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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 전명윤 “홍콩, 오키나와..우리와 닮아서 꼭 알아야 할 것들”

기사승인 2019.09.19  15: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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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발 책터뷰] <환타지 없는 여행> 출간, 가이드북 저자 전명윤 작가 인터뷰

석양이 물드는 아름다운 해변이 아닌 헬멧을 쓰고 분노한 시위대 곁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여행 작가가 있다. 외신으로만 접한 해외 소식을 SNS로 발빠르게 중계하며 맞는 사이즈의 헬멧이 없다는 농담을 하며 여유를 보인 그는 베테랑 가이드북 저자 전명윤이다. 

전명윤 작가는 환타라는 필명으로 인도, 홍콩, 오키나와 등을 여행하고 가이드북을 쓴 가이드북 저자이다. 오랜 시간 가이드북을 쓰며 여행지의 필요한 정보 외에도 인도의 인권 문제, 카스트 제도와 차별, 홍콩 시위나 오키나와와 일본과의 관계를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여행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행지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며 그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고자 했다. 전명윤 작가의 두 번째 여행 에세이 <환타지 없는 여행>은 가이드북에서 다루지 않은,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이야기들을 담았다. 

전명윤 작가는 홍콩 사태의 장기화를 우려하며 홍콩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했다. 또 오키나와는 일본에게 오랜 식민지를 겪고 있다며 그들의 아픔과 우리의 아픔이 닮았다고 했다. 일본 불매운동에 관해서는 불매로 가되 민간인과의 교류는 끊지 말고 가해자인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했다. 

거짓된 환상을 깬다는 환상 타파의 ‘환타’. 여유로운 관광지가 아닌 시위대와 아픔의 역사가 있는 곳을 누빈 전명윤 작가를 만나 여행지의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신촌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 전명윤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신촌동의 한 카페에서 go발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효연 기자>

# 여행, 발견과 공감

Q 작가 전명윤이라는 이름 보다는 ‘환타’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환타는 환상타파의 줄인 말인데 여행은 어쩌면 환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왜 환상을 깨야 하나요?

환타라는 이름이 주어졌던 계기는 제가 처음 인도에 가게 되었을 때였어요. 그 시기는 인도가 거의 자아를 발견하는 곳이었잖아요. 지나가다가 바라나시에서 소똥을 밟으면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성자니 하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위를 했고 사회에 관심을 많이 가지다보니 인도에 처음 가서 가장 먼저 봤던 게 가난, 성차별, 카스트 차별 이런 것들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본 인도와 너무 매칭이 안 되는 거였죠. 

캘커타에서 테레사 수녀님 미사를 갔다가 근처에 있는 공산당 당사에서 마르크스랑 레닌의 조형물을 봤어요.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 소개를 했어요. 사람들이 무척 반겨주더라고요. 그들은 대부분이 카스트 제도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이었어요. ‘브라만 좌파’였던 거죠. 그들과 함께 인도 사회의 문제점도 살펴보고 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들 만나면 여행지의 아름다움보다는 현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죠. 사람들이 절 보고 깨는 소리를 많이 하고 다닌다고 했어요. 여행은 그런 것 같아요. 거짓된 환상보다는 실체를 보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 때마침 환타 색의 선글라스도 끼고 다녔고 콜라인 주류보다는 비주류인 환타가 나에게 어울리겠다 싶어서 환상을 깬다는 뜻의 환타라고 이름을 지은 거죠. 

Q <환타지 없는 여행>, 책을 내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시사인에 짧게 연재를 하고 있었어요. 제가 진짜 말이 많은 사람인데 짧은 지면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더라고요. 글 마무리도 어렵고 여행지와 세계 이슈 관련해서 할 말이 많았어요. 주어진 것은 여행 이야기인데 여행 이야기보다는 오키나와 빈곤문제, 장수마을 문제 같은 세계 이슈에 대해 주로 다뤘죠. 좀 더 자세히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Q 예전에 인도에서 가짜 환타가 활개를 치고 다녔다고 들었어요. ‘짝퉁’이 설칠 정도로 작가님의 유명세가 높다는 반증인데, 가짜 환타는 어떻게 생겨났고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그 사람이 누군지 찾아다녔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내 행세를 하면서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했더라고요. 제가 정말 범상치 않은 외모인데 절 아는 사람도 헷갈릴 정도로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건 여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웃음) 혼자 별 생각을 다했어요. 이걸 어떻게 수습하나. 그래서 인도 전문 카페에다 글도 올리고. 제가 손이 좀 작거든요. 손도 사진 찍어 올리고. 잡는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더니 위축되었는지 그 뒤 큰 문제는 안 일으키더라고요. 그런데 종종 환타가 태국 카오산에 있다, 뭐 이런 얘기가 들리곤 해요. 

