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아버지 엄벌에 처해 달라”던 세 딸은 아직도 무서울까?

기사승인 2018.11.28  10:04:33

default_news_ad1

- 전세계 여성, 시간당 6명 아는 사람 손에 죽어…반의사불벌죄 폐지해야

   
▲ <이미지 출처=SBS 화면캡처>

“아직도 무서워요. 구속이 된 지금 상황에서도 정말 (출소 후) 사회에 나와서 아무 잘못 안 한 듯이 정말 의기양양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걸 바라지 않아요. 그렇게 때문에 정말 엄벌에 처해졌으면….”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둘째 딸은 감정이 메마른 듯 보였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 달 22일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전 남편에게 살해된 40대 여성 이씨의 세 딸들을 인터뷰했다. 이 세 딸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아버지를 엄벌에 처해 달라”는 취지의 청와대 청원 글을 올려 세간의 안타까움을 불러 모은 바 있다. 

문제는 가정폭력이었고, 더 큰 문제는 이를 방치하다시피 한 공권력이었다. 이씨는 결혼 생활 내내 지속된 남편의 집착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3년 전 이혼했다. GPS까지 동원해 전 부인을 스토킹하는 전 남편을 피해 이씨는 딸들과 주거지를 6번이나 옮겼지만, 전 남편 김씨는 집요했다. 전남편 김 씨는 끝내 이들의 거처를 찾아내고 위협과 폭행을 가했다. 

그런 김씨에 대해 둘째 딸은 “이혼 당시에도 (김씨가) ‘내가 너희에게 큰 선물을 주겠다. 기다려라’ 근데 그 큰 선물이 이 범행이었던 거 같아요. 범행에 대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집착은 복수심으로 변했고, 결국 큰 화를 불렀다. 물론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씨와 딸 들은 경찰에 수차례 신고를 했고, 법원에 접근금지명령도 받아냈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의 심각한 가정폭력을 그저 가정 내 분란으로 인식하기 일쑤였고, 오히려 김씨에게 ‘훈방’에 가까운 조치를 취하는 것도 모자라 문제를 키우지 않는 방법까지 ‘코치’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공권력의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 마비는 일상다반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가정폭력과 피해의 양상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와도 상관이 없었다. 반면 경찰의 나이브한 대응의 양상은 대동소이했다. 20대 피해자 강씨는 이혼 숙려기간 동안 남편을 피해 숨어 살던 집 앞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강씨는 사건 직전 남편의 성폭행을 신고하고 귀가했지만 그날 저녁 흉기를 품고 몰래 알아낸 집주소로 찾아온 남편에 의해 살해당했다. 강씨 역시 경찰에 수차례 신고했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러한 가정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해 이렇게 질문했다. 

“법치국가에서 왜 가정폭력 가해자는 자유롭고 피해자가 두려움 속에 숨어 지내야 할까? 그녀들이 끊임없이 요청했을 SOS, 공권력과 법은 어디에 있었을까? 제작진은 묻는다, 만약 지속적인 폭행의 가해자가 남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체포와 격리와 처벌이 어땠을까? 오히려 피해자들이 조금은 더 안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동 가정폭력 방지대책 발표한 정부 

“처벌 수위가 합리적이지 않을 때는 오히려 불법행위로 발각되는 게 어떤 지점들인지를 가해자들이 너무 쉽게 파악을 해가지고, 사법제도의 빈틈을 너무 빨리 포착을 하죠.”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방송에서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법제도의 빈틈이란, 결국 가정폭력에 대한 공권력의 경각심 부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빈틈이 결국 수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수렁으로 몰았고,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낳고, 세 딸의 청원이란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 사건 이후 정부가 나섰다. 

지난 27일 여성가족부가 관계부처 합동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접근금지를 포함해 임시조치를 위반한 가정폭력 가해자는 기존 과태료 처분보다 강화된 ‘징역 또는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가정폭력 사건 시 경찰관이 현장에서 대응하는 ‘응급조치’ 유형도 현행범 체포가 명시된다. 무엇보다, 상습·흉기사범 등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다. 

   
▲ <사진출처=KBS 화면캡처>

“접근금지 명령이 이전까지는 장소로 돼 있다가 이제는 사람 중심으로 되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이 어디로 가든 그 사람한테서 접근을 할 수가 없게 만들어주고 그다음에 접근금지명령에 위배했을 때 너무 쉽게 위배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이제 엄단을 한다. 과태료가 아니라 즉각 체포될 수도 있고 그걸 통해서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27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라디오>에 출연한 진선미 장관의 설명이다. 진 장관은 이러한 개정안을 “정부 입법 발의를 준비해서 내년 상반기에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여성계에서는 핵심 쟁점이 유지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중이다. 

경찰들이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 미온하게 대처해온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부부 사이라는, 즉 ‘가정 내 사건’임을 중시하기 때문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처벌법 조항 중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이 그대로 명시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간의 경각심 부족이 바로 이러한 가정을 우선시하고 피해자 인권은 뒤로 미루는 사회적 통념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기존 방식(반의사불벌죄)도 살아남았다. 남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이나 폭행이 아닌 가족에 의한, 또 대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폭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처벌을 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전 세계 여성 6명이 1시간마다 아는 사람의 손에 죽는다”

“법의학자 입장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해서 꽤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전 세계적인 데이터를 보면 살인의 7분의 1은 이런 파트너에 의한 살인입니다. 분명히 발전, 폭력이라는 건 발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폭력이 일어났을 때 분명히 개입이 있어야 되고 이건 사회적 제도로 뭔가 개입을 해야 된다, 이렇게 판단이 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단골 출연자인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가 가정폭력에 대해 제기한 문제의식이다. 27일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따르면,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인 지난 25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발표한 ‘전세계 살인 연구: 여성과 소녀에 대한 젠더 관련 살인’ 보고서도 위의 유 교수의 주장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1년에 전 세계에서는 87,000명의 여성이 살해당했고, 절반 이상(5만 명, 58%)은 파트너나 가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3분의 1이 넘는 수인 3만 명은 현재 혹은 전 친밀한 파트너에게 살해당했다. 즉, 전 세계에서 1시간마다 여성 6명이 자기가 아는 사람의 손에 죽는다는 뜻이다.”

살인에까지 이르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을 통해 그 심각성이 다시금 전 국민에게 환기됐을 뿐이다. 정부가 좀 더 촘촘하게, 또 반의사불벌죄와 같은 ‘구멍’을 모두 메우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 정도로 고조된 것은 처음 아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강화된 입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매 맞는 여성들의 목숨을 살릴 절호의 기회다. 

하성태 기자 

하성태 기자 woodyh@hanmail.net

ad44
default_news_ad3
<저작권자 © 고발뉴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ad41
ad37
default_side_ad2
ad38
ad34
ad39

고발TV

0 1 2 3
set_tv
default_side_ad3
ad35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