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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사망 소식에 30년 전 사망한 문송면 생각나더라”

기사승인 2019.02.19  16: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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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광의 발로 GO 인터뷰 306] 박석운 ‘김용균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지난해 12월 11일 새벽 1시 태안 화력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영결식이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김 씨가 사망한 지 62일 만이다. 이날 서울의 최저 기온은 영하 11도까지 떨어지는 등 한파가 닥쳤지만 낮 12시 즈음부터 진행된 영결식에는 국회의원과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 스텔라 데이지 참사 희생자 유가족, 등 시민 3천여 명이 참석했다.

62일 만에 장례를 치른 소회가 궁금해 지난 13일 서울 정동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내 커피숍에서 박석운 ‘김용균 시민대책위’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박석운 공동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박석운 ‘김용균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사진=이영광 기자>

“고 김용균 어머니 적극 나서…‘위험의 외주화’ 근절 위한 공익활동재단 추진”

- 지난해 12월 태안 화력 발전소 석탄 운반 컨베이어에서 사망한 김용균 씨의 장례식이 62일만인 2월 9일 열렸어요. 소회가 있을 거 같아요.

“태안 화력 발전소에서 최근 8년간 작업하다가 12명이 사망했어요. 그런데 제대로 안전조치 안 하고 심지어 노동부에서 안전점검 나왔는데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건 단순 산재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살인이라고 볼 수 있죠.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전조치를 안해서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런 거야 말로 전형적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볼 수 있고요.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만연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의 모순이 쫙 깔린 현상이 되었어요.

두 번째 김용균 노동자의 유언처럼 되어있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 만납시다’는 이 부분이 강력한 메시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섰고 또 일반 산재 사망사고보다 훨씬 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볼 수 있죠.

세 번째로 부모님들이 헌신적으로 아들 문제만이 아니라고 한 게 국민적으로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던 거죠. 말하자면 용균이 친구들과 또 다른 사업장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임을 당할 수 있어서, 또 다른 희생을 막아야 된다고 열심히 헌신적으로 호소하고 다녔잖아요. 이게 국민적 공감대가 큰 거예요. 사실 어머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김용균 노동자 아버지가 쓰러지고 난 뒤에 병원 실려 가면서 ‘내가 쓰러지면 우리 용균이 어떡하냐’라고 하셨대요,

어머님은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 구미에 있는 전자부품 만드는 2차 하청회사에서 7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했어요. 근무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쉬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머니가 사회 문제에 생각 안 하고 살았는데, 본인이 닥쳐보니까 이 참사가 사회적 구조적 문제라는 걸 깨달으신 거예요. 어머니가 아들을 잃게 되면서 딱 깨우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호소했는데 그 호소가 진정성이 느껴지니까 국민들의 마음이 많이 움직이게 되었던 것이지요.

또 하나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었거든요. 회사에 들어간 지 3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노동조합에서 굉장히 헌신적으로 투쟁하게 되었고, 민주노총도 같이 움직이게 되고, 또 사회 각계가 모두 다 움직이고 하면서 전체적으로 지속적인 투쟁이 가능했던 것이죠. 국민적 공감대가 굉장히 높아서 전 국민이 마음적으로 모두 다 참여한 셈이죠. 그러면서도 투쟁의 중심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성과 있는 투쟁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왼쪽 세번째)씨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유가족 및 시민대책위원회 대통령 면담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태의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박석운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아버지 김해기씨, 이모 김미란씨, 이준석 태안화력 지회장. <사진제공=뉴시스>

- 분위기는 어땠어요?

“장례식 분위기는 아주 엄숙이라기보다는 경건한 분위기, 슬픔 속에서도 경건함을 유지하며 눈물도 많이 흘리고 그랬죠.” 

- 김용균 씨 사고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24살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30년 전에 문송면 군 생각이 났어요. 문 군은 1988년에 15살로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는데요. 그 친구 집이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가 소재한 바로 그 태안이었어요. 그 당시에 중학교 졸업반이었는데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 못 갈 상황이니까 서울에 와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 다니기 위해 교감 선생님 손잡고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왔어요.

