제도는 우리와 다르게 복잡해요. 왜냐면 총리를 국민이 뽑는 게 아니에요. 국민은 입법회 선거하고 거기서 뽑히면 자기들끼리 총리를 뽑아요. 그러나 의미 없는 게 홍콩 총리 같은 경우 중국에서 뽑아요. 표면상만 입법회 선거를 거치는 거지 사실 의미 없죠. 그러니 총리 직선제를 강하게 요구하는 건 자기들 총리는 자기네가 뽑아야 한다는 게 5년 전 우산 혁명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그걸 요구하죠. 그러나 중국은 받아들일 리 없죠.”
▲ 홍콩 유권자들이 지난 11월 24일 구의회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투표소 앞에 줄을 서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 우리나라 언론은 홍콩을 80년 광주와 비슷하다고 보도하는 데 현지 분위기도 그런가요?
“사람들이 홍콩을 보면 80년 광주나 6월 항쟁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정치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같진 않죠. 5.18 때나 6월 항쟁 때는 독재체제였으니 민주화를 위해 싸운 거고 홍콩도 비슷한 상황은 있죠. 총리 직선제죠. 우리도 6월 항쟁 때 대통령 직선제 요구했잖아요. 이런 상황은 비슷한데 홍콩 시위 첫 번째는 송환법이거든요. 지금도 송환법 완전한 철회가 5가지 중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80년 5월 광주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점이 뭐냐면 정치적으로는 완전 다른 상황이지만 우리는 경찰이 탄압하는 방식을 이미 겪었잖아요. 그걸 그대로 홍콩이 하는 거 같아서 흡사하니 그것과 비슷해 보이는 거고 안에 내용을 깠을 땐 정치적 상황이라든지 이런 게 다르죠. 결국 국가공권력의 폭력행위라든지 이런 게 비슷하다고 느끼지만, 정치적 상황은 다르죠.”
- 그래도 홍콩은 사망자가 안 나오지 않았나요?
“80년 광주는 계엄령을 내렸잖아요. 그리고 군인이 직접 헬기 사격 했다는 말도 나오는데 홍콩에서 아직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시위로 홍콩에서 자살 사건은 엄청 많아요. 그러나 홍콩 젊은이들은 자살로 안 봐요. 왜냐면 몇몇 사건엔 의혹이 있는 사건이 분명 있고 홍콩의 젊은 친구들이 얘기할 때 청년들의 자살률 이렇게 높은 적 없다고 이야기하니까요. 그리고 경찰에 쫓기다가 주차장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친구도 보면 경찰이 총 쏜 건 아니지만 시위과정에서 경찰에 쫓기다 죽거나 하는 걸 보면 똑같이 공권력에 의한 사망이라고 보는 게 맞죠.”
“우리는 일주일 후 교체하지만 외신들은 한팀이 몇 달씩 살며 취재”
- 홍콩 시위 취재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어요?
“저는 혼자 1인 미디어 활동을 하다 보니 언어죠, 홍콩은 광둥어와 영어 두 가지를 쓰는 데 영어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니 언어가 제일 힘들었죠. 큰 방송사는 현지에서 코디네이터를 고용해사 통역부터 여러 가지를 지원받죠. 그러나 저는 비용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코디네이터를 쓰지 못하니 손발로 하거나 번역이 돌리고요. 간단한 영어가 되면 하고 홍콩은 의외로 한국말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 같은 경우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하죠. 언어 문제가 제일 힘들었어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데 못했으니 아쉽죠.”
- 홍콩 시위 현장 취재할 때 외신과 우리 언론 취재 행태가 차이가 있었다고 하셨던데 어느 면에서 그랬나요.
“우린 한번 들어오면 일주일 이상 있지 않아요. 일주일 후 교체해요. 그러나 CNN, 로이터 같은 데 보면 홍콩에 집 얻어놓고 몇 달씩 살며 취재해요. 그러니 어떤 차이가 있냐면 그렇게 한 팀이 교체 없이 홍콩 상황을 보고 취재하면 홍콩에 대한 취재 정보가 어마어마하고 네트워크가 이미 많이 생겼고요. 홍콩 상황을 너무 잘 아는 거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들어올 때 사전 정보도 부족하고 들어와서 1주일 단위로 교체되면 후임자는 아무 정보가 없어요. 시위대 정보나 시위상황이라든지 홍콩 정부 상황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들어와서 시위대를 쫓아다니려니 어려운 거죠.”
▲ 지난 11월 21일(현지시간) 홍콩이공대(폴리테크닉)에서 경찰이 기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는 국제뉴스가 워낙 빈약하잖아요.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죠. 인기와 재미가 없는 건 그만큼 재미없게 만들고 이슈 트레킹을 잘 못하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홍콩 같은 경우 수많은 취재진이 들어왔지만, 방송에서 1분 30초 리포트 끝나면 더 이상 보여주지 않잖아요. 1분 30초 때문에 높은 물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가 봤을 땐 이슈를 뽑을 게 없다고 판단하는 거죠. 그러니 맨날 시위가 격화된 그림만 나오죠. 그러나 그것도 보면 방송사가 나가 찍었지만, 리포트엔 자기네가 찍은 그림은 몇 개 안 되고 외신 그림 가져다 쓰잖아요.”