Q 첫 여행인 인도로 떠나게 된 계기가 재밌어요. 실연의 아픔을 견디기 위해 인도로 떠나는 것이 첫 출발인데, 지금까지 지도 밖 세계를 누비며 세계 곳곳을 가는 이유가 뭘까요?

끊임없이 사회에 말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인도, 예를 들면 인도인들은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울지 않는다. 이유는 삶과 죽음을 초월했기 때문에. 그런데 아니거든요. 인도도 사람이 죽으면 우는 시간이 따로 있어요. 우리도 입관할 때 아이고 아이고 하잖아요. 인도는 풍습상 화장 할 때 울면 안 되는 거예요. 삶과 죽음을 초월했니 어쩌니 하면 멋지잖아요. 그게 아닌데. 아닌 건 아니라,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사실들, 몰랐던 사실들. 불편했던 사실들을 정확히 알려주고 싶은 것 같아요. 

   
▲ <환타지 없는 여행> / 사계절 / 전명윤

Q 다른 가이드북과는 다른 게 있다면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인도에 타지마할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자기 혼자 사진을 찍어요. 인도는 인구가 굉장히 많은 나라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 사진에는 인도인들이 잘 보이지 않아요.
제가 타지마할을 갔을 때 릭샤나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갔어요. 하루에 하나만 보는 여행이거든요. 숙소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데 한 4킬로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가는 도중 사람들이 막 싸우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싸우면 주변인들이 배심원이 돼요. 참견을 하고 누가 잘못했는지 잘잘못을 따지죠. 저도 앉아서 구경을 하는데 한국인이 있으니 신기했는지 짜이(인도식 홍차_기자)를 주더라고요. 짜이를 마시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눈동자가 절 향하고 있는 거예요. 짜이를 쫄쫄 마시고는 제가 그랬죠. ‘넘버 원!’ 그랬더니 와아 하면서 ‘헤이 프랜드!’ 이러는 거예요. 그날은 타지마할을 못 봤어요. 그 사람들하고 노닥거리니 시간이 다 갔죠.  그래도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날 릭샤를 타고 빨리 갔어요.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어요. 아무도 못 보고 그냥 타지마할만 본 거죠. 요즘 여행이 그래요. 어딜 가건 사진을 보면 ‘나’밖에 없어요. 현지인들과 조금 교류를 한다면 더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저 역시도 단순한 정보도 정보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Q 얼마 전 한 일간지 교육문화센터에서 여행 작가 전문자격증 양성반을 모집한다고 해서 날선 비판을 한 적이 있어요. 여행 작가 자격증이란 게 생소한데 왜 비판을 했는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체에서 했다는 게 사실 좀 부끄러웠어요. 청년층이 취업이 되지 않고 있는데 거기에서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한술 더 떠서 아이들을 갈취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물론 여러 센터에서 강좌로 하고 있는 건데. 여행 작가 코스라는 건 취업을 타겟팅 해서 하는 거거든요.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는 건데 글쓰기는 테크닉으로 배운다고 써지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가 살아온 총합의 독서량과 경험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단순한 몇 번의 강좌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건 그냥 청년들 코 묻은 돈 빼먹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 지금 지도 밖, 세계는

Q 홍콩 문제가 연일 이슈예요. 지난 6월에는 직접 홍콩에서 현장 상황을 SNS로 중계를 하기도 했어요. 오랫동안 홍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홍콩 상황은 어떤가요?

홍콩이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97년 중국으로 반환되었어요. 그러고 나서 중국이 홍콩에 약속을 했죠. 일국양제, 두 가지 제도를 허용해 주겠다. 일국양제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어요. 우리도 왜냐면 한반도 통일 관련해서 각자의 체제를 둔 상태에서 통일 국가를 만들자고 얘기가 나왔던 거잖아요. 사실 중국과 홍콩의 관계는 우리도 앞으로 통일을 논할 때 모델로 갈 수밖에 없는 것들인 거죠. 그런데 이 모델이 파산 위기에 놓였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에요. 홍콩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겠다 싶어서 현장을 다녀왔고요. 