영등포 양평동에 있는 협성계공이라고 온도계, 압력계 만드는 중소기업에 취업했다가 두 달 만에 수은중독에 걸렸는데 산재 인정을 제대로 못 받고 굉장히 고생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몇 달 만에 산재 인정을 받았는데 받은 지 며칠 만에 사망을 했어요. 그 당시에 제가 상담도 하고 같이 장례도 치렀어요. 태안화력이라고 하니 바로 태안 출신인 문 군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참사 상황이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구의역 김 군 사건, 제주도 실습생 이민호 군 사망 사건 등 당시에도 굉장히 국민적 관심도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재발 방지 대책이 제대로 시행이 안 되었던 것이죠. 통계로도 나와요. 뭐냐면 30년 전에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 숫자가 1년에 약 2,300~2,400명 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2017년도의 산재 사망자 숫자가 정부 공식으로는 1,957명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정부통계에 안 잡히는 숫자가 있어요. 택배 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까지 합치면 약 2,350~2,4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렇다면 30년 동안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선진화 되었는데 산재 사망 숫자는 똑같다는 거예요.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는 거지요.” 

- 예전에도 안 잡힌 게 있지 않나요?

“그 당시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에 비정규직들이 많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통계에 안 잡히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거죠. 산재 피해자 중에 비정규직이 많이 차지하죠. 30년 전과 달라진 게 딱 하나 있어요. 과거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차이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대부분 비정규직이 산재 문제를 집중적으로 겪고 있죠.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이주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취약 노동자층에게 산재 직업병이 집중되고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죠.” 

- 설 전에 장례 치르려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농성도 하셨던데.

“한 달 반이 되도록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었죠. 사실 태안의 빈소에 가보고 싶은 사람들도 너무 먼 곳이니까 가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빈소를 서울로 옮겨서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빈소만 옮겨서는 또 안 되니까 설전에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는 요구를 걸고 대표단 6명이 광화문 광장에 천막치고 단식 농성하게 되었죠. 결국 15일간 단식하게 되었는데 그사이에 집회가 계속 진행되었고 1인시위 내지 피케팅도 많이 했고요. 또 수많은 각계각층 사람들이 농성장 지원 방문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농성장 분위기는 따뜻한 공감과 지원의 분위기였고요.” 

   
▲ 9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노제 운구 행렬이 광화문 광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노제 뒤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진행, 장지는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이다. 마석 모란공원은 전태일 열사 등의 묘지가 있는 노동·사회 열사들의 상징적인 장소다. <사진제공=뉴시스>

- 날씨가 추웠는데 힘드시진 않았어요?

“날씨가 조금 추울 때가 있었어요. 날씨가 춥고 눈도 오고 비도 와서 좀 여러 가지로 좀 난감한 상황이 있긴 했죠. 그래도 어쨌든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발전기를 가동하여 전기장판을 쓸 수 있어서 좀 나았어요.” 

- 단식하며 느끼는 것도 있을 거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단식을 많이 해봤어요. 3~4년에 한 번씩은 20일 이상씩 단식을 한 셈이 되는데요. 저도 좀 나이가 있으니까 단식하는 중에도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았어요. 사실은 다들 걱정했는데, 저는 단식을 아주 체계적으로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아침마다 목욕탕에 가서 냉온욕을 하는데, 냉온욕이 체력유지에 꽤 도움이 되었지요.

