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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영화 <김복동>, 할머니 강강약약 정신 실천하신 분”

기사승인 2019.08.14  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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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 GO 인터뷰 376] 김복동 할머니를 기록한 ‘미디어몽구’ 김정환 씨

지난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며 평화 인권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김복동>이 개봉했다. <김복동>은 독립언론이 제작한 세 번째 영화로 개봉 3일 만에 관객 2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 <김복동> 시작은 ‘미디어 몽구’로 잘 알려진 김정환 씨다. 김 씨는 2011년부터 김복동 할머니를 기록했다. 김 씨는 <김복동>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 지난 7일 서울 양평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정환 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김정환씨가 김복동 할머니 모시고 수요시위 가던 날. <사진=김정환씨 제공>

- 다큐 영화 <김복동>이 8일 개봉하잖아요, 하루 앞두고 있는데 어떠세요?

“실감 안 나고요. 처음 영화 만든다고 했을 때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을지 막연히 상상만 했었는데 내일(8일) 실제 개봉되어 많은 상영관에서 <김복동>이라는 영화가 보인다는 게 꿈만 같아요. 내일 극장 가서 보면 실감 날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떨려요. 영화를 꼭 만들어서 할머니 삶이 위대했음을 많은 관객이 보고 알아서 함께해 주면 좋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너무 뿌듯하기도 해요.” 

“마지막 말씀, 재일조선학교 관심 부탁, 아베 강하게 비판”

- 할머니가 안 계셔서 아쉬울 거 같은데.

“그렇죠. 저희가 처음 영화를 만들려고 한 거도 할머니가 병상에서 힘들어하시고 외로워하시고 아파하시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거든요. 할머니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할머니가 힘과 용기를 얻게 하려고 영화 제작한 거거든요. 살아생전에 완성된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안타깝게 보지 못하고 가셔서 마음 너무 아파요. 그러나 한편으론 전국 각지에서 할머니를 잊지 않으려고 영화가 개봉되고 ‘김복동’이란 이름이 알려지고 할머니께서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많은 분이 보고 느끼고 더 큰 하나가 되어 연대하는 의미로 문제해결에 관심을 가질 것 같아 하늘에서 기뻐하실 것 같아요.” 

-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어떠셨어요?

“할머니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 말도 잘 못 하시고 계속 아파하셨거든요. 제가 할머니 보고 싶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나도’리고 하시더라고요. 말도 못 하셨는데 ‘나도’라고 하셔서 할머니 사랑한다고 할머니도 ‘나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할머니와 저의 마지막 나눈 대화였어요. 그런 뒤 몇 시간 후 끝까지 싸워달라는 말씀과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관심 가져달라고 하셨어요. 그것과 함께 아베 일본 총리에게 심한 욕을 하시더라고요.

마지막 순간 할머니께서 너무 고통스럽게 가셨거든요. 한 맺힘을 풀지 못하고 항상 병상에서 하셨던 말씀이 더 살고 싶다셨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 후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막중하셨던 거 같아요. 그러나 그런 걸 해드리지 못하고 옆에서 지켜보는데 할머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켜보는 게 힘들고 마음 아팠어요. 할머니 돌아가실 때 너무 울었던 거 같아요.” 

- 시사회 때 처음 보셨다고 들었어요. 어땠어요?

“송원근 감독님께 너무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영화가 영화로서 만들어질 때 극장에 걸릴지 걱정이 앞섰거든요. 그런데 송원근 감독이 할머니를 만나 뵐 때나 취재를 나갈 때 집안일처럼 하면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느낄 수 있더라고요. 이 영화 개봉하면 송 감독에게 가장 먼저 박수쳐 드리고 싶어요.” 

- 직접 영화 만들 생각은 안 하셨어요?

“처음엔 직접 제작하려고 했는데 혼자 하다 보니 주변 여건에 대한 여러 가지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송원근 감독이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세월호 1주기 때 다큐 제작했잖아요. 제가 며칠 따라다녔거든요. 그때 제작 임하는 모습이 너무 전투적이고 꼼꼼하고 자기 일처럼 책임감 가지고 직업의식을 넘어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그 모습에 반해서 할머니 다큐영화 제작해줄 수 없냐고 제안했죠. 흔쾌히 응해주셔서 좋은 작품이 나온 거 같아요.” 

   
▲ 김복동 할머니와 병상에서 마지막 찍은 사진. <사진=김정환씨 제공>

- <김복동> 촬영 대부분 몽구 씨가 하신 거로 알아요. 처음 어떻게 김복동 할머님을 기록하게 되었어요?