얼마 전 있었던 우산혁명은 홍콩사람들이 직선제를 하겠다는 거거든요. 중국이 내놓은 지도자를 자신들이 뽑을 이유가 없는 거죠. 왜냐면 기호 1번 황교안, 2번 박근혜, 3번 이명박이거든요. (웃음) 물론 우산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긴 했어요. 그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적인 거죠. 시위를 이어나가면 아무래도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굴복된 거죠. 

그렇게 무기력했던 홍콩 사회가 다시 들고 일어났죠. 이번에는 ‘홍콩 송환법’ 때문이었어요. 이 시위가 초반에 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홍콩에 있는 외국인들 역시 잘못하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중국은 재판과정도 투명하지 않고 걸핏하면 사형을 하는 나라잖아요. 물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철회를 선언했지만 이 사람 실제 권한이 그리 있지 않거든요. 갈수록 시위는 커지고 홍콩 정부는 강경진압을 한 거죠. 

홍콩시민들이 원하는 건 다섯 가지에요. 첫 번째는 송환법 철회이고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것을 철회할 것, 또 그들을 석방하거나 불기소 할 것, 보통선거를 실시해 달라는 것이죠. 

Q 시위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것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우산혁명 같은 경우는 조슈아 웡 같은 시위 지도부가 있었어요. 그런데 현재는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이 없어서 조직력이 없어요. 또 오랫동안 시위가 이루어지다보니 식당, 여행업에 있는 점원들이 해고를 당하고 있어요. 경기가 안 좋으니까. 그렇게 해고된 사람들은 중국 편을 들수도 있겠죠. 지금도 친중, 반중 하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결국 자신들과의 싸움이 된 거예요. 장기화되고 있는데, 또 한 가지는 현재는 강경투쟁으로 나가고 있는데 협상을 좀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협상을 나서는 사람들은 욕을 먹어요. 홍콩 정치인들이 그 부분에 있어서 용기를 못 내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정치의 영역은 갈등이 생겼을 때 조절하고 화해 시켜야 하거든요. 

   
▲ 지난 6월, 노란 헬멧을 쓰고 거리에 나온 홍콩 사람들이 ‘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명윤 작가>

Q 중국에게 있어서 홍콩은 어떤 곳인가요?

아주 중요한 곳이죠. 중국은 홍콩이 없으면 안 돼요. 홍콩이 처음 반환되었을 때는 홍콩 경제가 중국 전체에 차지하는 경제 비율이 30%가 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3%대에요. 엄청 줄었죠. 그런데 그것 만으로만 볼게 아닌 게 홍콩은 주식 시장을 가지고 있잖아요. 홍콩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총양이 우리나라 코스피의 세 배에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크고요. 홍콩 주식시장은 말 그대로 폭탄이에요. 전 세계적인 불황이 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홍콩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하죠. 

또 하나는 중국 정부의 가장 큰 목적이 중국 돈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드는 거예요. 달러와 경쟁할 수 있게. 그러려면 중국도 나름 자금 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중국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홍콩은 되게 좋은 돈세탁 거래지에요. 해외 자금을 당겨올 수 있으니까. 외국 기업들이 중국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잘 안 해도 홍콩에는 하거든요. 홍콩에 우회투자를 해서 중국으로 가는 돈이 되게 많은 거죠. 그런데 홍콩을 작살내면 우회 투자라인이 사라지면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달러가 끊어지게 되는 거예요. 결국 중국 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거죠. 

Q 이번 여행기를 통해서 오키나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오키나와에 대한 역사와 우리와 닮은 것 같아요. 일본 제품 불매가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오키나와는 어떤 곳인가요?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일본의 식민지를 겪은 곳이에요. 일본 제국주의가 처음 성장하면서 가장 먼저 점령한 곳이 오키나와거든요. 그리고 타이완, 조선을 점령했죠.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는 엄연히 독립된 국가로 있었어요. 일본이 1800연대에 합병을 해버려요. 2차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지상전이 벌어졌고 이후에는 섬 주민 3분의 1이 죽어요. 여기는 원래 일본이 아니다보니 사람이 죽어도 조사도 안 하죠. 

