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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 조재범, “예견됐다”는 빙상계…‘폭력의 온상’ 체육계는?

기사승인 2019.01.10  11: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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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태의 와이드뷰] ‘360년 형’ 선고한 미국 래리 나사르 사건에서 배워야

   
▲ <사진출처=MBC 화면캡처>

“(조재범 전 코치가 선수 시절) 맞으면서 운동했던 분은 아니셨거든요. 그런 걸 굉장히 싫어했던 분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는데, 코치하면서 많이 변하신 것 같더라고요. 조재범 코치가 여자 라커룸을 많이 들어가긴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들어가서 석희를 때리고 이런 건 알고 있어요.”

“(소치 때) 처벌이 생각했던 것보다 안 나왔고, 그 이후에도 거기에 대한 다른 부분에 대한 성(추문)에 관한 부분이 소문이 많이 돌았는데, 크게 처벌받거나 이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터질 게 터졌다라고 보는 시선이 많죠.”

요약하자면, 터질 게 터졌다. 빙상계 시각이 딱 그 짝이다. 9일 MBC <뉴스데스크>와 단독 인터뷰한 여준형 전 쇼트트랙 대표팀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빙상계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 빙상인 연대' 여준형 대표는 그러면서 "이미 지도자의 성폭력에 관한 여러 건의 제보를 받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자가 모두 현역이고, 심지어 미성년자도 포함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 9일 '젊은 빙상인 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재범 코치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심석희 선수 외에도 또 다른 성폭력 피해 선수가 있다고 적시하는 한편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빙상계 사유화 세력의 적폐가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려고 합니다. 과연 심석희 선수 혼자만이 성폭력의 피해자이겠냐는 것입니다. 그동안 젊은 빙상인 연대는 꾸준히 빙상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비위를 조사하여 왔습니다. 조사 결과 심석희 선수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도 빙상계 실세 세력들에게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젊은 빙상인 연대는 그 선수들의 피해 사실을 그동안 알리지 못하였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하나도 바뀌지 않은 대한빙상경기연맹 체재 아래에선, 모든 적폐를 일단 덮고 보자는 식으로 '적폐 보호'에만 급급한 대한체육회 수뇌부 아래에선 오히려 고발이 선수들에 대한 2차 피해와 보복으로 돌아올 게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중략). 

젊은 빙상인 연대는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어 빙상 선수, 지도자, 학부모, 빙상장 노동자들이 어떤 세력들에 대해 억압받고, 탄압받았으며 여전히 공개되지 못한 채 숨죽여 있는 빙상계의 추악한 이면이 무엇인지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이 목소리들이 대한체육회로 상징되는 거대 체육계 세력과 일부 정치 세력들에 의해 압살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의로운 대부분의 언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호소합니다.”

   
▲ 폭행 뿐 아니라 상습적 성폭력 혐의도 받고 있는 조재범 전 쇼트트랙 코치. <사진제공=뉴시스>

“문재인 대통령님, 빙상 적폐들과 그 후원군들을 막아주십시오”

젊은 빙상인 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호명했다. 젊은 빙상인 연대는 “스포츠를 사유화하려는 용납할 수 없는 일부 정치인의 시도를 막아주십시오”라며 “빙상계를 계속 동토의 왕국으로 만들려는 빙상 적폐들과 그 후원군들의 준동을 막아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빙상계의 적폐는 물론 스포츠계의 광범위한 구조적 폭력은 일찍이 내부로부터 고발돼 왔다. 지난 2007년 우리은행 여자농구단에서 일어난 남성 감독의 성추행 사건과 농구 스타 출신 박찬숙씨의 감독 선발 당시 면접 탈락 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찬숙씨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던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최근 우리은행 농구단 전임 감독의 성추행 사건은 스포츠계에 선수지도라는 명분으로 관행화된 성폭력 문제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자농구를 포함한 여성 스포츠 분야에서의 여성지도자 육성이 절실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게 벌써 10년 전이다. 이 사건과 이번 조재범 성폭행 사건과의 유사점은 크게 두 가지다. 여성 선수를 지도하는 남성 지도자가 일으킨 성폭력 사건이 첫째요, 남성 권력이 장악한 체육계 특유의 폐쇄성과 집단의식,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폭력의 공고한 완성이라는 사실 말이다. 지난 국정감사 때 스포츠계 성범죄 문제를 제기했던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역시 9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우선 실제로 알려진 사건들이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대한체육회나 문화체육관광부나 또는 각 종목 협회 등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훨씬 더 많고 이 스포츠계의 특성상 군하고 유사하거든요. 

