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향 “가해자의 뻔뻔함 앞에 아무 소리 못내는 피해자들의 정부.. 이게 뭡니까” 절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28일 밤 10시 41분 향년 93세 일기로 별세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월1일 오전 6시30분이며, 장지는 천안망향의동산이다.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 님 약전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
고 김복동 할머니는 66세까지 이 땅의 여성으로, 67세부터는 일본성노예 생존자로서 30여년을 여성인권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은 이날 오후 가 뿐 숨을 몰아쉬며 생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할머니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페이스북에 남겼다.
할머니... |
윤 이사장은 그러면서 “60살 할머니가 90살 할머니가 되도록 그렇게 30년을 치열하게 싸워왔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범죄 인정도, 진정한 사죄도, 배상도 받아내지 못하는 이런 상황. 이게 뭡니까”라며 “가해자의 저 뻔뻔함 앞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있는 피해자들의 정부, 도대체 이게 뭡니까”라고 절규했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속아 전쟁터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 후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92년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며 인권‧평화 운동을 이끌었다.
앞서 같은 날 오전 7시30분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모 할머니도 향년 94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할머니의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된다.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17세이던 1942년 방직공장에서 퇴근하던 길에 동료 2명과 함께 군인에게 납치돼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만주로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해방 후 이 할머니는 “조선으로 가는 배가 있다”는 말에 돈 한 푼 없이 동료들과 항구를 찾아 조선인 선주에게 간청해 간신히 밀수선인 소금배를 얻어 타고 귀국했다.
김복동 할머니와 이모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공식 피해 생존자는 23명뿐이다.
김미란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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