끔찍했던 것은 ‘집단 자살 사건’ 같은 건데요. 일본이 전쟁에서 질게 뻔해 연합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 오키나와를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섬 주민들을 이용해 벙커를 만들고 주민들을 방패막이로 삼았죠. 일본은 미군한테 잡히면 여자들은 성폭행 하고 죽이고 남자들도 무지막지하게 죽인다고 했어요. 일본은 주민들에게 미군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자결을 하라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들은 주민들은 미군을 보기만 하면 언덕으로 도망을 가요. 전쟁 막바지에는 주민들이 방공호에 있는데 미군한테 잡혀 죽느니 서로를 죽이는, 집단 자살을 하기도 했어요. 실제 오키나와 많은 집에서는 4월부터 6월까지 제사가 몰려있어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평생 환청에 시달리며 살고 있어요. 일본 정부는 집단 자살, 학살 사건에 대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렇게 얘길 해요. 심지어 교과서에도 오키나와 사람들이 자살한 것에 대해서 구체적 서술이 나오지 않아요.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런 것에 분노하는 거죠. 이후로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섬 전체의 꽤 많은 주민들이 모여 시위를 해요. 모든 사람이 전쟁 피해자이고 유족인 거에요. 이들의 트라우마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이 트라우마를 잘 보여주는 노래가 있어요. 노래를 한 번 들어보시죠.

-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Hai-sai Ojisan)
https://www.youtube.com/watch?v=L5Ba86h3rUI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이 참 마음 아파요. 오키나와에 살고 있던 어떤 엄마가 전쟁으로 미쳐요. 얼마 후 7살 딸을 죽여서 목을 잘라 삶아 가지고 냄비에 받쳐서 와요. 마을이 발칵 뒤집히죠. 엄마는 나중에 자살하고 그걸 본 아빠도 미친 거예요. 이 아저씨가 매일 술에 취해 이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노래에 나오는 아이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저씨의 술시중을 들었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악상이 떠올라 ‘하이사이 오지상’을 만듭니다. 그런데 노래는 되게 신나고 가벼워 보이죠. 이 노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쟁의 피해가 얼마나 사람을 비극적으로 만드느냐를 보여주거든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비극이죠.   

   
▲ 오키나와 해변에서 가족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명윤 작가>

Q 오키나와는 일본 안에서도 좀 특별한 곳인 것 같아요.

일본이 처음에 오키나라와 점령한 이유는 바로 설탕 때문이었어요. 오키나와에 사탕수수가 많이 재배되거든요. 설탕이 워낙 비싸니 오키나와를 침략해 식민지화 한 거죠. 일본이 오키나와에 사탕수수 말고는 다른 것을 재배하지 못하게 했어요. 배를 타고 고기잡이도 못하게 했어요. 쌀 같은게 없으니 고구마나 해초 요리를 하게 되었죠.  

오키나와는 사실 한국보다, 한국처럼 일본과 더 치열할게 싸운 곳이에요. 그래서 이곳은 일본 우파 자민당이 아예 발도 못 붙이는 곳이에요. 반자민당 정서가 강하죠. 

제주도와 교류가 많기도 했어요. 그만큼 독자적인 문화를 잘 간직한 곳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의 70%가 오키나와에 있어요. 미군기지 관련해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거의 6800여일째 시위를 하고 있어요. 강정보다 더 오래 싸우고 있는 거죠. 오키나와에 가면 시위 투어를 할 수 있어요. 매일 같은 시각 시위대 할머니가 나와 계시거든요. 그 분한테 가서 1000엔을 주면 버스 티켓이랑 도시락을 주고 시위 현장에 가서 구호 외치고 돌아오는 코스예요. 재일교포 3세신데 우리 강정처럼 카누 타고 미군부대 앞에 가서 깃발 들고 구호 외치고 오는 카누 시위를 조직하고 계시기도 해요. 

# 우리 사는 세상

Q 일본 불매운동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은 것 같아요.