“2011년에 천 번째 정기 수요시위를 앞두고 할머니께서 타고 다니신 승합차가 너무 낡아 고장이 자주 나고 길가다가 시동도 꺼지고 브레이크도 말을 안 들어서 위험하다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그래서 모 자동차 회사에 협찬해 줄 수 없는지 공문 보냈는데 자동차 회사는 정치적 이유로 거절 했다고 하더라고요. 차라리 우리가 할머니 말이 돼 드리자고 하고 SNS 모금을 통해서 중고 승합차로 바꿔드리기로 하고 모금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인 거예요. 그래서 풀옵션 새 차로 해드렸죠. 그때부터 할머니와 인연이 된 거예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려드렸더니 할머니는 더 저에게 잘해주시고 하다 보니 김복동 할머니께서 손주로 맞아주셨어요. 그때부터 8년 동안 찍은 거죠.” 

- 그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 있으셨어요?

“제가 미디어 몽구로 활동한 지 15년 차 되거든요. 처음 취재할 마음을 먹고 찾아간 것이 일본 대사관 앞 정기 시위 현장이었어요. 그때가 2005년이거든요. 휴대폰으로 찍으며 다녔거든요. 할머니들은 한일 정부에 불만이 많았어요. 그때 할머니들께서 하셨던 말씀이 너무 인상에 남고 충격적이라 관심을 가진 거예요.”

- 할머니와 친해지기 전후로 위안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게 있으신가요?

“저는 특별히 달라지진 않은 것 같아요. 왜냐면 그런 문제의식은 할머니 알기 전부터 수요 집회 가서 알게 되었고 할머니와 만나서 가까워졌고요. 할머니께서 밖에 나가 활동하고 들어오면 제가 하는 역할은 할머니께 웃음 드리는 역할 많이 했거든요. 할머니가 고령이라 힘들어하면 웃음도 드리고 그러면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현장에 나가서 열심히 싸우는 역할 했어요. 손주 역할이죠.” 

- 할머니 병상에서 생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던데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너무 고통스럽게 돌아가셨거든요. 그런 걸 지켜보면서 뭘 못 해 드린다는 미안한 감이 있잖아요. 늘 강인한 모습만 봐오다가 그렇게 마지막 병상에서 힘들어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동안 봐온 모습과 다르게 보여 안타까웠고요. 마지막 병상에서까지 문제해결을 위해 싸우는 모습 있잖아요. 예를 들어 수요시위에 나가셔야 하는 데 몸이 아프니 못 나가잖아요. 윤미향 대표님이 할머니 병상에 누워 구호 외치는 걸 찍어 집회 현장에서 틀어주거든요. 그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우시는 의지 같은 게 너무 인상에 강하게 남았어요.

그리고 할머니께 가족이 있어요. 가족을 기다리셨나 봐요. 왜냐면 아무리 주변에 할머니 챙겨주시는 분이 있다 하더라도 진짜 가족이 그립고 보고 싶잖아요. 그러나 찾아오지 않았던 것에 대한 복잡함도 있었던 거 같고요. 그런 거 때문에 더 힘들어하신 거 같고요.

병상에 계실 때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가장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 듣고 울었던 기억이 나고요. 차츰차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낄 때마다 너무 가슴 아팠어요.” 

- 8년이란 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니잖아요. 뒤돌아보면 어떠셨어요?

“제가 할머니 늘 만날 때마다 제가 가진 웃음과 재롱을 할머니에게 다 드린 거 같고 할머니가 지치지 않도록 열심히 싸우는 데 더 힘을 얻어서 뒤에 든든한 후손들의 버팀목이 있다는 걸 실제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돌아보면 할머니께 최선을 다해 손주 역할을 다 해드린 것 같아 더 잘해줄 걸이란 후회는 없어요. 다만 시간이 멀어지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잖아요. 보고 싶다는 게 커져요. 지금은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 다큐 영화 <김복동> 제작진이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김복동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갔다.<사진=김정환씨 제공>

- 언제 생각나세요?

“수요 시위 현장 가면 늘 할머니가 계셨거든요. 시위 현장 간다거나 아베 총리 관련 기사 같은 걸 볼 때 아니면 거리에서 농성하는 분들 있잖아요. 할머니는 항상 거기 가서 그분들 품어 위로해주고 용기 줬거든요. 어디 갈 때마다 생각이 스쳐요. 가장 보고 싶을 땐 제가 얼마 전 아기 낳았거든요.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 보고 싶어 하셨어요. 아기 못 보시고 가신 거도 가슴 아파요.”

