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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盧대통령 애국적인 분노 갖고 계신 분, 억수로 좋아했다”

기사승인 2018.10.16  09: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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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진영 제안 거절…장수가 주군을 한분 모시지 두분 모시지 않아”

   
▲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2018년 9월 수출입 동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 협상을 맡게 된 이유에 대해 16일 “노무현 대통령을 억수로 좋아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통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노무현 당선자 시절 스위스 소재 WTO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통상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같이 첫 만남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딱 뵈니까 노 대통령 스타일이 멋있고 마음에 들더라”며 “그래서 매우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몇분 동안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노 대통령은 애국적인 분노를 갖고 있었다”며 “매우 직관적이고 본능적이고 역사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이 있어서 판단도 정확한 것 같았다”고 첫 인상을 전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날 첫날부터 통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미FTA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김 본부장은 “만병통치약은 절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다만 절차가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구한말 관련 책이나 최근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를 보면 고위 관료들이 참 많이 답답하다”고 역사적으로 뒤쳐진 예를 들었다. 

이어 그는 “역사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야 하는데 이때는 흐름이 다자보다는 양자적인 FTA를 할 시대였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이 뚝심을 가지고 지지자들이 이탈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했고 이해찬 대표도 당시 똑같은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 본부장은 ‘매국노’,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며 진보진영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적극 항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 본부장은 “협상에 집중하느라고 그 얘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끝나고 나서 기사들을 좀 몇개 보니까 아주 조금 억울한 면이 있어서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라는 책을 냈다”며 “문제는 그 책이 안 팔렸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의 비판에 대해 김 본부장은 “우리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 비판하는 것이기에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있을 수 있는 의견으로 봤다. 

또 그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당시는 결과가 없었기에 홍보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 펑션룸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와 함께 한미 FTA 개정협정문 서명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문대통령, 세계 통상이 평시에서 전시상황으로 가는 것 알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통상교섭본부장을 맡게 된 것에 대해 김 본부장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이후 전 세계 통상 분야가 평시에서 전시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것, 자유무역이 관리무역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 대선 당시 미국에 가서 몇 개월동안 힐러리와 트럼프 캠프를 연구했었는데 백인 중산층의 몰락을 봤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가 없어졌을 때 백인들의 좌절감과 절실함을 보고 트럼프가 진짜 승리할 수 있겠구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이행하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자신은 협상에 임할 때 2가지 원칙을 지킨다며 “첫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시한대로 ‘장사치 논리로 협상에 임해라, 불리하면 깨라’이다”라고 소개했다. 

“두번째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언급했던 ‘협상가들이 세계를 상대해서 결과를 잘 내야지만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원칙으로 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문 대통령이 자신을 다시 기용한 것으로 봤다. 

아울러 김 본부장은 “국가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이스라엘은 전쟁이 터지면 유태인들이 하던 일 다 버리고 전선에 나가는 데 똑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본부장은 “직장을 7~8번 옮겼다, 평균 4년에 한번씩 해고되더라”며 “어떤 분들은 돈이 목표가 될 수 있고 혹은 신앙이 될 수 있는데 나는 제일 보람을 느꼈을 때가 공직에서 국익, 국격, 국력을 증대하는 일을 할 때였다”고 밝혔다. 

2011년 3년 만에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을 그만둔 이유도 “공동체는 비젼과 전략과 전술단위에서 움직이는데 저와 맞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1968년 미국에 건너갔는데 제 마음 속의 시계가 멈춰 섰던 것”이라며 “1988년 귀국했을 때 다시 시계가 움직였다”고 했다. 

보수진영에서 제안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제안이 왔었지만 장수가 주군을 한분 모시지 두 분을 모시지 않는다,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안 갔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억수로 좋아했었다”고 덧붙였다. 

민일성 기자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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