- 신문 기자는 안 갔나요?
“이번에 방송사는 SBS, KBS, MBC, JTBC만 들어오고 나머지 종편은 안 들어왔고요. 연합뉴스 사진기자 들어왔고 오마이뉴스, 뉴스1과 인터넷 언론 두세 군데 들어온 게 전부인데 앞서도 얘기했듯 사진은 외신에서 사다 쓰면 되죠. 바이라인 보면 홍콩 취재가 아닌 베이징 특파원 활용하잖아요. 왜 베이징 특파원을 쓰겠어요. 베이징에서 홍콩 한 시간이면 들어오는 데 위험하다고 안 들어와요. 그럼 베이징 특파원은 뉴스 소스를 어디서 받을까요? 다 외신 거예요. 그러니 국제뉴스 질이 그 정도 밖에 안 나오니 우리나라 국제뉴스 퀄리티가 좋아질 수 없죠.”
- 외국도 신문 기자는 없었어요?
“전 세계 언론사가 다 들어왔다고 할 정도로 들어왔는데 신문사도 워싱턴 포스트, 미국의 타임즈, 프랑스 르몽드, 영국 가디언도 들어왔어요.”
- 우리나라만 안 간 거네요?
“우리나라는 기껏 가야 사진기자가 들어와 몇 장 찍고 나가는 거뿐이죠, 이번에 뉴스1과 오마이뉴스 등 군소 매체만 들어와서 썼어요. 뉴스1 같은 경우 칭찬하고 싶은 게 이공대 안 시위대와 며칠 생활하니 좋은 기사가 나오잖아요. 그러나 사진 기자가 들어와 몇 장 찍고 기사는 서울에서 외신 꺼 보고 쓰니 뭐냐고요.”
- 문제 많네요?
“많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국제뉴스를 활용을 못 하는 거 같아요. 물적 자원이나 인력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단지 국제뉴스가 인기가 없으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다른 국제 뉴스보다 굉장히 관심 가졌죠.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에 관심을 가졌나요. 아님 칠레에서 한다고 관심 가지나요? 이란도 뒤집었는데 아무도 관심 안 갖잖아요. 이상하게 홍콩 시위엔 많은 사람이 관심 가졌죠. 왜냐면 우리와 연대점이 많고 홍콩은 아시아로 아까운 나라죠. 서로 교류하는 게 많아서 그나마 이렇게 했지, 그런 거 아님 홍콩도 관심 안 갖죠. 우리나라는 조국에만 몰려 있었잖아요. 취재 자원 낭비죠.”
▲ 12일(현지시간) 홍콩서 열린 집회에 모인 시위대가 "홍콩 해방"이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시위대는 홍콩 민주화 시위 중 투옥된 시위 대원들을 위해 수백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수감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카드에 담았다. <사진제공=뉴시스> |
- 앞으로 홍콩 시위 어떻게 전개될 거로 보세요?
“선거 이후엔 시위가 소강상태고 지난 일요일(1일) 민간인권전선이 주도해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평화적으로 마무리됐죠. 그렇다고 이 시위가 완전히 종식된 건 아니고 화산이 잠시 멈춘 상태죠. 언제든 촉발될 상황은 여기저기 섞여 있지만 지금 주춤한 건 시위대는 패배감이 너무 커요. 그리고 선거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폭력시위로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계속 올라오고요.”
- 선거 이겼는데 왜 패배감이 있나요?
“시위대는 선거와 다르게 경찰에게 당한 게 많아 복수해야 한다는 복수심이 가득 차 있었거든요. 그날 시위대가 연행 많이 되고 부상자가 나오고 경찰에게 밀렸지만, 선거 끝나고 두고 보자는 식으로 칼 가는 사람도 많았어요. 근데 선거가 민주적으로 의견 반영하는 것도 있고 일반 시민도 더 이상 폭력 시위에 대해 지지 안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죠. 그다음 홍콩 시위 주축이 10대예요. 이들은 과격 시위하기에 동력을 상실한 거죠. 그리고 폭력 시위로 갈 명분도 없죠. 중국에서 한두 가지라도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오면 시위가 끝날 수 있을 텐데 그럴 일 없기죠. 홍콩은 정부나 경찰이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면 시위가 촉발되지 않을 거라고 보는데 모르죠. 홍콩 시위는 앞으로 정부나 경찰이 어떻게 나오냐죠.”
- 또 홍콩 가실 수도 있나요?
“지금은 들어가도 뻔한 상황이라 없는데 시위가 다시 촉발되거나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되어 상황이 변화하는 게 보인다면 다시 들어가 취재해서 나와야겠죠.”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언론사 이름 자체가 <GO발뉴스>잖아요. 그리고 언론의 기능 자체가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하고 있고 그다음 알권리 충족시켜줘야 하는 부분도 사명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GO발뉴스>가 좀 더 매체 영향력이 커져서 다른 매체보다 권력에 대한 감시 시민에 대한 목소리를 오롯이 더 크게 많이 담아내고 작은 언론이지만 영향력 커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매체로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이영광 기자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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