불매는 하되 민간과의 교류는 꾸준히 해야할 것 같아요. 아베 지지율이 뭐 70%고 한국을 제재하는 걸 일본인이 지지한다고 하는데 이 응답률에 의문을 제기하고요.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모른다예요.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일본 식민지 시대 교육을 많이 받았잖아요.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은 하나도 몰라요. 가해자들이 모르는 게 더 화가 나죠. 그럴수록 개인과 개인이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죠. 무작정 화를 내는 걸 경계해야 해요. 일단 중요한 건 그들의 귀를 먼저 열게 하는 것이고요. 사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 같은 경우는 우리가 먼저 밝혀낸 게 아니잖아요. 일본에 있는 양심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들추고 파헤친 거죠.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나쁘다라고 할 수 없어요.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베 정권을 바꾸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에요. 우리가 자꾸 열내고 해봤자 오히려 아베는 이걸 가지고 한국이 우리를 구박하네 하면서 더 영구집권하게 되는 거죠. 일본이 군사화 하는 계기를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일본열도를 침몰시킬 수 없어요. 어쨌든 이웃이니까 같이 살아야 해요. 그들에게 우리가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Q 해외 특파원으로도 활동하면서 한국 언론에 대한 문제점도 여실히 느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일단 한국 사람들은 해외 뉴스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성장을 안 하는 거죠. 그게 필요했다면 외신도 컸겠죠. 우리 언론의 외신 지면이 너무 적어요. 인도의 큰 언론사인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국제면을 4면 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1면이에요. 우리는 좀 남의 나라에 관심이 없고 또 어떻게 보면 북한에 막혀서 사회적인 섬이잖아요. 그런데도 국제 뉴스에 관심을 가지면 결국 우리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건데 그게 좀 안타깝죠. 

또 특파원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특파원들은 해외에서 취재를 안 해요. 중견 기자쯤 되면 한 번 쉬려고 해외로 바람 쐬러 가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올해 2월, 인도에서 여성 500만 명이 모여 인간 띠를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큰 통신사 같은 경우는 특파원이 나가있거든요. 그런데 거길 왜 안가는 지 모르겠어요. 그 좋은 기사를 두고, 맨날 성폭행 문제가 나오는 곳인데 말이죠. 

   
▲ <환타지 없는 여행>을 출간한 환타 전명윤 작가. <사진제공=전명윤 작가>

Q 여행 작가로서, 해외를 자주 다니는 국민으로서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세월호 1주기 때인가 폭우가 쏟아지는 날 청와대 앞에서 노란 비옷을 입은 처량한 표정의 문재인 대통령 표정이 기억나요. 전 그때의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을 가장 좋아해요. 또 언젠가 수염을 기른 채 앉아 있던 표정도 마찬가지에요. 그 표정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줄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저는 그게 아마 문재인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불매운동으로 홍대나 합정 같은 일본 식당들 지금 거의 파리 날리고 있거든요. 정말 장사 안돼요. 가뜩이나 임대료가 비싼데 그러고 있는 거죠. 일본제품 불매운동 하는 건 좋은데 우리 국민끼리 상처주지는 말았으면 해요. 대통령께서 나서서 우리 국민끼리 상처주지 말자, 이런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게 전 문재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연일 정치뉴스로 스트레스 받고 있는 고발뉴스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여행지가 있다면요?

타이완이요. 이곳은 정치적으로 중국과 갈등이 많아요. 그런데 타이완이 곧 대선이거든요. 지금 대선주자들이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후보자들 나와서 유세하고 민주주의니 어쩌니 떠들어대면 안 좋잖아요. (웃음) 그래서 대선 끝날 때까지 모든 단체와 개인 여행이 금지됐어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중국인들이 타이완에 당분간 없을 거란 얘깁니다. 하하. 

Q 마지막으로 고발뉴스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태평성대가 와서 마음이 헤이해지잖아요. 그런데 폭풍은 언제불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편 언론을 살리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풍랑이 왔을 때 주변에 친구가 없어질지 몰라요. 또 새로 만들려면 더 힘들어요. 그런 점에서 보험을 드는 마음으로 고발뉴스를 후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웃음)

전명윤 작가

필명은 환상타파의 줄임말 ‘환타’이다. 1996년 인도여행을 시작으로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가이드북과 글을 썼다. 딴지일보에서 인도 특파원을 했고 여러 주간지에서 국제분쟁, 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했다. 현재는 시사주간지 시사인에서 연재를 하고 있고 방송과 팟캐스트에 출연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프렌즈 홍콩 마카오>, <프렌즈 베이징>, <프렌즈 인도 네팔>, <프렌즈 오키나와>,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 <환타지 없는 여행> 등이 있다.

박효연 기자

박효연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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