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읽기] 김영철 이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공개석상 모습 드러내
<‘근신설’ 김여정, 53일 만에 재등장… ‘숙청설’ 김영철도 연이틀 공식석상에>
오늘(4일) 한국일보가 보도한 기사 제목입니다. ‘조선일보에 의해’ 숙청됐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공식 석상에 연이틀 모습을 드러낸 데 이어 역시 ‘조선일보에 의해’ 근신을 당했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내용입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 수행원에 김여정 제1부부장이 포함됐는데 김 부부장은 리설주 여사 바로 옆에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의해’ 근신 조치를 당했던 사람이 갑자기 ‘최고 존엄’ 가까운 곳에 등장해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어제오늘,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조선일보 기사’는 오보입니다. 그것도 명백한 오보. 이쯤 되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독자들에게 사과하고 정정보도 하는 게 순리입니다. 아니 상식적인 언론의 태도입니다.
▲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를 관람했다고 3일 보도했다. 이날 공연에 최근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여정(왼쪽 두번째)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관람을 수행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출처=노동신문, 뉴시스> |
‘조선일보에 의해’ 숙청·근신 조치된 사람들 공개석상에 등장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오늘(4일) ‘정신승리 기사’를 내놓습니다. 일단 조선일보 오늘(4일) 기사는 김여정 부부장의 등장 이전에 나온 기사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셔야 할 듯 합니다.
김여정 부부장의 등장은 오늘(4일) 아침에 연합뉴스 등을 통해 보도가 됐는데 조선일보 기사는 이미 지면을 통해 나온 이후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오늘(4일) 지면에 실린 조선일보 기사는 ‘상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나름 ‘정신승리’를 하는 건 좋은데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특히 익명의 취재원 등을 바탕으로 조선일보가 자신의 오보를 ‘쉴드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문제’의 조선일보 기사 잠깐 인용합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영철 징계가 조기에 일단락됐을 수도 있고,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혁명화 조치 중이던 김영철을 급히 등장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고위 탈북자 A씨는 ‘혁명화는 사상 재무장과 분발 독려를 위한 것으로 재기의 가능성이 열린 처벌’이라며 ‘1개월, 2개월, 3개월짜리가 있다’고 했다. 또 ‘김영철이 자아비판을 잘해 복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이날 방송에 출연, ‘여러 경로를 통해 김영철이 혁명화 갔다는 얘길 들었다’며 ‘숙청설을 불식시키기 위해 잠시 등장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영철이 자아비판을 잘해 복권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고위 탈북자 A씨의 발언 – 참 인상적이긴 합니다만 대체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그런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고위 탈북자 출신이라고 해서 현재 김영철 부위원장 상황을 잘 아는 것도 아닐 터인데 말이죠.
아무튼 오늘(4일) 조선일보 5면에 실린 <김영철 51일만에 등장… 처벌 끝? 미국 의식?> 기사는 ‘자신들의 숙청 관련 기사’가 오보가 아님을 방어하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문제는 그 내용이 대부분 ‘신빙성’이 없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등장하는 취재원들이 대부분 익명인 데다 실명 취재원이 내놓는 분석 역시 개인적인 추정일 뿐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중앙일보 “김영철 건강 악화, 중국 방문해 치료 받았다”
심지어 ‘조중동 연맹’의 한 동지(?)인 중앙일보가 오늘(4일) 10면 <“김영철, 4월 중국서 보름간 치료”…50일 만에 김정은 동행>에서 사실상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중앙일보 기사 잠깐 보시죠.
“대북소식통은 ‘김 부위원장이 4월 하순 보름가량 중국을 방문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김영철이 평소 당뇨 등 성인병을 앓았고, 종양이 발견되는 등 건강이 악화해 중국을 찾았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그의 위상이 하노이 회담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일각의 관측처럼 문책을 당하거나 좌천된 건 아니다’며 ‘통전부장 자리를 내려놓은 것도 건강상의 이유가 작용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김영철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김혁철 국무위 특별대표와 중국을 찾아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는 소문도 있다.”
아무튼 조선일보의 지난달 31일 ‘김영철 숙청-김여정 근신’ 기사 보도 이후 쏟아진 다른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조선일보 숙청 보도’가 오보라는 명백해 지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도 2019년 5월31일 조선일보 1면 기사는 누더기가 된 상황인데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일보 기사’는 더 누더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깔끔하게 오보 인정하고 정정기사 내라는 얘기입니다.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
‘누더기 된’ 조선일보 기사 … 하지만 사과 가능성은 희박한 듯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일단 오늘 5면에 실린 조선일보 기사를 봐도 그렇고, 미디어오늘에 실린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 인터뷰를 봐도 ‘정정보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숙청설’을 보도했던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는 인터뷰에서 “현재 대미 협상이 추진 중인데 자신들이 김영철을 노역형에 처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면 인권 탄압으로 비칠 수 있다. 논란을 희석하려고 김영철을 다시 매체에 등장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김혁철이나 김영철 건은 오보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인터뷰는 어제(3일) 진행됐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근신 중이라던 김여정 부부장이 등장했습니다. ‘시간이 계속 지나고 있는데’ 오보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정신승리’ - 언제까지 계속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이미지 출처=미디어오늘 홈페이지 캡처> |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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