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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 불편한 <조선> 최보식, 10년 전엔 “盧 잠재의식에 박정희 있다”

기사승인 2019.05.25  11: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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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궤변·자가당착 넘어 제 이익에 몰입한 분열의 언어

“당초 봉하마을에 들른 것은 그의 이해할 수 없는 몰락(沒落)에 대해 쓸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제 독자들은 그 이름만 나와도 질린다. 글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 꽃피는 봄날에는 좋은 생각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는가.”

짐작했겠지만, 여기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킨다.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2009년 4월 28일 <‘바보 변기영’과 ‘바보 노무현’의 차이>라는 칼럼에서 위와 같이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비아냥댔다. 

   
▲ 2009년 4월29일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 ‘바보 변기영’과 ‘바보 노무현’의 차이” 칼럼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내일 그런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다”고 글을 맺었듯, 이 칼럼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굴욕을 감내하기 하루 전 세상에 나왔다. 이 칼럼에서 최 선임기자는 6년 만에 봉하마을을 들렀다며 위와 같은 감상을 늘어났다. 

그러고서는 34년째 ‘천진암 대성당’을 짓고 있다는 한 노신부의 일화를 들려준다. 역시나 짐작했겠지만, ‘노무현 아방궁’ 프레임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최 선임기자는 봉하마을 사저를 가리켜 이렇게 적었다. 기록이 이렇게 무섭다. 지금에야 보수언론의 저 프레임이 무너졌지만, 지금도 ‘노무현 아방궁’ 세 글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칼럼이 그 프레임을 완성시켰던 셈이다. 지극히 악의적이다. 

“골목 입구에 쳐놓은 폴리스라인에서, 연고동색 목재와 유리로 된 멋진 대통령 사저를 바라볼 수 있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빌린’ 15억원도 이 집을 짓는 데 썼다고 한다. 서울과 지방의 땅값 차이는 있지만, 역대 대통령의 사저 중 가장 넓다. 재임 시절 그가 청와대를 방문한 노사모 핵심 멤버들에게 ‘집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자’고 약속했을 만하다.”

지난 24일, 이 최보식 선임기자가 10년 만에 다시 봉하마을을 칼럼에 올렸다. <光州와 봉하마을, 누가 불편하게 만드나>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그 논리가 하도 해괴망측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자체로 불편한 칼럼이지만 인용해 보면 이렇다. 

노무현 10주기가 불편한 조선일보 

“노무현 10주기를 맞아 봉하마을에 집결한 당정청 핵심 인사, 현직 광역단체장, 과거 정부 인사 중에도 당시 이 총리 같은 발언을 했던 이가 꽤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 '가치 추구' '원칙 소신' '반칙 특권과의 싸움' '새로운 정치의 씨앗' 등 좋은 말만 넘쳐나고 있다. 노무현과 대립각을 세웠던 보수 언론조차 그가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이었는지를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때와 지금 노무현 평가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설령 그때 안 보였던 것이 지금 보이게 됐다 해도, 이낙연 총리처럼 갑자기 180도 사람이 달라질 수는 없다. 단지 지금의 권력과 시세(時勢)에 편승해 입장을 그렇게 바꿨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이 안 들어섰으면 이 총리도 봉하마을에 안 갔을 거고 지금처럼 성대한 10주년 추모 행사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불편한 것은 누구인가. 서거 10주기를 맞아 보수정치인들까지 너 나 없이 ‘정치인 노무현’을 소환하고 ‘노무현 앓이’를 앓는 작금의 분위기를 불편해하는 것은 최 기자 본인 아닐까. 2004년 노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이낙연 의원이 노무현과 다른 길을 갔다는 것은 유명하다. 

최 기자는 구태여 이낙연 의원이 2004년 대정부 질문을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던 내용을 인용했다. 마치 그때 그랬던 의원 이낙연과 지금의 총리 이낙연은 왜 바뀌었냐는 듯. 아뿔싸. 여기서 박정희가 소환된다. 최 기자는 “현 정권에서 ‘박정희 가치’는 한낱 조롱거리로 여겼다”고 쏘아 붙인다. 

최 기자는 “물론 노무현은 이런 대접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면서도 “현 정권과 지지 세력이 주도하는 노무현 10주기나 각종 문화 축제에 대해 보수 쪽 사람들 마음속엔 어떤 불편함이 있다”고 말한다. 그게 다 박정희(혹은 박근혜) 때문이다. 본격적인 궤변은 지금부터다. 왜 노무현만, 그쪽 가치만 인정받고, 보수는, 박정희는, 보수는 ‘독자재의 후예’로 몰아붙이냐는 항변. 그것이 ‘독재자적 발상’이라는 비약. 궤변 맞다. 글을 더 읽어 보자. 