김용균 노동자의 희생, 참 안 되었잖아요. 군대 갔다 와서 일자리 찾다가 공기업 하청회사의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취직한 지 석 달 만에 너무나 참혹하게 죽음을 맞게 되었는데 참 안됐죠. 김용균 노동자의 희생과 부모님의 절실한 호소 덕분에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큰 흐름, 사회적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변화가 완전히 일어난 건 아닌데 변화가 시작되는 좋은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번엔 달라질까요?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구의역 김 군, 제주도 실습생 이민호 군 참사가 발생하고, 또 이번 참사 등에서 보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 희생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래도 이번에 핵심적인 사회적 쟁점이 되었잖아요. 언론에서 끊임없이 보도했고요, 그래서 관심도 커지고 또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공감대가 계속 늘어났고, 특별히 발전소의 김용균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던 2,300명의 동료 노동자들이 어쨌든 비정규직에서 공공기관의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급여도 ‘계약임금’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김용균 노동자도 계약임금은 월 445만 원이었는데 이것저것 다 떼고서 실제 받은 건 200만 원 정도잖아요. 절반 정도밖에 못 받았던 것인데, 이번에 합의할 때 계약임금대로 다 지급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임금도 상당히 올라가는 변화가 생기는 것이고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가 ‘내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 용균이와 비정규직 친구들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서울로 이사 와서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를 근절시키는 활동에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산재직업병 피해자의 유족들인, 황윤희 씨 아버님, 이민호 군 아버님, 구의역 김 군 부모님, 이런 분들하고 힘을 합쳐서 모임을 만들어서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시겠다고 하고 계셔요.

그리고 연관해서 이번에 합의 내용 속에 재단법인을 만들 수 있는 기금으로 회사에서 4억을 내기로 했어요. 거기다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나 사회 각계 시민들의 모금이 모이면,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한 공익활동재단으로 만들어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면서 앞으로 비정규노동자도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난 5일 시민 대책위가 당정과 합의한 건 어떻게 평가하세요?

“사실 미흡한 점이나 아쉬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발전소에의 직접고용을 요구했는데 그게 안 된 것이라든지 경상정비 부문의 한 3,000명쯤 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라는 방향성으로 노사정 협의체에서 정규직전환 방향을 만든다고 되어 있을 뿐, 정규직 전환방침이 확실하지 않아서 미흡해요. 그러나 2,300명은 공공기관의 정규직이 되죠. 임금수준이 2배 가까이 올라가는 이런 점들이나 또 중요한 점은 이번을 계기로 해서 위험의 외주화 근절과 노동조건 개선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미흡하지만, 또 의미 있는 그런 성과죠.” 

“문대통령, 굉장히 성의있게 해결 지시했지만 일선에서 이행 안해”

- 직접 고용이 왜 중요하나요?

“그 점이 왜 중요하냐면, 안전한 시설이나 작업환경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바로 직접 요구해서 안전조치가 쉽게 될 수 있지만, 하청이나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한 다리 두 다리 거쳐야 하고 만일 원청이 갑질을 하게 되면 거의 내려 먹이기 식으로 지시를 하게 되면 다른 얘기를 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죠. 원청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시와 통제를 하기 때문에, 이번 김용균 노동자의 경우도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시설 개선해 달라고 했지만, 전혀 개선이 안 된 상태에서 사고가 난 것이지요. 직접고용 정규직이 되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건이 될 거예요. 신분이 안정되니까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되는 거예요. 물론 정규직 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다 안전한 건 아니지만, 위험의 외주화를 끊을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추는 것이라고 봅니다.” 

- 원래 2인 1조인데 구의역도 혼자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번 합의에 2인 1조로 일할 수 있도록 2월 안으로 인력을 보충하기로 합의가 되었고, 두 번째로는 또 안전시설도 이번 달 안으로 설치한다는 것으로 합의되어 있고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중요한데 이걸 제대로 하기 위해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독립적인 그런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진상규명위 위원장이나 진상규명위원을 피해자와 시민대책위 측에서 추천하도록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고만이 아니라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진상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자 처벌을 하고 구조적 문제점도 개선책을 만드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합의 내용입니다. 재발 방지 측면과 관련해서는, 우선 법제도개선이 되어야 하는데, 작년 말에 법 개정이 되면서 미흡하지만, 일정 수준 개선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안전시설 등 안전조치를 하기로 했고 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시키는 문제가 한편으로는 미흡한 점이 있지만, 일정 수준 의미 있게 실현되었기 때문에 이번에 장례투쟁, 위험의 위주화 근절 투쟁은 일정한 성과가 있어서 앞으로 변화를 만드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문재인 정부 대처는 어떻게 보세요?