대단히 폐쇄적이고 상하관계가 있고 피해자, 가해자를 고발할 경우에 자신의 경력을 완전 포기해야 되는 문제가 있고요. 그래서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국정감사를 통해서 많이 문제 지적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미 래리 나사르 사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운동만 가르치나, 밤일도 가르쳐야지.” (여자 중등학교 운동부 감독, 회식 자리에서)
“전 룸살롱 안 가요.”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 신문 기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남성 지도자들이 여자 선수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게 지난 2008년 KBS의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고발한 내용이다. 조재범 사건을 보면, 이 같은 스포츠계의 만연한 폭력의 구조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희준 전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지난 2009년 출간한 <어퍼컷>의 칼럼들을 추천하는 바다. 9일 문체부가 한 긴급 브리핑과 재발 방지책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는지, 구조적이고 만연한, 실로 오래된 폭력의 구조를 개선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는지 하는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꿔 줄 내용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재범 전 코치는 자신의 죄를 감추고 형량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심 선수의 성폭력 폭로 역시 전면 부인하고 있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 전 코치 변호인은 “오늘 오전에 조 전 코치를 구치소에서 만나고 왔는데 심 선수가 이런 주장을 한 데 대해 굉장히 당황스러워한다”며 “자신은 절대 성폭행을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경찰은 조 전 코치에 대한 추가 고소장을 접수한 심 선수를 이미 두 차례 불러 구체적 사실을 조사했고, 오는 16일 조 전 코치를 조사, 심 선수에 대한 폭행과 협박 이후 성폭행이 저질러졌을 가능성과 사실 은폐를 위해 어떤 압력을 가했는지 수사할 예정이다.  

   
▲ 지난해 2월5일 미 미시간주 샬럿의 이튼 카운티순회법원에서 미 체조 대표팀 여자 선수들을 성폭행한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가 판사의 선고 내용을 듣고 있다. 미 올림픽위원회(USOC)는 지난해 11월5일(현지시간) 미 체조협회의 올림픽 업무 관장 권한을 박탈하고 협회의 전면 재개편을 지시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심석희 선수가 폭행에 이어 조 전 코치를 성폭력을 고소한 이유가 바로 수감 중인 조 전 코치가 변호사를 통해 합의를 종용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번 폭로 직후 폭행 사건과 관련 이미 조 전 코치와 합의를 해줬던 피해자들이 합의를 파기했다는 사실이다. 조 전 코치가 합의를 통해 형량을 줄이고 출소 뒤 빙상계나 체육계 내에서 명예회복에 나서고 복귀를 도모했을 것이란 분석이 파다하다. 

우선 오는 14일 폭행과 상해 혐의 2심 선고 공판을 앞둔 조 전 코치에 대한 합당한 판결을 기대해 본다. 이후 조 전 코치의 성폭력과 관련한 철저한 조사와 수사 내용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동토의 왕국’이라는 빙상계와 구조적 폭력을 개선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체육계가 자정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돼야 한다. 지난 30년간 미 체조 선수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래리 나사르 전 미 체조 국가대표 주치의에게 도합 360년 형을 선고한 미국의 사례를 체육계가, 정부와 사법부가, 전 국민들이 염두에 둘 때다.  

하성태 기자 

#이상호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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