“이는 자기들만 가치 있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도덕적 오만(傲慢)과 같은 것이다. 얼마 전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한 발언도 그렇다. 

천안함 피격은 북한과 무관하다든가, 세월호 침몰에는 정권이 개입됐다는 주장에 대해 침묵하던 대통령이 왜 이 부분에만 민감했나.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세력은 민주화 가치를 지키는 쪽이고 한국당을 비롯한 안보 보수 쪽은 독재 정권 잔당으로 입력돼 있는 것 같다.

‘광주 사태’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화하고 특별법으로 보상해준 쪽은 문 대통령이 폄하한 ‘독재자 후예’인 보수 정권이었다. 그렇다 해도 개인은 다른 각도에서 광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민주화를 거쳐 획득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이를 ‘독재자의 후예’ 운운하는 게 바로 독재자적 발상이다.”

   
▲ 2019년 5월24일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 光州와 봉하마을, 누가 불편하게 만드나” 칼럼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10년 전의 궤변과 오늘의 자가당착 

노무현과 박정희를 연결시키는 최 기자의 칼럼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지난 2009년 6월,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최보식 기자는 <‘새마을 노래’를 불렀던 노무현>이란 칼럼을 썼다. 참여정부 시절 국빈 방문한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대통령과 막 정상회담을 끝낸 뒤 만찬장에서 노 전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 노래를 부른 일화를 전한 뒤, 최 기자는 이렇게 썼다.  

“노무현과 박정희가 연결되는 것에 대해 좌·우파 어느 쪽도 못마땅할 것이다. 한쪽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사후(死後) 인기가 박정희와 겹쳐 또 더 올라갈까 걱정할지 모른다. 반면 촛불과 사진을 들고 아직도 덕수궁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그의 추종세력들은 외국정상 앞에서 ‘박정희의 새마을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는 노 전 대통령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내 몸의 반쪽을 잃은 것 같다’며 ‘동질성’을 강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 괴로울 것이다. 자신의 동지이며 계승자로 믿고 싶었던 그의 잠재의식에 ‘박정희’가 들어 있다는 것을.

물론 노 전 대통령은 현실에서 박정희 편도 아니었고, 실제 그런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다. 재임 기간 내내 소란스러운 말의 갈등과 반목, 적개심이 끊이질 않았을 뿐이다. 자기가 마음먹었던 것, 자신의 내면(內面)에서 닮고 싶었던 것과는 어쩌면 다른 길을 걸어갔는지 모른다. 대부분 ‘섣부르고 무모한’ 이념추종자들이 그의 동반자였다.”

침소봉대도 이런 침소봉대가 없다. 그럴 만한 세대인 노 전 대통령이 개발도상국 정상 앞에서 ‘새마을 노래’를 부른 것을 두고 “잠재의식에 박정희가 들어 있다”고 단언하는 꼴이. 아니, 이 정도면 ‘노무현도 사실은 박정희를 닮고 싶었던 것’이라는 소설에 가깝다. 

   
▲ 2009년 6월30일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 ‘새마을 노래’를 불러던 노무현” 칼럼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동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서려있으며, 지지자들을 ‘섣부르고 무모한 이념추종자들’로 폄훼하기까지 했다. 서거 직후 불타올랐던 추모 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던 심산이었을까. 그리고는 짐짓 이렇게 충고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지나면 자기가 꿈꾸던 자리에서 얼마나 다른 쪽으로 휩쓸려왔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출발할 때 털끝의 차이가 나중에는 천리(千里)나 벌어져 있다. 심지어 ‘결코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상대를 비웃던 자신이 눈떠 보니 그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10년 전, 노무현을 비웃고 그의 사후엔 “노무현이 박정희를 닮았다”며 모독했던 최 기자는 이제 문재인 정부 들어 보수 정치인들까지 재평가하는 정치인 노무현을 시기하는 중이다. 그리고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왜 박정희는, 보수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느냐며, 그것이 독재적인 발상이라고 겁박한다. 궤변과 자가당착을 넘어 가히 진영과 이념, 제 이익에 몰입한 분열의 언어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참여정부 당시 언론을 보는 일이 끔찍했다고 털어놨다. 맞다. 이런 언어들이 바로 정치인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최 기자는 부디 “상대를 비웃던 자신이 눈떠 보니 그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라던 10년 전 자신의 글을 다시 읽어 보시기를.  

   
▲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을 하루 앞둔 2009년 4월 29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이 많은 취재진들로 북적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하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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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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