“이 참사가 발생된 이후에,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성의 있게, 서너 번 이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해결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거의 올바른 방침을 나름대로 정확한 조치를 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선에 있는 산업부나 발전사 회사 측에서는 이행을 안 하는 거예요. 우리가 노숙농성 등 장례 투쟁을 했는데, 대통령과 각 행정부처 장관들이 따로 놀고 공기업도 따로 놀고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면서 실제로는 실행이 안 되는 거죠. 단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 가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상태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20개월이 되도록 발전회사에서는 7,000~8,000명의 비정규직 중에서 정규직으로 된 사람이 30명 밖에 안됐어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두 달 동안 투쟁하면서 대통령의 지시도 제대로 이행이 안 되는 그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였는데, 대통령도 그걸 느낄 수 있을 텐데, 상황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태안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을 면담하고 있다. 이날 면담 자리에는 어머니 김미숙(왼쪽), 아버지 김해기씨(오른쪽), 이모 김미란씨, 박석운 고 김용균시민대책위 공동대표, 이태의 고 김용균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사진제공=뉴시스>

- ‘죽음의 외주화’를 끊어낼 언론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기고문을 쓰셨잖아요. 언론 보도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번 김용균 노동자 참사 관련해서는 언론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해 주셔서 이나마라도 성과를 내고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고 보고요. 특히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취재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적극 보도해 주신 언론에 감사와 격려를 드리고자 그 기고문을 쓰게 된 것입니다.

다만 언론 보도의 아쉬운 점은 공기업 분할 민영화의 구조적 문제를 심층 취재해서 보도한 사례가 매우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산업부나 발전사들이 마지막까지 버텼던 이유가 따로 있는 겁니다. 하청용역회사 중에 자유총연맹이 대주주인 회사가 있고, 사모펀드나 재벌기업도 들어와 있고요, 하청용역회사들이 불법 파견 방식으로 임금 착취하는 방식으로 위탁용역으로 들어와 있었던 거거든요. 이건 지난 정부들이 전력산업이나 에너지 산업 등의 공기업을 분할 민영화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던 것에서 기인합니다. 벌써 20년 이상 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이거든요. 이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심층 취재해서 제대로 알리는 이런 보도들이 굉장히 아쉬웠어요. MBC <스트레이트>에서 심층 보도한 것이 거의 유일한 사례인 것이죠.

그리고 사실은 빈소를 서울로 옮긴 다음에 그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당시 인용 보도한 기사들은 좀 있었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잘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심층 보도를 해야 하는데 좀 부족 했어요. 이번에 후속으로 심층 보도해 주시면 금상첨화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우리의 과제는 뭘까요?

“과제는 제일 큰 것이 위험의 외주화 이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과제입니다. 우선 이번에 발전소 비정규직에 대해 합의한 것을 굳히는 작업과 전체적으로 다른 부문으로 확산시키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관련해서 마침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님, 그리고 산재직업병 피해자의 유가족분들이 힘을 합쳐 나서시겠다고 결심하고 계신 이런 흐름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힘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을 계기로 삼아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또 위험의 외주화의 사슬을 끊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산재 사망률이 OECD 국가 중에 압도적으로 1위입니다.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기록인데요. 영국의 12배예요. 영국은 기업 살인법을 제정해서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였다는 거거든요. EU의 5배, 또 OECD 평균의 3배가 되는 거예요. 사실 최소한 OECD 평균 정도로라도 줄이려면 현재보다 산재직업병 사망자 숫자를 1/3 이하 수준으로 줄여야 되요. 그러려면 위험의 외주화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것이 핵심이지요. 왜냐면 대부분의 산재직업병 사례가 비정규직이나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에게 일어나는 문제기 때문에 이 사슬을 끊는 과제가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김용균 노동자가 유언처럼 이야기했던 비정규직 차별 철폐,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이 문제가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GO발뉴스>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독립 미디어로서 또 대안 미디어로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는데요, <GO발뉴스>가 이때까지 해 오신 것보다 좀 더 영향력을 확대 강화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 노동자의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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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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