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읽기] 국가기간통신사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사고…하지만 조선일보는?
<文대통령 밑에 인공기… 연합뉴스TV 보도국장 보직해임>
오늘(12일) 조선일보 6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제목만 보면 이른바 ‘연합뉴스 TV 방송 사고’를 스트레이트 형식으로 보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사안 자체의 심각성’보다는 ‘이상한 맥락’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연합뉴스 TV의 ‘후속조치’가 조선일보 지면으로 오면 청와대 가짜뉴스 대응 조치에 따른 ‘후속조치’로 읽힙니다. 참 ‘조선일보스러운’ 연합뉴스 TV 방송사고 기사입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국가기간통신사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방송사고’ … 조선일보가 주목한 것은?
조선일보가 이 기사를 통해 ‘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는 기사 초반부에 나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방미(訪美) 보도 과정에서 문 대통령 사진 밑에 북한 인공기를 배치해 논란을 빚은 연합뉴스TV가 11일 해당 보도 책임자를 보직 해임했다. 청와대가 강원도 산불 당일 문 대통령 행적 관련 가짜 뉴스 등에 대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힌 지 6시간 만에 연합뉴스TV가 이 같은 조치를 한 것이다.”
마치 청와대 강력 대응방침에 ‘쫄아서’ 연합뉴스 TV가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최소한 조선일보가 ‘객관적인 상황’을 전하려면 해당 사안이 가지는 문제점 등을 다각적으로 짚어줬어야 했다고 봅니다.
일단 조선일보 기사에는 연합뉴스 TV 방송사고에 대한 판단이 없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전하는 뉴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하단에 북한 인공기 이미지를 배치한 것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조선일보 기사에선 찾을 수 없습니다.
특히 그런 ‘실수’를 한 언론사가 매년 정부로부터 300억의 재정보조금을 받고 있는 국가기간통신사라는 문제의식도 없습니다. 강원 산불 특보방송을 제대로 하지 못한 KBS를 향해 매서운 질타를 했던 조선일보가 국가기간통신사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방송사고에 대해선 ‘질타’보다는 ‘이상한 맥락’을 주목합니다.
연합뉴스 TV의 이번 인사조치와 사장 명의의 사과문 게재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걸까요? 아니면 이 같은 조치가 가짜뉴스에 대한 청와대 대응이 나온 이후 나온 게 문제라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청와대 대응과 별도로 ‘이번 방송사고’는 인사조치와 사과문 발표가 필수라고 보는데 조선일보 기사 맥락을 살펴보면 저와는 ‘포인트’가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봤을 때 더 큰 문제는 연합뉴스 TV 해당 편집자 ‘해명’에 있습니다. 해당 편집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해 방미길에 오른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북한 인공기를 배치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건 충격입니다.
▲ <이미지 출처=연합뉴스TV 화면 캡처> |
팩트를 다루는 저널리즘에서 ‘팩트’를 왜곡한 의도성이 투영된 심각한 문제
뉴스가 항상 건조하고 딱딱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달방식의 문제여야 합니다. 뉴스는 기본적으로 팩트를 다루는 저널리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납득할 수 없는 ‘의도’를 가지고 ‘국기’를 바꾸는 행태를, 국가기간통신사에서 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수석대변인’ 논란이 불거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이미지’가 어떻게 악용되고 왜곡될 것인지 뉴스를 다루는 ‘관계자들’이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매년 연합뉴스사에 지급하는 연 300억 원 규모의 재정보조금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온 이유입니다.
특히 연합뉴스TV는 지난 4일 ‘재벌 3세 마약 사건’을 다룬 자료 화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일베 사진을 실어 도마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같은 사고가 다시 터졌습니다. 정리하면, 일단 분명한 것은 해당 편집자 해명을 통해 이번 사안이 단순 실수가 아니라는 건 확인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청와대 강력 대응방침에 ‘쫄아서’ 연합뉴스 TV가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구성했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봐도 참 ‘조선일보스러운’ 기사인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12일) 조선일보 기사에서 제가 가장 ‘고약하다고’ 본 것은 마지막 대목입니다. 팩트 관계를 뻔히 알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명확히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전하는 형식’을 통해 결과적으로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잠깐 인용합니다.
“청와대는 이날 강원 산불 당일 문 대통령 행적을 둘러싼 의혹 제기와 관련, ‘노영민 실장 명의로 본 사안에 대해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지목한 ‘가짜 뉴스’는 문 대통령이 산불이 발생한 지난 4일 저녁 ‘신문의 날’ 행사를 마치고 언론사 사장과 술을 마셨다는 등의 내용이다.”
‘신문의 날’ 행사 마치고 정말 술을 마셨는지는 팩트체크 가능한 사안 … 공방으로 보도할 일 아니야
‘신문의 날’ 행사에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도 참석했고, 조선일보 기자를 비롯해 언론사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일 ‘신문의 날’ 행사를 마치고 언론사 사장과 정말 술을 마셨는지는 ‘간단한 취재’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해당 사안을 ‘가짜뉴스’로 비판하지 않고 이를 ‘청와대 강력대응과 가짜뉴스 내용’을 묶어 전달하는 방식으로 기사를 구성합니다. 이렇게 되면 ‘가짜뉴스’는 ‘청와대 대응’과 동급이 됩니다.
조선일보가 이걸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팩트체크가 가능한 사안을 공방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듯 합니다. 팩트체크가 가능한 ‘가짜뉴스’를 주류 언론이 비판 없이 언급해주는 것만으로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3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에서 기념떡 커팅을 한 후 박수치고 있다. 왼쪽부터 장대환 한국신문협회 고문(매경미디어그룹 회장), 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 이병규 한국신문협회장(문화일보 회장), 문 대통령, 김종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방상훈 한국신문협회 고문(조선일보 사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손경식 경총회장. <사진제공=뉴시스> |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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