“경제 보복, 아베 엄청 비판하면서도 일본 국민들 위로하셨을 것”

- 몽구 씨가 기억하는 김복동 할머니는 어떤 분이었어요?

“ 마음이 따뜻한 할머니셨어요. 어디 앞에 가면 늘 기둥처럼 강인한 모습만 보이지만 제가 가까이에서 봤을 땐 강강약약 정신을 실천하셨던 분이에요. 강자 앞에선 강하시고 약자 앞에선 약하셔서 할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선한 영향력 있잖아요. 그걸 늘 거리에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시며 용기를 주셨던 거 같아요. 그분들에게 다가가서 ‘우리도 열심히 싸우는 데 문제해결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달라’거나 아니면 지켜보고 응원할 테니 힘내라는 말씀이나 그런 행보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할머니께서는 늘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분들의 대변인 역할 하신 분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 그럴 수 있으셨던 힘은 뭐라고 보세요?

“할머니께서 거리에 나와 힘들어하시는 분의 아픔이나 억울함 같은 게 뭔지 아시고 겪어 보셨고 그에 대한 마음을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힘이 그런데 있지 않았나 싶어요,” 

- 할머니 8년 동안 기록하셨잖아요.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소개하고 싶은 장면 있을까요?

“할머니께서 일본 정부 공식 사죄보다 바랐던 게 화해치유재단 해산이었어요. 그걸 진선미 장관이 했죠. 이건 할머니가 이긴 싸움이죠.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하는 날 YTN에서 속보 나오는 걸 제가 휴대폰으로 할머니께 들려줬어요. 할머니는 미소를 띠며 이겼다고 기뻐하셨던 모습이에요.” 

- 소녀상 관련 보도가 간혹 나오잖아요. 그 보도 보면 남다를 것 같은데.

“마음 아프죠. 가끔 훼손당하거나 조롱당하고 했던 기사 접할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더 열심히 소녀상에 대해서 잘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 지금 일본 경제 보복 문제가 나라가 어수선하잖아요. 할머니가 지금 계셨다면 어떤 말씀 하실까요?

“지금 할머니가 계신다면 아베 총리에게 엄청 뭐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일본 국민에게는 위로하셨을 것 같아요. 작년 이맘때 김복동 할머님 모시고 일본 간 적 있거든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일본 시민들에게 강연한 적이 있어요. 어떤 말씀 했냐면 ‘우리는 위로금 받을 수 없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받았다. 우리 말 안 들으니 촛불로 박 대통령 쫓아내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많은 게 바뀌고 더 강해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말씀 속에 얼마나 하고 싶던 말씀이었는지 느낄 수 있더라고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우린 두 번 다시 지지 않을 거란 발언했잖아요, 할머니의 우린 강해지고 있다는 발언을 입증해준 것 같고 할머니 말씀처럼 우리가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한국인 중에도 위안부를 폄하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주장 들으면 어때요?

“그런 걸 반응 하지 말아야 해요. 쉽게 얘기해 주옥순 씨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관심 받으려고 그러는 거 같아요. 그런 말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어요. 신경 쓸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고 피해자들이 생존해 계시는데 그런 거까지 신경 쓸 가치 없다고 생각해요. 신경 쓰면 머리 아프니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400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렸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1) 할머니가 참석해 “이렇게 더운데 많이 오셔서 감사하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게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go발뉴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도 <GO발뉴스> 읽고 기자들 알기도 하는 데 관심 가지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잖아요. 망각하면 나의 문제가 되고 함께하면 우리 문제가 되는 데 제가 15년 동안 수많은 현장을 다녔거든요. 그러면서 느꼈던 것이 뭐냐면 우리나라 사회 현인 중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게 할머니들 명예 회복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문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끝까지 떠나지 않고 관심 가지는 게 할머니들 계실 때 사과 받아야 하잖아요. 할머니가 안 계시면 더 안 하죠. 지금도 사과 안 하는 데 생존자들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한마음이 되어서 관심 많이 가져주면 좋겠어요.

영화 <김복동>도 많이 보시면 좋겠고 시간 안 되시면 예매해서 선물하면 좋잖아요. 수익금 전액은 제작진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서 쓰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 보고 알리는 것만으로도 문제에 동참하는 거라서 관심 많이 가져 주시면 좋겠어요.”

이영광 기자 

#고발뉴스_민동기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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